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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명 위기' 윤미향, 박덕흠이 살리나

43년 만의 의원직 제명안, 이번에도 무산될 듯

[취재파일] '제명 위기' 윤미향, 박덕흠이 살리나
▲ (왼쪽부터) 윤미향 - 박덕흠 - 이상직 의원

43년 만에 의원직 제명 위기에 놓인 세 명의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윤미향, 이상직 의원과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입니다. 윤미향 의원은 재작년 불거진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의혹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고 이상직 의원은 이스타항공 관련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 형을 받고 수감 중입니다. 박덕흠 의원은 가족 명의 건설사가 피감기관 등에서 특혜 수주를 받았다는 논란과 함께 이해충돌 의혹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제명은 곧 국회의원직을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법정에서 당선무효형이 나는 것을 제외하고 '제명'으로 의원직을 잃은 건 지난 1979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윤미향

이들 가운데 윤미향 의원이 적극적인 '셀프 구명 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 지난 9일 SBS 8뉴스에서 단독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지난달 25일 국회 윤리특위가 윤미향, 이상직, 박덕흠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한 이후부터 최근까지, 윤 의원은 한때 동료였던 민주당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고, 그마저 안 되면 약 4천 자 분량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윤 의원은 "당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웠지만 공개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해 왔다"면서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조목조목 해명했습니다. 또 범죄사실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자신을 제명하는 건 "심각한 인권침해"라며 제명안 철회에 협력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단독] 윤미향, 셀프 구명 운동 중…윤리특위 '차일피일'

지난달 27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기자회견

윤미향 의원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국여성연대 등 많은 여성·시민단체 역시 제명안 철회를 요구하며 윤 의원 구명 운동에 나섰습니다. 이들이 대대적인 구명 운동에 나선 것은 지난달 27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기자회견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송 대표는 "국회의원들의 잘못에도 우리 국회가 적당히 뭉개고 시간 지나면 없던 일처럼 구는 게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라며 윤 의원 등에 대한 제명안을 신속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거대 1당이자 한때 몸담았던 당의 대표마저 등을 돌렸으니 윤 의원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한 것으로 비쳤습니다.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그런데 그런 윤미향 의원에게 의외의(?) 구세주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함께 제명이 권고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입니다. 박덕흠 의원이 원해서가 아닙니다. 그 역시 뜻하지 않게 윤 의원의 '구세주'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당도 다르고 심지어 같은 처지에 놓인 박 의원이 어떻게 윤 의원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지,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실 분도 많을 겁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설명을 조금만 들으시면 바로 이해가 가실 겁니다.

위기의 윤미향, 박덕흠이 구세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시점에서 윤미향 의원 등에 대한 제명안은 이번에도 무산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국민의힘이 윤리특위 소위 소집을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원직 제명안이 통과되려면 먼저 교수와 법률가 등 외부 인사로 구성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제명안을 심사해야 합니다. 이후 자문위가 제명을 권고하면, 국회 윤리특위에 전체회의에 상정한 뒤 다시 소위와 전체회의를 거쳐 모든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는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게 됩니다.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현행 295석을 기준으로 197석 이상) 비로소 제명이 완료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국회 윤리심사자문위 심사 + 제명안 권고 -> 2) 국회 윤리특위 전체회의 상정 -> 3) 국회 윤리특위 소위 심사 ->
4) 국회 윤리특위 전체회의 처리 + 제명안 발의 -> 5) 국회 본회의 처리


