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게임 체인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툴젠은 '신의 병기'를 독점할 수 있을까?

[취재파일] 게임 체인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툴젠은 '신의 병기'를 독점할 수 있을까?

끝이 보이는 코로나와의 전쟁, 그 선봉에 선 유전자 가위

지난 2018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수산시장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난 2월 11일까지 전 세계에서 4억 명을 감염시키고, 58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 만 2년, 코로나19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하루 확진자가 정점을 찍고 감소하고 있다.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은 방역 규제를 잇따라 해제하고 있다.

지배종이 된 오미크론 변이는 중증 사망률이 크게 떨어져 이제 코로나19 대유행도 끝이 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오미크론이 독성은 약화하고 전염력은 강화하는 바이러스 변이의 마지막 형태가 돼 독감처럼 풍토병으로 토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는 지난 1918년과 1919년 1천700만 명에서 최대 5천만 명까지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스페인 독감 이후 최악의 전염병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됐을 당시 높은 치사율로 의사들마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미국 등에서 한때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시신을 처리하지 못해 냉동트럭까지 동원해야 했던 무시무시한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그나마 희생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첨단 생명과학, 특히 크리스퍼(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and CRISPR-associated protein 9, CRISPR-Cas9) 유전자 가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뉴욕타임스

화이자와 바이오앤텍,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를 약화하거나 독성을 제거해 투여하는 기존의 백신들과 달리 유전공학으로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최초의 인공 백신이다. 바이러스가 발견된 직후인 2020년 1월 중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코드(DNA)를 분석해 발표했고, 이를 토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는 스파이크 단백질 부분의 유전자 코드를 복제 합성해 백신을 만든 것이다.

특히 90% 이상의 면역 효과를 내면서 개발 착수 11개월 만인 2020년 12월 초 미국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사상 첫 메신저RNA 백신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 코드를 복제해 메신저RNA(mRNA)에 코딩한 뒤 지질나노입자(LNP: Lipid Nano Particle)에 담아 인체 세포에 투입하면, 인체 세포에서 이 유전자 코드를 토대로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성하고 이에 대항하는 면역 반응을 일으키도록 한 것이다.

모더나는 이틀 만에 스파이크 단백질을 합성하는 mRNA 염기서열을 코딩하는 데 성공했고, 이 유전자 코드를 토대로 41일 후에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어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인도했다.

유전공학 이용 코로나19 백신 개발 회사, 자료: 데일리메디

생명공학계는 특정 유전자 코드를 떼어내거나 붙일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코로나19 백신의 개발을 크게 앞당길 수 있었다며, 앞으로 어떤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라도 신속하게 진단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이제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인류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병충해에 강하고 산출량이 많은 농작물을 개발하거나 가축의 품종을 개량하는 데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메릴랜드 의과대학에서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한 돼지의 심장도 면역 거부 반응을 최소화하도록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 편집을 해 만들었다. 유전자 가위로 말라리아를 감염시키지 않는 모기를 만들기도 했고, 지난 2018년 중국의 한 연구실에서는 에이즈 유발 유전자를 제거한 쌍둥이를 출산하도록 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1세대 ZFN(징크핑거뉴클레이제: Zinc Finger Nuclease), 2세대 TALEN(탈렌: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 3세대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에 이어 자유자재로 원하는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4세대 유전자 가위 프라임에디터(Prime Editor)까지 급속히 발전했다.

김용철 취파

'신의 병기' 크리스퍼-카스9은 어떻게 개발됐나?

크리스퍼-Cas9 유전자 가위는 편집하려는 염기서열에 지퍼처럼 달라붙는 "가이드 RNA"와 DNA의 이중 나선을 해체하고 특정 유전자가 있는 DNA를 잘라내는 단백질 "Cas9 효소"로 구성되어, 가이드RNA 크리스퍼가 목표 지점을 찾아가면, 단백질 효소 Cas9가 목표 지점의 DNA를 절단한다.

이 크리스퍼 유전자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지난 1987년이다. 일본 오사카대학 연구팀은 장에 사는 미생물에서 29개의 염기가 5번 반복돼 나타나고, 그 사이사이를 서로 다른 32개의 염기가 반복되는 스페이서(spacer)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2-3 세대 유전자 가위 작용 비교

유전공학이 발달하면서 이런 패턴은 다른 미생물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2002년 네덜란드 과학자 러드 얀센(Rudd Jansen)이 이끄는 우트레히트대학(Utrecht University) 연구팀은 이를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 뭉쳐서 주기적 반복적으로 분포하는 짧은 염기서열)로 부르기 시작했다. 러드 얀센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서열이 또 다른 유전자 서열과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도 확인하고, 이를 CAS(CRISPR Associated System) 유전자로 불렀다.

