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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핵 가졌던 우크라이나…28년 전 '딜'은 무효가 됐다

흔들리는 국제 질서…한반도 안보 영향은?

"러시아 연방과 우크라이나, 미국 대통령과 영국 총리가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에 관한 각서에 지금 서명하겠습니다."

1994년 12월 5일, 헝가리에서 있었던 이른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식입니다. 28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에서 '안전 보장' 표현이 언급됐던 이 장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습니다.

소련이 과거 우크라이나 지역에 핵무기를 집중 배치했는데, 이후 소련이 해체됐고 우크라이나는 그 핵무기를 그대로 떠안은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처음부터 핵을 보유하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핵탄두 1,700여 개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막강한 핵전력을 갖게 됐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이 핵무기들을 내놓고 대신 미국과 러시아, 영국이 독립과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 바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골자입니다. ( 양해각서 원문 참고)

[취재파일] 핵 가졌던 우크라이나..28년 전 '딜'은 무효가 됐다

▲우크라이나 독립과 주권·국경 존중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삼가 ▲경제적 압박 삼가 ▲우크라이나 위협 상황 시 안보리 이사회의 조치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켜보듯 이 각서는 2022년 현재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초 각서의 형식상 조약보다 강제력이 낮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당시에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핵무기를 빼낼 수 있었죠.

우크라이나는 최근 다시 이 각서를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언론 키예프 인디펜던트 기사 캡처

러시아가 사실상 전면전을 시작하기 직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현지시간 19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 발언을 주목해 봅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의 핵전력을 포기하는 대가로 안전보장을 약속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무기가 없습니다. 안전 또한 없습니다."

"만일 또다시 회의가 소집되지 않거나 회의 결과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위한 구체적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각서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모든 권리를 가지며, 1994년의 모든 결정은 의혹에 부쳐질 것입니다."

( 젤렌스키의 뮌헨안보회의 연설문 전문 참조)

번역해 보면 핵 포기 결정, 재고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현실성이 높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핵을 다시 보유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로 서방의 강력한 개입, 제재 이상의 조치를 요구한 것이죠.

2014년 크림반도 병합에 이어 이번 돈바스 지역 독립 승인, 그리고 전격적인 공습까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숨통을 단계별로 조였습니다. 젤렌스키의 연설에서는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에도 무력하게 외부에 SOS를 칠 수 밖에 없는 우크라이나의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이번 사태는 국제사회에서 냉전 이후 유지되던 질서를 깨뜨린 사건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각국은 이제 비현실적인 이 핏빛 전쟁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한반도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계정세 측면 말고도, 짚어볼 부문은 또 있습니다. 북핵 문제에 주는 시사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핵을 이고 사는 우리에게, 혹은 북한에게는 우크라이나의 행보가 사뭇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겠죠.

일단은 우려가 큽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핵무력 강화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을 더욱 합리화하는 근거로 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핵을 떠안게 된 우크라이나와 수십년간 핵개발에 집중해 온 북한이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체제 안전을 100% 보장하는 비핵화란 것은 없다는 일종의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합니다.

선 비핵화 방식인 리비아 모델과 달리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3국의 비핵화 방식은 주고 받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그나마 현실적인 북핵 해법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것인데, 이번 사태로 힘이 좀 빠지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미러간 갈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이 움직일 공간이 넓어진다는 것도 지켜볼 포인트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선이 형성된 미국과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 한목소리 내는 건 당분간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러시아의 침공 행태가 북한이 그간 비난한 이른바 '제국주의' 행보나 다름 없단 점에서 북한 역시 속내가 복잡할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세에 집중하는 동안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당장 쏜다고 해도 미국의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는 여건은 아직 아니라는 겁니다. 전면전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북한이 뭘 해도 '가성비'가 맞지 않은 만큼 이를 고려할 것이라는 게 이 주장입니다.

이제 북한의 연쇄 도발을 잠재웠던 베이징올림픽은 막을 내렸고 우리는 대선과 한미연합 훈련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불거진 우크라이나 사태, 한반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겁니다. 숫자로 눈에 확연히 보이는 결과, 단기적인 영향력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나비효과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 부인할 수 없습니다.

( 취재 : 김아영, PD : 김도균, 편집 : 차희주,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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