자문위는 지난달 5일 세 의원에 대한 제명을 권고했고 민주당은 단독으로 윤리특위를 소집해 전체회의에 제명안을 상정했습니다. 즉 2번까지 진행된 셈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물론 국회 본회의 표결 절차지만 사실상 3번만 통과하면 5번까지 가는 건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2번 다음 절차인 3번, 소위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민주당은 내일(14일) 본회의를 앞두고 지난 10일, 윤리특위를 소집하자고 국민의힘에 제안했습니다. 물리적으로 최소한 10일에는 논의를 시작해야 14일 본회의에 올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남은 절차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바로 3번, 소위 심사 절차입니다. 소위에선 여야 의원들이 윤리심사자문위가 심사한 내용을 가지고 왜 제명을 권고했는지, 제명할 만큼 잘못을 저질렀는지 논의하고 가부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소위 회의를 거쳐 채택이 되어야만 전체회의로 가고, 전체회의에서 통과되면 본회의에 제명안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대선 선거운동을 이유로 본회의가 열리는 14일에나 특위 소집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알려졌습니다. 윤리특위 여당 간사이자 원내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한병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에게 "국민의힘에서 소위 소속 의원 2명이 대선 선대위에 들어가 있어 사보임을 해야 하고 일정 조율이 어렵다는 이유로 14일 개최를 주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14일 오전에 윤리특위 소위를 연다고 해도, 소위 심사와 전체회의 채택, 발의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14일 본회의 처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문제는 14일 본회의가 사실상 대선 전 마지막 국회 본회의라는 점입니다. 15일부터는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됩니다. 후보는 물론이고 여야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각자 지역구로 흩어져 선거운동에 매진하게 됩니다. 대선 전 제명안 처리는 물 건너가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대선 이후는 어떨까요? 대선이 끝나면 이긴 쪽은 이긴 쪽대로 바쁘고 진 쪽은 진 쪽대로 바빠 제명안 따위 논의할 새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애초에 이번 제명안 처리가 대선용 카드라는 분석이 나왔던 만큼, '흐지부지'라는 국회의 주특기가 또 한 번 발휘되는 셈입니다.

헤어지지 못하는 국민의힘, 떠나가지 못하는 박덕흠

국회 국토교통위에 소속돼 있을 때 가족 명의 건설사에 피감기관의 일거리를 몰아주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박덕흠 의원은 2020년 9월 23일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그렇다면 왜 국민의힘은 윤리특위 소집을 미룬 걸까요? 표면적으로는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게 국민의힘의 입장이지만 속내는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박덕흠은 윤미향, 이상직과 경우가 다르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갖은 의혹으로 국민적 공분을 불렀고 수사 끝에 재판을 받고 있는 (본인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윤미향 의원이나 아예 징역 6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 이상직 의원과 달리, 박덕흠 의원은 아무런 사법적 처분을 받지 않았습니다. 200억 대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장이 제출됐지만 수사는 1년 5개월째 감감무소식입니다. '검찰의 봐주기'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사건이 무혐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지역구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을 의혹만으로 제명할 수 있냐는 게 박 의원 본인의 주장이자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로 전해졌습니다.

박덕흠 의원의 '개인기'도 한몫한다는 분석입니다. 2020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박 의원의 재산은 559억 8855만 원, 현직 국회의원 가운데 랭킹 2위입니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박 의원의 음덕(陰德)을 입은 의원이 한둘이 아니다'라는 말이 국회 안팎에 파다합니다. 실제 민주당 내부서조차 박덕흠 의원을 두둔하는 의원이 여럿 있습니다. 국회 국토위에 있으면서 가족 명의 건설사가 피감기관 공사를 수주하는 등의 여러 의혹은 국민 눈높이에 부적절하지만, 의원직 제명까지 가기에는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식의 논립니다.

비례 초선인 윤미향, 재선인 이상직 의원과 달리 내리 3선에 성공한 어엿한 중진이라는 박 의원의 당내 위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당내 중진이자 국회 부의장인 정진석 의원과는 사돈까지 맺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국민의힘에서 그리 쉽게 버릴 수 있는 카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윤리특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윤리특위 개최 여부와 본회의 처리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소위 회부도 안 됐는데 무슨 본회의를 하느냐"며 "민주당 쪽에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윤미향 의원(왼쪽)과 이상직 의원