과학자들은 카스(Cas) 유전자가 DNA를 절단하는 효소를 만들어 내고, 크리스퍼 유전자 사이의 스페이서에서 발견된 유전자가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같다는 사실에서 크리스퍼-카스 단백질이 우리 몸속 미생물의 방어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퍼-Cas9 시스템의 작동이 확인된 것은 2007년이다. 네덜란드의 식품회사 대니스코(Danisco)의 연구원들은 우유를 발효시키는 미생물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키는 실험을 한 결과, 일부 미생물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아 외부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미생물을 새로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8년 미국 매릴랜드 베데스타의 국립바이오기술정보센터 유진 쿠닌(Eugene Koonin)과 동료들은 사상 처음으로 크리스퍼-카스9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규명했다. 세균(Bacteria)이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Virus)에 대항해 싸우고 나면, 침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크리스퍼 유전자의 스페이서 부분에 저장하고,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이 스페이서에 저장된 유전자와 대조해 바이러스를 식별하고 카스9 효소를 동원해 퇴치한다는 것이다.

2012년 6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University California Berkeley)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 교수와 스웨덴의 우메오대학(University of Umea)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 Charpentier) 교수는 실험실 환경에서 크리스퍼-카스9 시스템을 이용해 어떻게 DNA를 편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문을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했다.

이에 앞서 리투아니아 빌뉴스대학(Vilnus University)의 생화학자 비르기니유스 식스니스(Virginijus Siksnys)는 크리스퍼-카스9에 대한 논문을 작성해 과학잡지 셀(Cell)에 기고했지만 편집자가 거부했고, 결국 2012년 9월에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논문을 게재했다.

그리고 2013년 1월에는 하버드대학과 MIT가 만든 브로드 인스티튜트(Broad Institute)의 펑 장(Feng Zhang)과 다우드나(Doudna) 교수팀을 비롯한 여러 기관 소속의 연구원들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어떻게 사람의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문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작동 원리

브로드(Broad) vs. CVC…'신의 병기' 크리스토퍼는 누구의 손에?

2020년 스웨덴의 노벨상위원회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논문을 처음으로 발표한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교수에 노벨화학상을 줬다. 하지만 미국 특허청에서 제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카스9에 대한 특허를 받은 것은 MIT와 하버드대학이 공동 설립한 브로드 인스티튜트(Broad Institute)이다.

'토마토' 또는 '1577-7751'처럼 앞에서부터 읽어도 뒤에서부터 읽어도 같다는 짧은 회문 반복(Short Palindromic Repeat) 구조가 뭉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Clustered Regularly Interapaced) 크리스퍼(CRISPR)는 박테리아가 외부에서 침입하는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자연의 면역 메커니즘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 매거진(WIPO Magazine)에 따르면 크리스퍼 메커니즘이 처음으로 공개 확인된 것은 2008년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톤에 있는 노스웨스턴대학(Northwestern University)의 과학자 에릭 손다이머(Eric Sontheimer)와 루치아노 마라피니(Luciano Marrafinni)가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범용 유전자 편집 장치(general purpose gene-editing tool)'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두 과학자는 논문 기고와 함께 미국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지만, 발명이 구체적으로 착상되지 않았다(reduction to practice)는 이유로 거절됐다.

크리스퍼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 6월 28일 당시 비엔나대학의 교수였던 프랑스 과학자 샤르팡티에와 버클리대학의 다우드나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크리스퍼-카스9에 대한 논문 '박테리아 면역체계에서 프로그램 가능한 듀얼-RNA-가이드 엔도뉴를레아제(핵산 중간 분해 효소: A Programmable Dual-RNA-Guided Endonuclease in Adaptive Bacterial Immunity)'를 발표하면서이다. 두 교수는 논문에서 크리스퍼와 카스9 효소로 시험관내(생체외) 환경에서 어떻게 유전자 편집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고, 논문 발표 1개월 전인 2012년 5월 관련 특허도 출원했다.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교수가 논문을 발표한 지 6개월 후인 2013년 1월 펑 장(Feng Zhang)이 이끄는 MIT-하버드대학 브로드인스티튜트(Broad Institute) 연구팀은 크리스퍼-카스9으로 포유류 세포의 유전자 편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 달 앞선 2012년 12월 관련 특허도 출원했다. 브로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출원 특허에 대한 신속 심사를 신청했고, 자신들이 포유류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처음으로 발명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1개의 관련 특허를 추가 출원했다. 2014년 4월 미국 특허청(USPTO)은 브로드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한 최초 특허를 부여했다.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특허 출원 연대기

