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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비하인드] 우리는 코로나 '셀프 치료' 준비가 돼 있을까

코로나 비하인드 6편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놓습니다. [편집자 주 ]

전화기 너머로 한껏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무 답답해요. 이러다 전 국민 다 감염될 것 같아요." 제보자 이 씨의 60대 어머니는 2년 전 대장암이 간으로까지 전이돼 수술을 받았고 현재도 추적 관찰 중인 환자인데, 닷새 전 코로나에 확진됐다고 했습니다. 화가 난 이유는 닷새 동안 아무 연락을 못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살진 않지만 어머니와 둘이 식사를 한 적이 있는 자신은 밀접 접촉자인지, 격리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보건소에 따지러 가는 중이에요. PCR 검사받고 음성 나왔고 이틀 동안 저 스스로 격리했어요. 어제만 보건소에 전화를 200통 했거든요? 한 번 연결됐는데 자기는 담당이 아니라고 끊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마스크 쓰고 나와 버렸어요. 보건소 찾아가서 우리 엄마 담당자 누군지 찾아서 따지려고요."

결과적으로 이 씨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보건소 정문은 닫혀 있었고, 직원들이 출입하는 통로로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보건소 문 앞에는 본인처럼 '더 기다릴 수 없어 달려온' 다른 확진자의 가족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1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우리는 코로나 '셀프 치료' 준비가 돼있을까

이 씨와 통화한 건 지난 주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문제가 잘 해결됐는지,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좋아졌는지 궁금해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다행히 보건소를 찾아갔던 다음 날, 그러니까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엿새째 아침에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다행히 상태가 악화되진 않았고, 격리는 해제됐다고 했습니다. 다만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60대 고령층이고, 기저질환자이기도 한데 정부 발표처럼 팍스로비드 처방은 되지 않더라고요? 보건소에서 받은 건, 제가 약국에서 사다드린 것과 같은 해열제가 전부였어요. 제대로 치료를 받았단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지금은 격리 해제는 됐지만 건강이 염려돼 집 밖으로 안 나가세요."
 

'집중 관리군-일반 관리군' 이원화 후엔 달라졌을까?

이 씨 어머니가 확진된 건 정부가 재택치료 체계를 개편하기 전입니다. 60세 이상 고령층, 50대 기저질환자, 면역 저하자 등 팍스로비드 투약 대상자인 고위험군과 그 외 나머지 일반 환자군을 분리해서 관리한다는 게 새롭게 바뀐 재택치료의 핵심입니다. 개편의 근본적 이유는 정부의 재택 관리 여력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 씨 가족의 사례처럼 아무 케어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다보니, '더 관리가 필요한 고위험군에게 역량을 집중한다'는 게 정부가 선택한 현실적 대안입니다.

개편된 체계는 지난 10일부터 적용됐습니다. 새 체계가 자리 잡는 데까지 당연히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오미크론의 확산 속도는 그런 여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확진자는 5만 명을 넘어섰고, 재택 관리 환자는 하루가 달리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우리는 코로나 '셀프 치료' 준비가 돼있을까

또 다른 제보자, 임 씨와 통화를 한 건 지난 11일이었습니다. 60대 중반의 남성으로, 전날 아침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본인이 직접 작성해야 하는 역학조사 문자까진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습니다. 고혈압에 심장질환을 가진 60대는 정부의 새 재택 관리 체계에서도 집중 관리 대상이 되는 고위험군. 하지만 "지금 병상 치료는 어렵고 재택치료를 해야 한다. 재택관리팀에서 전화를 할 거다"라는 보건소 역학조사관의 첫 전화 이후 이틀 동안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임 씨는 잦은 기침을 했고, 목소리가 갈라졌습니다. 열은 없지만 오한이 심해진다고 임 씨는 말했습니다.
 
"아내는 다행히 음성이 나왔어요. 그래서 보건소에 좀 가봐달라고 했어요. 하루 종일 전화해도 안 받거든. 그래서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물어보라고. 내가 고위험군이 맞긴 한 건지, 그러면 어떤 치료를 받으면 되는 건지 아무 것도 지금 아는 게 없어요. 오늘 아침에 총리가 TV 나와서 정부가 방치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게 방치죠. 방치가 아니면 뭐가 방치입니까?"
 

환자 "재택 방치다"…정부 "재택 방치 아니다"

저는 정부의 이번 재택 치료 개편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합니다. 역학조사부터 환자 배정, 재택치료 관리까지 모두 맡기엔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의료 대응 체계는 이미 한계를 드러낸 상황이었습니다. 인력과 시스템엔 제한이 있기 마련이니, 이 제한된 역량을 더 위험한 사람들에게 쏟아 위중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은 상식적인 선택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책의 취지가 좋고 방향이 옳다고 해서 항상 '좋은 정책'은 아닐 겁니다. 국민의 일상에서 힘을 발휘 하지 못하는 정책은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의미를 잃습니다. 앞서 보신 이 씨와 임 씨 외에도 재택치료를 직접 경험한 환자들의 제보는 매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새 체계 발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받지 못했다', '방치되고 있다'였습니다.

