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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핀란드인만 아는 '14가지 조용한 규칙'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radahh@gmail.com)

[인-잇] 핀란드인만 아는 '14가지 조용한 규칙'
얼마 전 핀란드 친구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제목이『NUNCHI』였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은밀한 '몸짓 언어'인 눈치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는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눈치처럼 핀란드에도 외국인들은 쉽사리 알아채지 못하는 '그들만의 규칙'이 있다. 최근 핀란드 신문에서 <핀란드인만이 알고 있는 14가지 조용한 규칙>이라는 글을 읽은 뒤 조금 놀랐다. 핀란드에서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생소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몇 가지 사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퍼즐 조각이 그제야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이 핀란드인들의14가지 조용한 규칙이다.


1.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기
공공장소에서 핀란드인을 다른 서양인과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핀란드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핀란드에서는 버스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핀란드 부모가 공공장소에서 어린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힐리야!"(Hiljaa뜻: 조용해)다. 조용함과 평화로움은 이들에게 동의어다. 평화로움을 뜻하는 핀란드어 '라우할리넨'(Rauhallinen 뜻:평화로운)은 핀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형용사로, 조용함을 느낄 때 핀란드 사람들은 이 단어를 자주 쓴다. 자신의 평화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평화도 뺏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특히, 엘리베이터 등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 말하는 것은 거의 금기다.

'핀란드인들이 버스 기다릴 때 줄 서는 법'.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전 한국에서 한참 유행했던 사진. 거리두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핀란드인들의 모습이 낯설고도 신기했다.

2. 장소 불문, 언제 어디에서나 줄 서기 (+간격은 가능한 넓게)
핀란드 사람들은 줄 서기의 달인이다. (줄 서기가 어려운 곳은 번호표가 거의 항상 주어진다.) 줄 간격도 상당히 넓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기 전부터 거리 두기는 핀란드의 일상이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간격 지침이 왜 겨우 2m밖에 안 되냐"는 핀란드식 농담도 들어본 적이 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삼키기 전, 한국에서는 한 때 핀란드 버스정류장 '짤'이 한참 유행한 적이 있다. 멀찌감치 떨어져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핀란드인의 모습이 낯설며 신기했던 것 같다. 핀란드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아닌 숲이 존재한다. 이런 '안전 거리'를 무시하고 바짝 다가간다면 추운 겨울에도 이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3. 약속 시간은 칼같이 지키기
핀란드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철저하다 못해 빡빡하다. 예고 없이 5~10분 정도 늦는 것마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융통성 없는 시간 문화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는데, 영하 20도 이하로 수은주가 뚝 떨어진 날 밖에서 친구를 한 번 기다려보니 그제야 충분히 핀란드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5분이 마치 50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4. "저 때문에 커피 끓일 필요는 없지만…" (속뜻은 '커피 꼭 주세요!')
커피를 권유 받을 때 핀란드 사람들이 즐겨하는 말이다. 그.런.데. 본심은 절대 아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인구 당 커피 소비량 (하루 4잔)이 가장 많은 국가로 커피는 이들의 국민 음료다. 이렇게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커피 대접을 받을 때 일단 이렇게 빼는 이유는 커피가 과거에는 값비싼 고급 음료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커피가 훨씬 대중화되고 가격도 저렴해졌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여전히 이 말을 애용한다. 물론 '빈말'이기에 이 말만 믿고 핀란드 사람들에게 커피 대접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말 줄임표 속에 녹아 있는 진심은 "커피 꼭 주세요!"이니.

5. 3번 부를 때까지 식탁에 앉지 않기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음식이 차려진 후 곧장 식탁에 앉지 않는 것이 핀란드식 예의다. 우리나라의 양반 문화와 비슷한, 체면을 중시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요즘 젊은 세대는 좀 더 솔직하게 행동하는 편이만, 기성세대 중에는 여전히 3번 부르기 전까지는 무거운 엉덩이를 쉽게 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6. 마지막 케이크 조각에 손대지 않기
"너 먹어!" "아니야 네가 먹어!" 
우리나라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와 비슷한 대화다. 마지막 케이크(혹은 파이) 조각을 두고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조각에 쉽게 손을 대지 않으며 서로 권하다 결국 반반씩 나눠 먹는 일도 많다.

