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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현대산업개발이 사고 한 달 만에 4천억짜리 시공권을 따낸 방법

파격적 조건을 내세운다 한들, 회생의 기회로 볼 수 있을까

광주 화정 아이파크 공사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그제(7일), 붕괴 현장에서 마지막 매몰자가 구조됐습니다. 이번 사고로 모두 6명이 목숨을 잃었죠. 매몰된 노동자들이 수습되기까지는 꼬박 한 달이 걸렸는데, 현대산업개발은 그 사이 다른 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따냈습니다.

현대산업개발

안양 관양 현대아파트 조합원 투표에서 926표 중 509표(53%)를 얻어 경쟁사인 롯데건설을 제치고 재건축 사업 시공사로 선정됐습니다. 지난해 6월, 그리고 지난달 초 광주에서 대형 사고가 있었음에도 재건축 시공권을 따낸 겁니다. 이로써 현대산업개발은 안양 관양동 일대 6만 2557㎡ 땅에 공동주택과 부대복리시설을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공사비는 모두 4,174억 원입니다.
 

대체 어떤 조건을 제시했길래?


"우리의 재산과 목숨을 현산에게 맡길 순 없다!", "보증금 돌려줄 테니 제발 떠나주세요"

현대상가조합원 플랜카드

지난달, 이 아파트 곳곳에 붙은 현수막 문구입니다. 광주 사고 안전을 우려하는 일부 조합원들이 아파트에 붙인 겁니다.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거세지자 현대산업개발은 파격적인 조건을 쏟아냈습니다.


현대산업개발이 내세운 전략, '조합원 돈 안 들이겠다'입니다. 현대산업개발이 조합원 측에 제시한 조건은 이렇습니다.

▲사업추진비로 조합원 세대당 7천만 원 지급
▲후분양제(공사가 60~80% 이상 진행되면 분양하는 방식) 조건으로 평당 4천800만 원 보장
▲안전결함 보증기간 30년까지 확대
▲분담금 납부 유예기간 4년
▲매월 공사 진행 현황과 외부 전문가 통한 안전진단 결과 보고
▲외부 전문 안전감독관 업체 운영비용 부담


조합원 손에 현금 쥐어주며, 시세보다 비싸게 보장해 주겠다는데 어떤 조합원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실제로 취재진이 만난 조합원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안타까운 붕괴 사고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재건축 제안서를 보면 현대산업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쏙 지우고, 현대만 강조


지난달 15일,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는 A4용지에 빼곡히 자필 편지를 써 조합원에게 보냈습니다. '광주 사고로 인해 전사적인 차원에서 사고 수습을 위해 집중하고 있다'는 유 대표는 '중대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회사의 안전관리 및 현장 운영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대산업개발 재건축 홍보 영상 중 일부

그리곤 현장 곳곳에서 '현대산업개발'을 지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현대'라는 이름에 명예를 걸겠다." 현대산업개발의 재건축 홍보 영상에 나오는 문구인데, '현대산업개발'은 쏙 빼놓고 '현대'만 강조합니다. 처음에 영상을 보고 시공사가 현대산업개발인지, 현대인지 헷갈리기까지 했습니다. 'NO아이파크' 보이콧이 거세지자, 자사 브랜드 지우기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현대산업개발은 사고가 난 화정 아이파크 붕괴 현장에서도 '아이파크' 상표를 스티커로 가렸습니다. '아이파크'가 지워진 공간엔 꽃무늬 스티커가 자리 잡았습니다. 아이파크를 지운다 한들 현대산업개발이 해당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요. (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를 지우는 작업 중에도 '사다리 위에서 작업을 하면 안 된다'는 안전작업 지침을 위반해 광주고용노동청의 개선 명령을 받았습니다.)
 

파격적인 조건,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평당 4천800만 원 보장도 조합창립총회 때의 일반 분양가에 비하면 훨씬 비쌉니다. 당시 일반 분양가는 평당 2천700만 원, 경쟁사인 롯데건설이 추정한 분양가는 3천200만 원입니다.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 현대산업개발이 시공권을 따내려고 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연달아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로 영업정지 또는 면허취소 처분을 당할 수 있단 것도 변수입니다. 광주 동구청이 서울시에 '현대산업개발 영업정지 8개월'을 요청한 데 이어, 국토교통부도 강력한 처벌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현대산업개발은 길게는 1년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죠. 신용등급이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업정지 처분을 받더라도 이미 계약이 완료됐거나 착공한 현장의 공사에는 차질이 없습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할 뿐입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신아파트 재건축 사업에도 뛰어든 상태입니다. 경쟁사는 코오롱글로벌인데, 여기서도 비슷한 조건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대산업개발이 영업정지 처분 전, 바짝 일감을 모으려 무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대산업개발 최장 1년 8개월 영업정지

안정호 광주 붕괴사고 피해자 가족 협의회 대표는 현대산업개발의 시공권 수주 소식을 듣고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라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과연 한 번의 수주로 현대산업개발이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요?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의 책임은 여전히 현대산업개발에 있습니다. 현대산업개발이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다른 시공권을 따낸다 하더라도, 회생의 기회로 평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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