2015년 4월 버클리대학은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 교수를 대신해 브로드를 상대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에 대한 저촉심사(interference proceeding)을 신청했고, 미국 특허심판원(USPTO: United States Patent Trial and Appeal Board)은 버클리대학의 신청을 받아들여 2016년부터 저촉 심사에 착수했다.

특허청에 맨 먼저 특허를 출원하는 사람에게 특허가 부여되는 '선출원주의(first to file rule)'가 적용되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2013년 3월16일 개정된 특허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맨 먼저 발명을 한 사람에게 특허를 주는 '선발명주의(first to invent rule)'를 적용했다. 저촉 심사는 선발명주의 체제에서 누가 첫 발명자인지를 가리는 절차로 브로드에 부여된 크리스퍼-카스9 특허는 2013년 3월 이전에 출원해 선발명주의 적용 대상이다.

2017년 2월 15일 미국 특허심판원(PTAB)은 "브로드에 부여된 특허와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교수가 출원한 특허는 그 대상이 서로 다른 특허이고 서로 저촉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PTAB은 "브로드의 특허는 진핵세포(eukaryotic cell) 환경에 한정된 크리스퍼-카스9 특허로 특정 환경을 제시하지 않는 버클리 측의 특허와 같지 않다. 당업자(유전자 가위 연구자)들은 원핵세포(prokaryotic cell)와 시험관내(in vitro) 환경을 포함한 모든 환경에서의 크리스퍼-카스9 시스템이 진핵세포 환경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브로드의 진핵세포 대상 크리스퍼-카스9 발명은 특정 환경을 명시 하지 않은 버클리의 크리스퍼-카스9 발명에 비해 진보성이 인정된다(non-obvious)"고 설명했다.

버클리 측은 미국 특허심판원의 결정에 불복해 특허 소송을 전담 관할하는 연방항소법원(CAFC: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에 항소했지만, 2018년 9월10일 연방항소법원은 특허심판원의 결정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브로드와 버클리 양측 가운데 누가 선발명자인지를 가리지 않고, 양측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면서 양측의 발명이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저촉하지 않는다는 미국 특허심판원과 연방항소법원의 결정은 브로드에 부여된 특허와 버클리가 출원한 특허 발명은 서로 다를 뿐 모두 유효하다는 것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판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UC 버클리와 브로드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 분쟁 일지

브로드(Broad) vs. CVC 2차 저촉 심사…원천 기술은 다툼 계속

버클리는 브로드의 크리스퍼 특허가 진핵세포를 대상으로 한 발명이기 때문에 특정 환경을 명시하지 않은 자신들의 발명과 다르다는 2018년 9월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진핵세포를 대상으로 한 크리스퍼-카스9 청구항을 넣은 특허를 출원했고, 2019년 6월 24일 미국 특허심판원의 2차 저촉 심사를 유발했다.

2차 저촉 심사에 나선 미국 특허심판원(PTAB)은 2020년 9월 10일 1) 양측이 제시한 특허 예비 출원일을 가장 빠른 출원일로 인정할 것인자 2) 1차 저촉 심사의 결과가 확정된 만큼 2차 저촉 심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3) 청구항을 넓게 해석해달라는 브로드의 신청을 받아들일 것인지 등 3개 사항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첫 번째, 선출원 일자와 관련 PTAB는 브로드의 첫 특허 예비 출원일(가출원일) 2012년 12월 12일을 최초 출원일로 인정했지만, 버클리에게는 첫 번째 예비 출원일 2012년 5월이 아닌 세 번째 예비 출원일 2013년 1월28일을 최초 출원일로 인정했다. 2012년 5월 최초 출원에서는 편집 목표 유전자를 식별하는 PAM(Protospacer Adjacent Motif) 서열이 없었고, 진핵세포의 유전자 편집에 필요한 특정 사항들이 누락돼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저촉 심사에서 브로드는 특허를 먼저 출원한 당사자(senior party), 버클리는 나중에 출원한 당사자(junior party)임이 선언된 것이다.

