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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통계청장 "올해 평균 소비자물가는…"

[취재파일] 통계청장 "올해 평균 소비자물가는…"
선거 때마다 '노인 복지' 구호가 넘쳐난다. 방문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겠다, 노인 고용 장려금을 늘리겠다, 요양병원 간병비를 국민연금에서 지급하겠다…. 노인들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는 달콤한 말들이다. 문제는 재정이다. 일단 질러놓고 표를 얻겠지만 누가 왕좌에 오르던 옥쇄를 쥔 순간부터 돈 때문에 공약 이행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노인 복지'라는 총론엔 동의하지만 각론에 제동을 거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 달에 하루는 국정원장보다 특정 정보에서 우위에 있는 인물이다. 통계법 상 사전 공표가 절대 불가한, 그러나 온 국민의 관심사인 소비자물가지수를 가장 먼저 받아보기 때문이다. 류근관 통계청장이 그렇다. 류 청장은 평생 숫자와 데이터를 분석해온 학자다. 그래서 그가 거는 제동엔 정치적 이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의 관심은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론에 쏠려 있다.

"지금 현재로서는 노인들의 각종 연금과 부동산 등 자산을 연결 지어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자체가 없습니다."

통계청장으로서 고백인지 고함인지 진위 분간이 어려웠다. 이어지는 설명을 종합하면 이런 뜻일 거라 파악했다. 여기 국민연금을 매달 50만 원씩 받는 A(70)씨가 있다. 통장에 3백만 원이 있지만 부동산은 없다. B(70)씨는 국민연금 수령자가 아니다. 그는 지방에 농지가 있고, 다른 지방에 있는 주택으로 매달 170만 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복지부 자료로는 B씨가 연금사각지대에 있는 빈곤 노인이다. 정부가 노인 복지 예산을 편성할 때 지원 대상에 A씨가 아니라 B씨가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류 청장은 OECD 중에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말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는 통계가 빚어낸 주장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책 지원 대상에 B씨보다는 A씨가 들어가도록 하는 게 통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지원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통계는 최소한의 근거라고 했다. 1년 3개월 전 취임한 이래 그가 '포괄적 연금 통계'에 천착해온 이유다.

'포괄적 연금 통계'는 노인이 받고 있는 공적·개인연금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특히 연금뿐만 아니라 부동산, 금융자산 등에서 얻는 소득을 연계시킴으로써 각 노인이 처한 현재의 경제 상황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류 청장의 의욕은 잠시 과속방지턱에 걸렸다. 통계청 입장에서는 정부 각 부처가 보유한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겠다는 취지인데 노인들 입장에서는 어쨌든 국세청 이외의 기관이 자신의 소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꺼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안의 강도가 '포괄적 연금 통계'의 안착을 결정짓는 핵심이다.

이에 대해 류 청장은 단호하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에서 관련 자료가 넘어올 때는 개인 정보 등을 암호화해서 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통계청이 확보한 개인 정보를 다른 기관에 넘기는 건 정말 큰 문제이지만 정부 부처가 이미 갖고 있는 자료를 받아 노인 복지 시스템을 더 잘 수립하도록 돕겠다는데 이렇게 더디게 진행될 줄 몰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류근관 통계청장 (사진=통계청 제공)

그는 통계 개념을 설명할 땐 천상 학자였지만, 통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언급할 때는 공무원이었다. 류 청장은 "통계적 팩트는 얼마든지 이야기 하라. 그러나 의견은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마라"는 말을 새기고 있다고 했다. 물가 전망에 대해 묻지 말라는 사전 포석 같았다.

그럼에도 "올해 평균 물가가 3%를 넘길 거라는 전망이 여러 군데서 나오는데 통계청장으로서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의 한 마디로 금융 시장이 출렁일 수 있기에 숨죽이고 기다렸다. 잠시 뒤 그는 "의견은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는 뜻의 영어를 말하며 특종의 기대감을 꺾어버렸다.

60대 학자로서 그 자리까지 어떻게 노력 없이 왔겠느냐만 그는 노력에 비해 과한 성취를 하게 된 세대라며 지금의 청년 세대를 위로했다. 일할 수 있는 청년은 계속 줄고 있는데 부양해야 할 노인은 확확 느는 이 시대에 통계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 중이라고 했다. 우선은 통계청이 숫자로 결과만 보여주는 정부기관이 아니라 숫자로 시작을 알려주고, 과정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관이 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처럼 기획재정부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 독립된 부처로 발돋움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류 청장은 대화 내내 자신은 노인임을 강조했지만 지금 벌여놓은 일들과 맡고 있는 직책들을 보면 여전히 청년이다. 젊을 때부터 축구와 농구를 좋아했다며 꽃 피고 새 울면 통계청과 출입기자들 간 농구대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본인도 뛰겠다고 했다. 대선 이후 자신의 거취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용감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역대 통계청장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임기는 4년. 1년에 3번 바뀐 사례도 있다고 했다. 그는 '포괄적 연금 통계'를 완성하고 떠나는 청장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미완의 청장으로 남게 될까.

(사진=통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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