핀란드인들의 사우나 사랑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7. 사우나 거부하지 않기
자동차보다 사우나가 더 많은 핀란드에는 웬만한 집에 다 사우나가 있다. 귀한 손님에게는 이런 개인 사우나를 활짝 개방한다. 핀란드에서 손님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 호의는 바로 자신의 사우나로 초대하는 것이다. 만약 손님이 이 호의를 거부한다면 핀란드 사람들은 '멘붕'에 빠질지 모른다. 대안으로 제시할 더 좋은 호의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8. 사우나에서는 옷 (완전히) 벗기
TV에서 보는 수영복이나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사우나를 하는 핀란드 사람의 모습은 연출된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원래 핀란드 사우나에서는 옷을 다 벗는 것이 원칙이다. 수영복 착용은 남녀가 함께하는 유니섹스 대중 사우나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9. 사우나 타이밍 지키기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 내부의 온도와 습도에 유난히 민감하다. 사우나 화로 위에 있는 돌에 물을 끼얹으면 온도와 습도가 조절된다. 다른 사람과 사우나를 할 때는 돌 위에 물을 부을 때 동의를 구하는 것이 좋다. 원하는 온도와 습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을 부어 뜨거운 증기가 생긴 직후 사우나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 것이 사우나 예의다. 문틈 사이로 증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때 퇴장하는 사람 뒤통수는 다른 사람이 쏘아보는 시선으로 인해 사우나 열기만큼 뜨거울 수 있다.

10. 칭찬받을수록 겸손하기 (혹은 겸손한 척하기)
핀란드에서 겸손은 큰 미덕이며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갖춰야 하는 생존법 중 하나이다. 특히 칭찬받을 때는 빈말이라도 자신을 낮추는 것이 적절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언젠가 핀란드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반려견 공원에 가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반려견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친목이 쌓인다는 것이다. 단, 이 때도 반려견에 대한 자랑은 가능한 하면 안 된다고 한다. 핀란드에서는 개도 겸손해야 살아 남는다.

11. 날씨를 주제로 얘기하기
핀란드 사람들은 날씨에 유독 관심이 많다. 창문 밖에 온도계가 설치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다. 혹독한 겨울을 나려면 날씨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또 좋은 대로 날씨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화제다. 내가 생각하는 핀란드 최고의 덕담은 "아우링코 파이스타~" (Aurinko paistaa뜻: 해가 난다)다. 오래간만에 해가 나는 날이면 낯선 이에게 쉽게 말을 안거는 핀란드 사람들도 이 덕담을 서로 나누며 즐거워한다.

핀란드에는 '버섯 채취 어플'까지 있을 정도로 핀란드인들에게 버섯 채집은 국민 취미라고 할 수 있다.

12. 야생 베리(버섯) 채집 장소 (절대로) 묻지 않기
돈 자랑은 안 하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숲에서 딴 야생 베리나 버섯 자랑은 많이 하는 편이다. 지인이 SNS에 자신이 딴 야생 식물 관련 포스팅을 올리면 감탄 어린 댓글을 달아 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절대로 어디서 채집했는지 물어봐서는 안 된다. 혹시 물어보더라도 이들은 분명히 답변을 얼버무릴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채집 장소를 남과 잘 공유하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누군가 많이 따면 내 몫은 적어지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13. 길 (웬만하면) 묻지 않기
핀란드 친구와 함께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끝까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애써 길을 찾아보려 했다. 내 눈에는 이런 모습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핀란드인의 국민성이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길을 잃으면 주변 사람에게 잘 묻지 않는다. 독립심이 유독 강한 핀란드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다행히도 이들의 길 찾는 능력은 탁월한 편이다. 오리엔티어링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목표 지점 여러 곳을 통과해야 하는 스포츠) 세계 대회에서도 1등은 항상 핀란드인의 차지다. 핀란드 친구와 함께 길을 잃게 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어떻게든 그들은 길을 찾아낼 것이다.

14. 신발 (적재적소에서) 잘 털기
핀란드 건물에는 보통 문 바로 옆에 큰 솔이 붙박이로 설치돼 있다. 여기서 신발에 붙은 눈을 잘 털고 실내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내가 젖은 눈으로 지저분해진다. 차를 탈 때도 옆으로 앉은 후, 두 발을 들어 눈을 털어낸 다음 착석한다. 남의 차를 탈 때는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 신발에 묻은 눈은 꼭 털어내기.


지금까지 핀란드인 그들만의 조용한 14가지 규칙에 대해 소개해보았다.

아참, 추가로 '헤프게 웃지 않기'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핀란드에 왔을 때 처음으로 들었던 주의 사항이기도 하다. 가능한 한 웃지 않고 표정 없이 다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헤프게 웃는 사람은 술에 취했거나, 정신이 나갔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미국인으로 생각한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규칙을 원만한 핀란드 생활을 위해 숙지할 필요는 있지만, 맹목적으로 다 실천하기 어렵다는 나만의 결론에 도달했다. 여전히 나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에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잘 웃고 다니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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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이보영 행복을 연습하며 사는 전 셰프,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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