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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반려 돼지를 찾다가 '나'를 만났다, 영화 '피그'

[씨네멘터리] 반려 돼지를 찾다가 '나'를 만났다, 영화 '피그'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이주형 기자

작성 2022.02.27 08:56 수정 2022.02.27 11: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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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반려 돼지를 찾다가 나를 만났다, 영화 피그
(※ 이 글에는 영화 "피그"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남자는 한때 배우로서 최고의 시절을 누렸다. 누구나 부러워하고 치켜세우던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였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남자의 이력의 정점이었다. 아니, 정점의 시작이었다. "더 록(1996)", "페이스 오프(1997)", "콘에어(1997)" 같은 액션 블록버스터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남자는 연기파 흥행 배우라는 그 어렵다는 경지에 이미 30대 초반에 도달했다.

  언제부턴가 남자가 손대는 영화마다 망했다. 아니 망할 영화에만 손을 댔는지도 모른다. 낭비벽과 소송 등으로 큰 빚을 져 파산 위기를 겪었다. 닥치는대로 B급 영화에도 출연해야 했다. 필모그래피가 100편이 넘는다. 이혼도 네번 했다.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해서 '케서방'이라고 불렸던 것도 옛날 얘기다.

  남자는 나는 자연인이다,가 됐다. 영화 "피그"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숲속에서 돼지와 함께 송로버섯(트러플)을 채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숲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홀로 사는 왕년의 유명 셰프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예민한 후각으로 귀신같이 송로버섯을 찾아내는 작은 돼지와 함께 산다. 돼지는 송로버섯을 팔아 살아가는 롭의 동업자인 동시에 둘도 없는 반려동물. 그러던 어느 날 괴한들이 오두막에 들이닥쳐 돼지를 훔쳐간다.

영화 "피그"의 니콜라스 케이지 (판씨네마 제공)
 남자는 돼지를 찾으러 15년 동안 떠나 있던 도시로 향한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되기 전 남자는 포틀랜드에서 잘 나가는 셰프였다. 하지만 상처를 입고 도시를 떠났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영화 내내 돼지보다 더 돼지 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머리는 산발했고, 얼굴에는 피떡이 졌다.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다. 그는 그런 행색에 아랑곳하지 않고 돼지의 행방을 좇아 이 도시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한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종업원이 다가와 식탁 위의 가리비 요리에 대해 설명한다. 바다의 깊이와 숲의 풍요를 통합한 오늘의 요리는 가리비를 급냉동한 바닷물 어란 믹스에 감싼 후 채집한 월귤 열매 거품에 얹은 후 전나무 솔방울 연기에 훈증한 것이라고.(맙소사)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종업원에게 셰프를 불러달라고 한다. 이윽고 나타난 유명 셰프는 롭이 십수 년 전에 두 달만에 해고했던 견습요리사 핀웨이였다! (매번 파스타를 너무 삶아서 쫓겨났다) 그는 요즘 새로운 메뉴로 트러플 요리를 준비 중이다. 롭이 트러플 피그를 찾고 있다고 하자 핀웨이는 여기서 크게 성공한 자신은 평론가나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상급의 '현지 토산물'을 '해체'해 '친숙한 것을 낯설게'함으로써 음식 전반에 대한 감성을 높이고 있다며 말을 돌린다.

 롭은 자신이 요리한 음식과 서빙한 손님을 모조리 기억하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롭은 핀웨이의 꿈은 대중이 열광하는 '최첨단 요리'가 아니라 영국식 펍을 여는 것이었음을 정확히 기억해낸다. 그리고 당황해하는 핀웨이에게 말한다.

  이 요리들은 진짜가 아니야. 자네도 알지? 평론가도 진짜가 아니고, 고객도 진짜가 아니야. 자네도 진짜가 아니고. 왜 사람들한테 신경 쓰지? 그들은 자네를 염두에도 안두는데. 자네는 그들을 위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자네를 보지도 못해. 왜냐하면 자네조차 자네를 보지 않으니까. 진심으로 신경써야 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아.

민망하게 웃음짓던 핀웨이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다 우는 얼굴로 변해간다. 짧지만 심장을 겨누는 대사였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 성철 스님이 던졌던 화두가 생각났다. "쏙이지 말그래이"(不欺自心).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성철 스님조차 화두로 삼을진대,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항상 어느 정도는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화려한 찬사 뒤엔 깊은 외로움과 소외의 그늘이 있다. 남이 소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자기가 자기를 소외하는 것이다. 관심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무덤에서까지 그게 필요하지는 않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영화 "피그"로 미국 내 여러 곳의 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수상도 하면서 재기를 알렸다. 스타에서 탕아로, 탕아에서 다시 연기자로 돌아온 그가, 셰프 핀웨이 이상으로 남의 관심과 열광을 좇고 낭비를 일삼던 그가, "피그"이후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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