(1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우리는 코로나 '셀프 치료' 준비가 돼있을까

하지만 정부 스스로의 평가는 조금 다릅니다. 언론에서 "재택 방치" 또는 "각자도생"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두고 불편함을 여러 번 드러냈습니다. 보건소가 떠안고 있던 코로나 환자 관리를 1차 병원(동네 병·의원)으로 넓히고, 국민들이 방역수칙을 스스로 잘 지키고 있는 만큼 '자율 방역'으로 전환하는 것이지 정부가 손을 놓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재택 방치라고 표현하는 언론 보도가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과격하다'는 평가도 내놨습니다.
 
"국민의 자율과 협력에 기반한 방역으로 제한된 행정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저희는 자율과 협력이라고 하는데 기자들은 방치, 각자도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듯하다. 일반 관리군도 동네 병·의원과 재택상담센터에서 상담받을 수 있다. 자꾸 '방치'라고 하시는데, 저희 새 체계의 내용을 제대로 반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종균 보건복지부 재택치료반장, 2월 10일 온라인 브리핑)

"심지어 "통제 포기", "재택 방치", "각자도생" 등 과격한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아파하는 국민의 손을 놓거나, 외면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에 맞게 위중한 분들에게 의료 역량을 집중하되, 나머지 국민들에게도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김부겸 국무총리, 2월 11일 중대본 회의)

(1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우리는 코로나 '셀프 치료' 준비가 돼있을까

다시 재택치료 현장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1차 병원으로 확산된 재택환자 치료는 잘 이뤄지고 있을까요. 이 부분은 아직 평가하긴 좀 이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새 체계가 시작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말처럼 일반 환자들에게도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는 짚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 재택환자들이 전화로 비대면 진료와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병·의원 목록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재택치료 의료기관 명단).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2천500개 정도의 의료기관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10일부터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실제 전화를 해보면 정부 브리핑 내용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병·의원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홈페이지에 진료 가능한 병원으로 등재된 병원 몇 곳과 직접 통화해봤습니다.
 
서울 A병원
기자 : 재택치료 전화 상담이랑 처방 가능하다고 해서 전화드렸거든요.
병원 : 저희 아직 지금 시작 안 했는데요.
기자 : 그 처방이랑 지원 상담 가능하다고..
병원 : 아니요. 지금 아직 시작 안 했어요 저희.
기자 : 언제쯤 시작하시나요?
병원 : 아직 정확한 날짜는 정해진 게 없는데요.
기자 : 여기 안내가 그렇게 돼 있어가지고요 연락….
병원 : 아직 저희 아직 안 했어요. 안 해요.


서울 B병원
기자 : 코로나 재택치료 전화 상담이랑 처방이 가능하다고 해서요.
병원 : 저희가 아직 신고를 안 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기자 : 지금은 상담이나 처방이 어렵나요? 언제부터 가능한가요?
병원 : 지금 보건소랑 통화가 안 되고 있어요.
기자 : 심평원 홈페이지에는 이 병원이 가능하다고 나오는데요.
병원 : 네? 저희 병원이 올라와 있다고요?

(13일용) [코로나 비하인드] 우리는 코로나 '셀프 치료' 준비가 돼있을까

재택치료 경험한 환자들이 정부에게 '말하고 싶은 것'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산 지 2년이 넘었습니다. 익숙해진 것 같으면서도 하루 몇만 명씩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일상은 또 생경하고 두렵습니다. 코로나에 확진되면 무조건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해 치료를 받는 게 당연했던 게 사실 얼마 전 일입니다. 한 달 전만 해도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재택환자보다 더 많았습니다. 정부는 '다른 병에 걸렸을 때 동네 병원을 먼저 찾는 것처럼, 코로나도 평소에 다니던 병원을 통해 진료를 받으면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새로운 체계가 국민들에겐 아직은 불안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뀐 체계가 '재택 방치'가 아닌 '자율적 치료'로 받아지려면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재택치료를 경험하거나 현재 진행 중인 환자들과 전화 또는 화상 인터뷰를 하며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실제 재택치료를 경험해보셨는데,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환자들이 해주신 답은 사실 그리 거창한 요구는 아니었습니다.
 
"양성 판정 연락을 줄 때 지금 현재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시면 좋겠어요. '지금 연락해야 할 환자들이 이만큼 있어서 다음 연락이 가기까지 며칠 더 걸릴 수 있으니 불안해하지 마시라. 너 같은 증상의 환자들은 이런 특성이 있는데, 집에 이런 종류의 약이 있으면 도움이 될 거다' 뭐 이렇게요." (남편과 함께 확진된 40대 여성)

"요즘 민간 병원에 전화해도 통화량 많으면 번호 남기고 콜백 해주거든요? 지금 앞에 대기 인원이 몇 명이라 오래 걸리니 번호 남겨놓으면 뭐 언제까지 전화 주겠다,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 시스템 도입해주면 안 되나요? 이렇게 확진자가 많은데요." (확진 판정받은 30대 남성)

"포털사이트에 '재택치료 가능 병원'이라고 검색해도 제대로 나오는 정보가 없어요. 정부가 안내 문자 정말 많이 보내잖아요? 자치구별로 우리 지역에서 어느 병원이 가능한지 그런 리스트를 업데이트해서 보내주면 더 용이하지 않을까요? 그냥 홈페이지에 올려놨으니 들어와서 봐라 이런 거 말고." (자녀가 확진돼 공동격리 중인 30대 주부)

(취재 : 박수진, PD : 김도균, 일러스트 : 김정연,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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