몸이 달은 것은 민주당입니다. 당 대표까지 나서서 '제명안 신속 처리'를 강조한 것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누적된 '내로남불'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덜어보겠다는 의도로 전해졌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정체가 이어지면서, 민주당은 대선에 도움이 되는 카드라면 무엇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단 분위기입니다. 윤미향, 이상직 의원에 대한 국민 여론도 여전히 좋지 않은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는 빨리 제명안을 처리하는 게 유리한 상황입니다. 박덕흠 의원의 경우와는 달리, 윤 의원과 이 의원에 대한 민주당 내부 기류도 좋지 않습니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제명안을 처리하겠다는 당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 단독으로 윤리특위를 소집해 제명안을 처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찌어찌 윤리특위를 거쳐 본회의에 올린다 쳐도, 제명안 처리에는 재적의원 3분의 2, 즉 현행 295석 가운데 197석이 필요합니다. 민주당 의석수 172석에, 정의당, 시대전환, 기본소득당과 무소속 김홍걸·양정숙·양향자 의원을 모두 '영끌'해서 합쳐도 183석에 불과합니다. 윤리심사자문위가 윤미향, 이상직, 박덕흠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함께 권고했기 때문에 윤미향, 이상직 의원에 대한 제명안만 따로 처리하기도 어려운 노릇입니다. 국민의힘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에 반해 국민의힘은 느긋한 분위기입니다. 앞서 설명한 이유도 있지만, 박덕흠 의원 제명안 처리 여부가 대선 판세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결과적으로 박덕흠 의원이 윤미향 의원을 구제할 가능성이 매우 큰 셈입니다.
 

1991년 윤리특위 설치 이후 '0건'…여전한 방탄 국회

글 앞머리에도 썼지만 우리 국회가 생긴 이래 국회의원이 제명된 건 1979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제명 사례가 유일합니다. 사실 이 경우는 예외에 가깝습니다. 사실상 독재 정권 치하 여당이 일방적으로 야당 총재를 제명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리한 제명은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 부마민주항쟁으로 번졌고 계엄령까지 내려진 끝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격당해 사망한 10·26사태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로 기준으로 삼는 게 국회 윤리특위가 처음 생긴 1991년입니다.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회는 단 한 번도 국회의원을 제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가로세로연구소로 유명한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11년 18대 국회에서 제명될 뻔했지만 본회의에서 부결됐고 징계 수위가 '30일간 국회 출석 정지'로 대폭 낮아졌습니다. 19대 국회에서는 성폭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무소속 심학봉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윤리특위를 통과했지만 본회의 표결 전 심 의원 스스로 사퇴했습니다. 윤리특위가 줄곧 유명무실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유입니다.

물론 국회는 정치의 최일선이고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박덕흠 의원에 대한 국민의힘의 보호 논리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대선 정국인 만큼, 대선을 둘러싼 각자의 셈법에 의해 수가 좌지우지되는 것도 정치권에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의원님'들의 갖가지 논란과 의혹에 분노하는 시민의 입장에선 화가 치미는 것도 당연한 노릇입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의 뿌리 깊은 정치혐오의 배경에는 늘 제 식구 감싸기에 치중하고 유독 서로에게 관대한 국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의도만의 정치 논리가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 전체를 불신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집니다.

더구나 윤미향, 이상직, 박덕흠 의원에 대한 제명을 건의한 것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입니다. 다들 명망 있는 학계와 법조계 인사들로, 민주당과 국민의힘 스스로 추천한 사람들입니다. 자문위의 심사 내용은 소위 심사 당일까지 비밀에 부쳐질 만큼 나름 무게가 있고 내용도 상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문위가 세 의원에 대한 제명을 권고하기까지 깊이 있는 판단 절차를 거쳤다는 뜻입니다. '의혹만으로 제명할 수 없다'는 논리라면, 의원들이 소위에 참석해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물론 아무도 "제명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예견되고 있습니다. 내일(14일) 국회 윤리특위가 '혹시나'일지, '역시나'일지는 국회의원들 스스로에게 달렸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는 반복되지만 반드시 기록되고, 시민들 누군가는 이 역사를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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