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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염전 기업 "착취 대책 마련"…법적 규제는 미비

[끝까지판다] 아직도 '노예'가 있다

염전 운영 구조도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남 신안 증도의 염전에서 이어진 장애인 착취 의혹을 끝까지판다팀이 지난달 전해드렸습니다. 증도 일대 염전을 보유한 기업 '태평염전'은 염전을 여러 개로 쪼개 이른바 '염사장'이라고 불리는 임차인들과 임대 계약을 맺고, 이들은 다시 '염부'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을 고용해 염전을 운영합니다. 이런 일종의 하청 구조 속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기업은 제대로 처벌 받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인권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이에 대해 태평염전 측은 문제를 일으킨 임차인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염전 임대 계약에 노동자 보호 조항을 강화했다고 알려왔습니다. 
 

태평염전 "장애인 착취 사실 몰라…계약상 방지 조항 마련"


지난해 태평염전 임차인인 장 모 씨 일가 염전에서 탈출한 장애인 박영근 씨는 2014년부터 염전 일을 했지만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박 씨가 2017년 이후 받지 못한 임금만 8,757만 원에 이릅니다. 앞서 장 씨 아버지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같은 염전에서 장애인을 착취했다는 법원 판결까지 고려하면, 염전 내에서 이런 문제가 10년 넘게 이어져 온 걸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염전 노동 피해자 박상근 씨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태평염전 측에 질의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때 처벌 받은 장 씨 부자가 또다시 장애인 착취 의혹을 받고 있는데 관련 사실을 몰랐는지.
둘째, 장 씨 일가가 빌린 염전의 노동자 계좌와 태평염전 계좌 사이에 자금이 오간 이유는 무엇인지.
셋째, 장애인 착취 행위를 막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했는지.
 
"(장 씨 아버지는) 피해자가 지능이 낮고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어 사리분별 및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점을 이용해 급여를 줄 것처럼 행세하며 2006년 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2012년 1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태평염전에서 일을 시키고 급여 7,304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장 씨는) 피해자의 장애를 이용해 급여를 지급할 것처럼 행세하며 자신이 운영하는 호프에 감금해 일을 시키고, 2014년 2월 '염전 노예' 수사가 진행되자 목포로 데리고 나와 모텔에 감금했다" "징역 2년6월 선고"

-2015년 장 씨 부자 1,2심 판결문

이에 대해 태평염전 측은 지난해 10월 박 씨의 폭로 이전에는 장 씨 일가의 장애인 착취 의혹에 대해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임대차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직접 노동 실태를 조사하거나 범죄 경력을 조회할 권한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염전 노동자와의 거래 내역에 대해서는 해당 노동자를 실제 임차인으로 오인해 염전 임대 계약을 체결한 뒤 관련 정산금을 지급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대신 태평염전은 장 씨 일가가 빌린 염판 10곳에 대해 이미 계약 종료를 통지했고,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계약 조항을 강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염전 임차인들에게 염전 노동자 명의 도용, 통장과 신용카드를 보관하거나 사용하는 행위, 통장 입금 후 인출 등 비정상적인 급여 지급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확인서를 받았다는 겁니다. 이를 어길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 임차인들 스스로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태평염전 관계자는 "염전 운영의 경제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산업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끼쳐 송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습니다.
 
[태평염전 '공정거래 확인서' 기존 조항]
- 최저임금 준수 / 전대금 체결 금지 / 월 1회 급여 지급(체불 금지) / 인권보호(학대 및 폭력 금지)

[태평염전 '인권 보호 및 공정거래 확인서' 2022년 추가 조항]
- 염생산 계약 명의 사용 금지
- 현금보관증을 통한 염판원 금전 보관 금지
- 염판원 명의의 통장, 신용카드를 보관하거나 사용하는 행위 금지 (위임 사용도 금지)
- 통장 입금 후 인출 등 비정상적 급여 지급 행위 금지
- 신안군 기본인권 조례 준수

[태평염전 '염생산 계약서' 2022년 추가 조항]
- 동거 중인 직계 가족 외의 명의신탁 또는 차명, 특히 염판원 명의를 계약에 사용하지 않는다.
- 신안군 인권기본조례를 위반해 염전에 대한 이미지를 실추시키거나 제재를 받은 경우, 본인이나 동거 중인 직계가족 명의가 아닌 염판원 명의로 본 계약을 체결한 경우, 염판원 처우 관련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태평염전의 이미지를 훼손한 경우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
 

