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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인사이트] 국익 놓고 여론전 참전하는 러시아 · 우크라 대사…우리 대사는?

매주 장관들 출연하는 미국 토론 프로그램…그들이 밝히는 정부의 속내

미국의 일요일 오전 시간대는 토론 프로그램이 장악한 시간대입니다. CBS <Face the Nation> NBC <Meet the Press> ABC<This Week> Fox news <Fox Sunday>, CNN <State of the Union>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미국을 움직이는 인물들이 실제 출연해 앵커와 합을 겨루는데, 미국식 저널리즘은 이런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잘 구현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이 여러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이런 식으로 한 주에 장관들이 한두 명씩은 방송에 꼭 나옵니다. 국민을 상대로 직접 설명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는 생각으로 방송에 임하기 때문에 정부 브리핑보다는 훨씬 내용이 있고 진짜 정부의 속내를 들을 수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다수 미국 전, 현직 관료들은 이런 대담 프로그램에 미디어 훈련이 워낙 잘 돼있습니다. 대중에게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고위직에 오르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 인터뷰를 해보면 이런 인물들은 바로 라이브 방송을 해도 될 정도로 적당한 길이로 핵심을 말하는 게 습관이 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곤란한 질문까지도 앵커와 합을 겨루는데, 이런 프로그램은 취재 대상뿐만 아니라 진행자도 준비가 부족해서는 제대로 된 방송을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런 미국의 토론 프로그램은 우리 방송 환경을 좀 더 시청자 친화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참고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문제 놓고 직접 출연해 국익 설명하는 러시아·우크라 대사

현재 미국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눈에 띄는 점은 미국 주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대사들이 직접 미국의 여론전에 참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크라이나 옥사나 말카로바 대사가 CBS Face the Nation에 직접 나왔었는데, 오늘은 말카로바 대사뿐만 아니라 러시아 아나톨리 안토노프 대사까지 출연했습니다. 둘이 토론을 한 건 아니었지만 시차를 두고 두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서 우크라 사태의 쟁점에 대해서 미국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국익 놓고 여론전 참전하는 러시아·우크라 대사 (사진=김수형 페이스북 캡처)

러시아 안토노프 대사는 "우리 땅에서 우리가 훈련하는데 뭐가 위협이냐", "서면 안전 보장 조치가 필요하다"는 러시아의 핵심 주장을 거침없이 발언했습니다. 앵커인 마가렛 브레넌과 논쟁을 주고받는 것도 전혀 피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말카로바 대사도 직접 나와 현 정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이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게 뭔지 핵심을 잘 설명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엄청 현란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국익 놓고 여론전 참전하는 러시아·우크라 대사 (사진=김수형 페이스북 캡처)

CBS 진행자인 마가렛 브레넌은 외교 안보와 관련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앵커로, 그녀는 인터뷰 대상이 편안하게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얘기를 하고 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잘 잡아주는 편입니다. Face the Nation에는 최근에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같이 다른 나라 정상들도 출연할 정도입니다. 그녀를 2019년 주미 대사관저에서 열렸던 개천절 행사에서 만나서 개인적으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 대사관 행사에 올 정도로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호기심도 상당하다는 인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중국 대사도 나오는데, 한반도 이슈 놓고 주미 한국 대사는 어디에?

국제 외교 문제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에서 타국의 대사들이 직접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서 국익을 설명하는 모습은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중국 대사도 반중국 정서가 심할 때 Face the Nation에 직접 출연해서 자기들 논리를 강한 어조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해당국 국민들은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은 했을 것 같습니다. 주미 대사관 공무원들도 여러 현안을 두고 헌신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많은 대사관 외교관들이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여론에 직접 호소하려면 아랫사람들보다는 가장 윗사람인 주미 대사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와 관련해서 미국 언론들도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입장을 궁금해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좋은 기회가 왔을 때도 대사가 직접 나서서 미국 언론을 통해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 직접 여론전을 펼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주로 서울에서 장관이 오는 경우에나 가끔 미국 언론에서 볼 수 있었던 기억합니다. 물론 대사가 주요 외교 당사자들과 만나서 뭔가를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대외비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대외비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사실 워싱턴 특파원들도 관련 내용을 거의 모르는데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중요한 내용이라면 보도 자료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행사 위주로 진행되는 외교…세금 아깝지 않은 대사가 나와야

우리 외교는 주로 행사 위주로 진행되는 것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우리끼리 사진 찍고 당사자들만 아는 행사는 사실 미국 여론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종전 선언 같은 현안이 주어졌을 때도 주미 대사가 직접 나와서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듯 합니다. 주요 현안에 있어서 미국 언론도 우리 정부의 입장을 듣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K문화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상황에서 이 에너지를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다른 나라 주재 우리 한국 대사 중에서는 K문화 인기를 배경으로 해당국에서 연예인급의 인기를 누리는 사람도 실제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익 놓고 여론전 참전하는 러시아·우크라 대사 (사진=김수형 페이스북 캡처)

다소 불편한 얘기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 여론에 직접 호소할 수 있는 대사가 나와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SNS에 남기고 해당국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러시아, 우크라이나 외교관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국익을 SNS에 설명하는지는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수혁 주미 대사의 SNS는 페이스북이 유일한데, 한글로 돼 있고, 그것도 지난해 10월 10일 행사 소개가 마지막입니다.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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