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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미술 이야기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북적북적]

반전의 미술 이야기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북적북적]

조지현 기자

작성 2022.02.13 09: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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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미술 이야기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28 : 반전의 미술 이야기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코로나 확진자가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는 요즘입니다. '곧 끝나겠지, 끝날 거야' 하는 낙관적 마음 먹기도 쉽지 않은 시기입니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고 오랜 기간 맹위를 떨친 전염병이라면, 14세기 흑사병이 제일 먼저 떠오르죠.
 
격리를 뜻하는 영어 '쿼런틴(quarantine)'도 이 때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흑사병 이후 이탈리아 베네치아 정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배에 대해 40일간 격리조치를 취했는데 40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콰란타(quaranta)'가 격리를 뜻하는 용어로 정착하게 된 겁니다.
-《벌거벗은 미술관》中

흑사병은 당시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고, 미술 양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목적이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게 됐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개인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미술 후원자들은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사후 구원의 열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흑사병이 퍼져나간 후 그림값이 절반 이상 떨어집니다. .. (중략)…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인 양상이지만, 흑사병 발생 이후 미술품 수요자가 사회 각 계층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가격이 점차 하락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즉 흑사병 시대에 들어서면 중소 상인이나 노동자, 농부, 가난한 과부도 미술을 통해 사후 자신의 추모를 기획하게 된 것이죠.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소품을 구매했고, 따라서 이 시기 작품의 평균적인 가격은 이전보다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처럼 흑사병 시기에 미술의 수요층이 확대된 것은 개인 추모에 대한 열망의 결과였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흑사병은 미술의 대중화에 상당부분 공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벌거벗은 미술관》中

'골라듣는 뉴스룸'의 책 소개 팟캐스트 '북적북적', 이번 주는 미술사학자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책 《벌거벗은 미술관》(창비 펴냄)을 소개하고 맛보기로 낭독합니다. 앞서 인용한 내용은 크게 4개의 주제를 다루는 이 책의 네 번째 부분 <미술과 팬데믹>속 일부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전염병을 통과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터널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여러분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역사적으로 흑사병은 르네상스로 이어진 반면 스페인독감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두 갈림길을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에 투영해 본다면 우리에게는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장밋빛 세계의 가능성과, 지금보다 더 파괴적인 대재앙의 가능성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벌거벗은 미술관》中

지금 우리의 상황과도 닮아 있어 <미술과 팬데믹>을 먼저 언급했지만, 이 책은 '고전미술'에서 출발합니다. '벨베데레의 아폴로'나 '밀로의 비너스' 같은 작품은 제목만 들어도 대리석 조각의 모습이 떠오르죠? 그런데 이 작품들은 원래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청동상이었습니다. 청동은 금속이라 녹여서 무기를 만들기 쉬웠는데요, 이렇게 없어진 그리스 작품을 그대로 본따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본을 만든 것이죠. 많은 로마 조각들의 원본은 이렇게 그리스 미술품이었습니다. 그리스 미술을 '이상적'인 것으로 놓고 재현하려는 노력은 그 이후로도 계속됩니다. 20세기 들어서도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인 '올리피아'는 고대 그리스 신전과 조각을 영화 앞부분 긴 시간 동안 보여줍니다. 고전의 권위를 빌려 자신들이 '정통'을 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이 책의 저자인 양정무 교수는 미의 완벽한 기준처럼 숭상돼온 '고전 미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신화화됐는지 짚어보고 허상은 없는지, '미의 기준'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인지 묻습니다.
고전에 대한 이런 집착은 박물관, 미술관의 탄생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18세기 말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침공 때 6백점이 넘는 미술품을 파리로 가져갔습니다. 나폴레옹은 점령국마다 박물관을 세웠는데, 유럽 곳곳의 미술품을 프랑스로 가져오기 위한 '중간 기착지'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저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영국과 독일, 미국, 대한제국까지 박물관과 미술관의 탄생과 제국주의가 박물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앞으로 박물관이 어떤 공간이어야 되는지 질문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미술이 신비주의의 베일에 가려져 고상한 취미나 교양으로 포장되는 현실을 넘어서 영욕의 인류사를 담은 생생한 실체라는 인식에 다가가기 위해 크고 묵직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벌거벗은 미술관》中

'미술에 담긴 영욕의 인류사'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책입니다. 양정무 교수는 유학생 시절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 재미있는 입담이 책에도 잘 드러나 있어, 곁에서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유럽의 박물관이며 미술관을 직접 가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렇게 책으로나마 그림과 함께 새로운 내용을 읽으며, 잠시 다른 나라, 다른 시대로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출판사와 저자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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