'하청 구조' 규제 없는 소금산업진흥법…신안군 "법적 근거 없이 영업 정지"


소금 생산 구조의 상단에 위치한 기업이 노동자 보호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업의 개선 의지만 믿고 맡겨 둬도 될 문제인지 회의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기업이 염전 임차인에게 소금 생산과 인력 관리를 모두 맡긴 뒤 생산된 소금의 절반 가량을 임대료로 받아 가공·판매하는 일종의 하청 구조가 계속되는 이상 문제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기업 측은 값싼 중국산 소금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돼 노동자 직접 고용은 엄두도 낼 수 없다고 말하지만, 장애인 등의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유지되는 산업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염전

소금 산업을 규제하는 '소금산업진흥법'에는 이번처럼 사실상의 하청 구조로 소금을 생산하다 생기는 문제에 대한 규정이 제대로 없습니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이후 아래와 같은 규정이 추가됐지만, 임차인의 노동 착취 행위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염전 노동자에 대한 근로강요 행위를 금지한다면서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 조항이나 징벌적 조치는 따로 없습니다. 영업정지와 허가 취소, 지원금 환수와 같은 행정처분이 가능한데, 윤미향 의원실에 따르면 시설 기준 미달을 이유로 염전 허가를 한 차례 취소한 것 외에는 이번 사건이 터지기까지 어떠한 행정처분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소금산업 진흥법 (2015.2.3. 개정)]
제26조(허가취소 등) 시ㆍ도지사는 제23조제1항에 따라 허가를 받은 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그 허가를 취소하거나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 다만, 제1호, 제2호, 제4호 또는 제6호에 해당하면 그 허가를 취소하여야 한다.
1.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은 경우
2. 영업정지 기간 중에 영업을 한 경우
3. 제23조제5항에 따른 허가의 요건ㆍ시설기준에 미달하게 된 경우
4. 제24조에 따른 허가의 제한사항에 해당하게 된 경우
5. 제28조에 따른 안전관리기준을 위반한 경우
6. 염전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강요행위를 한 것이 적발된 경우
제49조의2(근로강요행위의 금지) ① 염전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강요행위가 적발된 경우 해양수산부장관은 이 법에 따라 지원된 자금을 환수할 수 있다.

신안군 조치가 적절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신안군은 지난해 12월 보도자료를 통해 '염전근로자 인권침해로 적발된 염전에 대해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했다'며, 태평염전이 소유한 55곳의 염판 중 장 씨 부인이 빌렸던 염판 3곳의 영업을 1년 동안 정지했습니다. 장 씨 부인은 임차인이라 따로 소금제조업 허가를 받지 않기 때문에 태평염전을 상대로 행정처분을 했다는 게 담당자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영업정지의 근거를 묻자 황당하게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법에 따르면 근로강요 행위가 적발되면 허가를 취소해야 하는데, 근로강요 행위로는 볼 수 없다며 영업정지 처분만 한 겁니다. 이후 소송 등을 거쳐 처분이 취소되면 오히려 기업 측에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신안군 담당자]
(몇 호 근거로 영업정지 했나요?) "지금 이 법상으로는 영업정지할 수 있는 게 없어요. 6호는 염전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강요 행위가 적발된 경우인데 그건 아니라고 보니까"
(영업정지의 법적 근거가 있나요?)  "법적 근거는 없죠."
(그럼 소송으로 다툴 경우 지는 거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소금 생산하는 분들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거죠."


올해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 업체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해도 원청이 형사처벌을 받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청의 노동자 안전 확보 의무를 명시한 겁니다. 이에 비하면 소금산업진흥법의 노동자 보호 규정은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기업이 소유한 염전 내에서 장애인 착취 행위가 반복되더라도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허가를 받은 자가 직접 소금을 생산하도록 했다면 인권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이렇게 복잡하진 않았을 겁니다. 반복되는 염전 내 장애인 착취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염전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사실상 간접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 방안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끝까지판다] 아직도 '노예'가 있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는 피해자들의 폭로. 우리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 뒤에는 여전히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끝까지 판다팀은 취약 계층을 상대로 이뤄지는 '현대판 노예 노동'이 2022년 한국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인권단체들과 함께 추적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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