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무너진 인생
▶ [스페셜리스트] '멸공'의 이름으로 짓밟은 그놈, 이름이라도 알고 죽고 싶다
1965년, 서해 강화도 근처 함박도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박남선 씨는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습니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미법도 집단 납북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극적으로 탈출해 고향 땅으로 돌아왔고, 다시 본업인 고기잡이 일을 하며 가족들과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13년 뒤, 1978년 박 씨는 갑자기 간첩 혐의로 체포돼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악명높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관을 만납니다. 얼굴에 수건 덮고 물 붓기, 몽둥이로 발바닥 때리기, 잠 안 재우기. 수차례 고문 끝에 결국 박 씨는 자신의 간첩 혐의를 자백했습니다.
박 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부터 자신의 자백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군사정권 당시의 사법부는 박 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습니다. 1985년, 모든 것을 잃고 출소한 박 씨는 고문으로 인한 여러 이상증세를 보이다 2006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박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 뒤, 서울고등법원은 박 씨 조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 등의 행위가 있었다며 박 씨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법부의 지난 과오에 대해 사죄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송을 냈지만, 이근안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법부에게 사과를 받았다지만 유족들은 정작 박 씨의 삶을 부숴버린 당사자, 이근안에게는 어떠한 말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용서받고 회개했다는 이근안의 참회가 간혹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당사자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용서를 받았다는 것인지, 유족들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유족들은 지난 1월 이근안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수사기록을 재조사한 유족과 변호인들은 이근안의 조사 행위가 단순한 착오나 실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간첩이라고 결론을 정해놓고, 박남선 씨 뿐만 아니라 박 씨 일가족을 간첩으로 몰아가기 위해 이근안이 악의적이고도 정교하게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민사 소송을 제기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유족들은 이근안에게 소장도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조사한 기록이 남아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서해바다 반대편, 동해바다에서도 납북됐다 돌아왔지만 '간첩 아니냐'며 다짜고짜 두들겨 맞고 후유증으로 죽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돈 없고 못 배웠던 이들의 자식들은 긴 세월 동안 행여 빨갱이 자식으로 몰릴까 쉬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나도 억울하지 않느냐'는 한 어부의 외침에 몇몇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정귀자/피해자 가족
아버지가 배타고 나간 지 이틀 지나고 나서 연락이 온 거예요. 배가 행방불명이 됐다고. 그래서 깜짝 놀랐죠. 이북에 납북 당했다는 거예요. (...) 속초를 갔는데 경찰서에 갔더니 또 막 사람들이 막 우왕좌왕하고 난리가 났었어요. 근데 이쪽에서 맞는 소리 이쪽에서 맞는 소리 막 두드려 맞는 소리가 말도 못하게 귀에 들어와. 거의 한 달 넘게 계셨다가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많이 몸이 좀 안 좋으시더라고요. 많이 맞으셔서. 근데 그 이후로 일 년 만에 피를 토하고 돌아가셨어요.
공익 활동을 하는 최정규, 정진아 두 변호사와 전직 국정원 진실위 조사관 변상철 씨가 아무 보수 없이 이 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기록을 찾는 시작단계부터 장벽은 높습니다.
그렇다고 진짜 정보가 '부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변호사들이 달라붙어 조항을 들이대며 정보를 다시 찾아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면 없다던 조사기록과 서류들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무너뜨린 건 한순간이었지만, 이를 되돌리는 데에는 이렇게도 험한 산들을 넘어야 합니다.
자기 성찰, 권력기관 개혁의 진정한 제도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인수위 없이 출범한 우리 정부는 무너진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진전시켰습니다. 권력기관이 더 이상 국민 위에서 군림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권력기관 개혁을 제도화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2022년 신년사 중
그러나 적어도 국가기관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국가폭력을 경험했던 이들에게,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화는 아직 요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기관의 설치, 상호 간의 감시를 통해 권력기관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외형적으로 작동하는 듯 보이는지 모르나, 권력기관 스스로의 '자기 성찰'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는 탓입니다. 정권 초반 검찰과 법무부에 과거사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권력기관이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보겠다는 작업을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학의 과거사 재조사 논란'이 보여주듯, 이러한 권력기관의 자기 성찰 작업은 제도화에 이르지 못한 채,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의 '과거사'를 해결해달라며 권력기관들의 문을 두드리는 보통의 사람들은 높은 장벽에 막혀 돌아서야 합니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
"거창한 것이 아니라요, 전체 검찰청도 아니고, 적어도 이런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이 많았던 검찰청들만에라도, 재심 서류들만이라도 좀 찾아줄 수 있는 전담 인력 하나만 배치해준다면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억울한 일을 풀어나가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기자가 수십 년 지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과거사를 다시 쫓는 건, 이 일이 비단 과거의 일만이 아닌 현재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력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어떤 권력은 그 잘못을 성찰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이들의 마지막 투쟁을 따라가고 기록하는 건, 우리가 영위하는 국가권력이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보다 친화적인 '어떤 권력'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 [대한민국이 사과하는 방법 ①] 독재자들 모두가 죽을 때까지, 그들은 자신을 고문한 자들을 모른다.
▶ [대한민국이 사과하는 방법 ②] 10년째 잠자는 '고문피해자 지원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