두 번째, 금반언(estoppel) 원칙과 관련 브로드는 1차 저촉 심사에서의 주장과 2차에서 주장이 같은 만큼 모든 사안이 확정돼 같은 사안에 대해 다시 심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특허심판원은 1차 저촉 심사에서는 선발명(priority)이나 특허성(patentability)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1차와 2차 저촉 심사의 대상이 같다고 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세 번째, 브로드는 분쟁 대상 특허의 청구 범위를 넓게 해석해 크리스퍼-카스9 특허 청구항의 가이드 RNA(guideRNA)를 단일 가이드 RNA 분자(single guide RNA molecule) 방식과 이중 가이드 RNA 분자(double guide RNA molecule)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 브로드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실험은 이중 가이드 RNA 방식으로 했고, 특허 청구항에는 단일 가이드 RNA로 돼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버클리 측은 단일 가이드 RNA에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허심판원도 특허 출원 과정에서 브로드가 가이드 RNA는 단일 가이드 RNA라는 의미로 지속적으로 사용했다며 브로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년 9월 10일 PTAB의 결정 이후 버클리 측은 선출원일 관련 결정은 동의할 수 없지만, 대부분 사항에 대해 특허심판원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했고, "결국 특허심판원이 진핵세포의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를 버클리 팀이 처음 발명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브로드 측은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크리스퍼 기술의 이용에 집중하자"며 합의를 촉구했다.

비록 브로드 측이 특허 예비 신청일 2012년 12월12일을 선출원일로 인정받았지만 버클리보다 불과 47일 빠르다. 특허심판원은 브로드의 선출원자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선발명자를 정할 3차 심리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촉 대상 출원 발명은 선발명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제 양측은 8년 전에 이뤄진 실험 자료 등을 통해 자신들이 먼저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를 실질적으로 발명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선발명을 입증하기 위한 브로드와 버클리 측의 제출 증거

브로드 vs. CVC 저촉 심사…10년 전 실험 데이터 놓고 3차 공방

2022년 2월4일 진핵세포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를 누가 먼저 발명했는지를 놓고 미국 특허심판원에서 3차 구술 심리(aural hearing)가 열렸다. 2012년 6월 28일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논문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버클리 대학의 다우드나와 독일 막스플랑크 감염연구소 소속 샤르팡티에 교수 등을 대표하는 CVC그룹(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the University of Vienna; and Emmanuelle Charpentier, 이를 총칭하여 'CVC' 측이라고도 한다. UC버클리그룹을 편의상 CVC 계열로 부른다)은 6월 28일 논문에서 발표된 유도RNA는 진핵 세포의 유전자 편집에 필요한 기술이며, 브로드 보다 실험 성공은 늦었지만 구체적인 구상이 먼저 있었음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반면 브로드 측은 UC버클리 연구진들이 성공하기 몇 개월 전에 펭 장 교수팀이 진핵세포의 유전자 편집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브로드 측은 "우리는 버클리 팀이 우왕좌왕하던 2012년 10월 5일 사이언스에 논문 초안을 제출했다. UC버클리 연구팀은 아이디어의 구체성이 없었다. 그저 희망만 있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UC버클리 측 변호사 엘리슨(Eldora Ellison)은 "브로드측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을 뿐이다. 펑 장 교수의 진핵 세포 유전자 편집 성공은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교수가 6월 28일 논문에서 제시한 가이드RNA 기술에 의거한 것이다. 장 교수 동료 가운데 하나가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의 논문을 기고 전에 검토했고, 가이드RNA에 대한 비밀정보를 장 교수 측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브로드 측의 님로드(Raymond Nimrod) 변호사는 "장 교수를 도와준 연구원은 사이언스에 논문이 발표되기 1주일 전에 크리스퍼에 대한 버클리대학의 컨퍼런스에서 논의된 공개된 정보를 공유했을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구술 심리에서 브로드 측의 님로드 변호사는 "펑 장 교수팀은 2012년 7월에 진핵세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구현했지만, UC버클리 과학자들은 실패를 거듭하며 2012년 10월에야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UC버클리 측은 "우리는 2012년 8월에 얼룩무늬물고기(zebrafish)를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에 성공했다. 하지만 특허의 법적 관점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구현 시기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6월 28일 이전에 UC버클리 연구팀이 갖고 있던 아이디어가 바로 그 이후에 구체화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브로드 측의 주장은 "우리가 진핵세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먼저 구체적으로 구현했다"는 것이고, UC버클리 측의 주장은 "그것은 누가 발명자인가(inventorship)에 대한 법적인 기준이 아니다. 브로드 측이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우리로부터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발명을 가져왔다면 그 사람은 발명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특허심판원은 3차 구술 심리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언제 의견을 낼지도 밝히지 않았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발명 다우드나, 펑 장, 김진수 교수(왼쪽부터)

"우리도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 보유자"…툴젠도 저촉 심사 합류

캘리포니니아 버클리대학의 다우드나와 스웨덴 우메오대학 샤르팡티에 교수가 이끄는 UC버클리 계열, 펑 장 교수가 이끄는 하버드대학과 MIT의 브로드그룹 외에 서울대학교 김진수 교수가 이끌었던 툴젠도 크리스퍼-카스9 원천기술을 보유한 3대 바이오 연구 집단 가운데 하나이다.

다우드나 교수팀은 2012년 5월 25일 크리스퍼-카스9에 대한 미국 특허를 예비 출원하고, 한 달 뒤인 6월 28일 사이언스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해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다우드나 교수팀의 논문과 특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발명 대상이 진핵세포라는 점을 명시하지 않아 원핵세포에 국한된 발명이 됐고, 미국에서 포유동물이나 식물에서 적용되는 진핵세포 대상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는 펑 장 교수가 이끄는 브로드 측에 부여됐다.

툴젠은 브로드가 크리스퍼-카스9 특허를 예비 출원한 2012년 12월 12일보다 1개월 이상 앞선 10월 23일 진핵세포 적용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특허를 미국에 예비 출원했다. 툴젠은 이를 원출원으로 2014년 4월 13일 2건(미국 특허 신청 번호 14/685,510과 14/685,568)을 정규 출원했다. 이 가운데 출원 번호 14/685,568 특허는 2020년 10월 등록됐고, 14/685,510 특허에 대해서는 저촉 심사가 시작됐다.

2012년 10월 최초 출원한 툴젠의 진핵세포에 대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

미국 특허청은 2015년 11월 툴젠이 신청한 14/685, 510 특허에 대해 미국 특허법 101조(특허 대상 적격성)과 103조(진보성), 112조(명세서 기재 요건)를 근거로 특허를 불허했지만, 미국 특허심판원(PTAB)은 2020년 4월 진보성(103조)을 인정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20일 이미 저촉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CVC와 브로드를 상대로 각각 저촉 심사 개시를 선언했다.

저촉 심사는 1차적으로 발명에 대한 특허 가능성을 따진데 이어 2차적으로 실험 자료 등을 토대로 누가 선발명자인지를 가리게 된다. 미국 특허심판원이 서로 다른 특허라며 각각에 대해 특허성을 인정하고, 선발명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본격 심사에 착수한 CVC와 브로드 간의 저촉 심사와 달리 툴젠과 CVC, 툴젠과 브로드 간의 저촉 심사는 초기 단계이다. 2016년 심사 개시가 선언된 CVC와 브로드 사이의 저촉 심사가 벌써 6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020년 12월 개시된 툴젠의 저촉 심사 완료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가이드RNA(빨강)가 Cas9효소(노랑)를 유도해 DNA(파랑)를 절단

툴젠의 연구를 주도한 김진수 박사는 "CVC의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교수나 브로드의 펑 장 교수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유전자 가위를 연구했지만, 툴젠은 2000년대 초 1세대 유전자 가위부터 연구했다"며, 툴젠이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의 최초 발명자라고 주장했다. 김유리 툴젠 부사장은 "김진수 박사 팀은 1세대 징크핑거(ZFN: Zinc Finger Nuclease), 2세대 탈렌(TALEN: Transcription Activator Like Effector Nuclease), 3세대 크리스퍼-카스9까지 연구한 당시 유전자 가위 분야 최고였다. 관련 실험 데이터와 자료가 다 있다. 펑 장 교수가 2012년 7월 20일 성공했다고 제시한 실험 자료는 메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툴젠과 CVC, 브로드 3자 간에 진행되고 있는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저촉 심사에서 지금까지 미국 특허심판원에 제출된 진핵세포 대상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실험 성공 자료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브로드 측이 제시한 2012년 7월 20일로 나타나고 있다.

CVC 측은 브로드가 7월 20일 구현한 발명이 CVC 계열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교수의 기술적 사상을 구현한 것일 뿐이라며 진짜 발명자는 CVC라고 말하고 있다. UC버클리 연구팀의 2012년 6월 28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 기술에 관한 사이언스 논문과 2012년 8월에 얼룩무늬물고기(zebrafish)를 대상으로 성공한 유전자 편집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진핵세포에 대한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관련 청구항 발명의 출원일 면에서는 툴젠이 2012년 10월 예비 출원한 특허가 브로드나 UC버클리 측보다 빠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선발명주의가 적용됐던 만큼 툴젠이 최초 발명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실험을 통해 아이디어의 구체적인 착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실험 자료 등으로 입증해야 한다.

발명은 기술적 사상으로 미국은 발명의 완성된 착상만으로도 발명자로 인정받는다. 일반적으로 발명의 실현(reduction to practice)은 고려하지 않는 만큼 발명이 의도대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 여부는 발명자로 인정받는 기준(inventorship)과 관련이 없다.

하지만 화학 및 생명공학 분야와 같은 "예측할 수 없는 기술 분야"에서는 발명을 구상(conceive)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실험과 같은 실질적인 실현(an actual reduction to practice)이 필요한 예외적인 경우가 있는데, 이를 '착상과 실현의 동시 요건(SCRP: Simultaneous conception and reduction to practice)이라고 한다.

실험의 과학이라고 하는 화학이나 생명공학 발명의 경우 발명 내용과 예측가능성 내지 실현가능성이 현저히 부족하여 실험 데이터가 제시된 실험 예가 없으면 완성된 발명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와 같은 경우에는 실제 실험을 통하여 발명을 구체화하고 완성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의 관점에서 발명자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는 효과의 예측이 아니라 실제로, 발명가들이 실험을 시작할 때까지는 화합물의 특정한 화학적 구조나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명의 구상을 위해서는 실험을 통해 구체화(reduction to practice)해야 한다는 것이다.

툴젠은 진핵세포 유전자 가위 특허의 선출원인으로 선발명의 추정효를 받지만 UC버클리 측이 이보다 빠른 실험을 주장하고 제시하고 있는 만큼,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의 원천 기술을 개발한 최초 발명자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UC버클리의 증명을 탄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가장 먼저 진핵세포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자를 편집했다는 실험 사실을 제시해야 안전하다.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특허 보유 그룹

물고 물리는 유전자 가위 기술…크리스퍼는 누구에게?

2012년 처음으로 발명된 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카스9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DNA가 아닌 RNA를 자르는 크리스퍼-카스13, 4세대 유전자 가위라고 불리는 '프라임에디터'까지 개발됐다.

CVC나 브로드는 자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외에 원천 기술을 라이센싱하며 유전자 편집 관련 특허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관련 특허가 출원 등록돼 두터운 특허 덤불(patent thicket)을 구성하고 있는 만큼, 누가 원천 기술을 인정받는지에 따라 엄청난 특허 소송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허 소송과 별도로 유럽에서는 브로드와 CVC, 툴젠 3자 외에 다른 바이오 연구집단들이 가세해 또 다른 유전자 가위 특허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CVC나 브로드, 툴젠 등 크리스퍼-카스9 원천 기술 발명자들이 함께 특허 풀을 구성해 이용하는 것이 기술 발전과 이용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 기술이 생명공학 기술의 핵심으로 관련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만큼 양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질병을 유발하는 결함 유전자를 제거해 질병을 치료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병이 유전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은 농업이나 축산업은 물론 난치병 치료에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결함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도 있고 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진화의 결과로 탄생한 인류를 창조자의 위치로 부상하게 한 유전자 편집 기술은 예상하지 못한 돌연변이의 출현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제 원천 기술을 놓고 이권 다툼을 하기 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인류의 건강한 삶을 극대화하는 데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하고, 기술 수준을 더욱 고도화하는 데 힘을 쏟을 때라는 목소리가 높다.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발명과 특허 분쟁 일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