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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성화 봉송 나선 택배 기사…이면엔 고단한 삶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이 올림픽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둔 2일부터 시작됐습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는 넉 달 넘게 무려 130일 동안 중국 전역을 돌며 대대적으로 성화를 봉송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막식 당일까지 합쳐 사흘 동안만, 그것도 베이징과 허베이성 장자커우 등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지역에 국한돼 성화 봉송이 진행됩니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 중국 당국은 최근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를 포함해 코로나19 환자가 곳곳에서 발생하자 방역의 고삐를 다시 바짝 조인 상태입니다. 특히 베이징 사수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베이징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도, 베이징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분위기가 제대로 날 리 없습니다.
 

중국, 성화 봉송도 '애국주의'…로봇 수중 봉송 홍보

중국 당국은 어떻게든 올림픽 분위기를 띄우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성화 봉송입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로봇 수중 봉송'이 성화 봉송의 백미였다고 분위기 진작에 나섰습니다. 로봇이 다른 로봇에게, 그것도 물속에서 성공적으로 성화를 넘겨줬다는 것입니다. 과거 수중에서 사람들끼리, 혹은 사람이 로봇에게 성화를 넘겨준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물속에서 로봇끼리 주고받은 건 세계 최초라고 홍보했습니다. '고도의 기술을 통해 불과 물, 두 상극의 물질이 서로 어우러지는 광경을 연출해냈다'고까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일 '세계 최초로 로봇끼리 수중 성화 봉송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사람 중에선 중국의 첫 스피드스케이팅 세계 챔피언 등 스포츠 영웅, 중국이 자랑하는 항공우주 분야의 우주 비행사, 달 탐사 기술 고문, 중국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코로나19 방역 전문가 등이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섰습니다. 지난 2020년 인도와의 국경 충돌 때 크게 다쳤던 인민해방군 장교도 성화를 들었습니다.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중국의 최근 분위기상 어쩌면 예측 가능한 주자들이었습니다.
 

'농민공' 택배 기사 성화 봉송 나서…평범하지 않은 보통인?

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성화 봉송 주자가 있었습니다. 택배 기사 루안위솨이였습니다. 올해 37세의 루안 씨는 중국 북동부 지린성의 농촌 출신입니다. 고향에서 닭도 키우고 요리도 배우고 만둣집도 열었습니다. "돈 벌 수 있는 일이라면 거의 다 해 봤다"고 했습니다. 2015년 어머니를 따라 베이징으로 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동향 사람의 소개로 징둥물류의 택배 기사로 입사했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택배 기사 루안위솨이취파

초반에는 택배 배송에 익숙지 않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서도 몇 개밖에 배송하지 못했습니다. 담당 구역의 거리와 골목을 익히고, 한 건물 한 건물 오르면서 루안 씨의 배송량은 크게 늘었습니다. 다른 택배 기사의 하루 배송량이 130~140개였다면, 루안 씨는 170개 이상 배송했습니다. 급할 때는 200~300개까지도 배송했습니다. "뛰어갈 수 있는 곳은 절대 걸어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웬만한 층은 단숨에 뛰어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루안 씨의 이런 '생계형' 달리기 능력은 마라톤 완주로 이어졌습니다. 징둥물류는 2017년 베이징 마라톤의 후원 업체 자격으로 마라톤 참가 신청권을 얻었고, 루안 씨의 상사가 루안 씨에게 참가를 권유했던 것입니다. 마라톤이 뭔지도 몰랐던 루안 씨는 당장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돈을 벌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주변의 출전 권유가 이어지자 마지못해 마라톤 출발선에 섰습니다. 인생 첫 마라톤 경기에서 그는 4시간 23분 43초 기록으로 완주했습니다. 지난해 열린 베이징 하프마라톤에선 1시간 10분 31초 기록으로 아마추어 선수 중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가장 빠른 택배 형(오빠)'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성화 봉송 행사장에 선 루안위솨이

성화 봉송 주자 역시 회사 측이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루안 씨를 추천한 것이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는 게 루안 씨가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된 이유였습니다. 주자 한 사람당 성화를 봉송하는 구간은 50~100m에 불과했지만, 루안 씨는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긴 이 순간을 위해 꾸준히 뛰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올림픽 성화 봉송 동작도 인터넷에서 찾아 연구했습니다. 루안 씨는 자신은 수많은 택배 기사 중 한 명일 뿐이라며 택배 물류 종사자들이 모두 영예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택배 기사 300만 명…12시간 노동에 월급 94만 원

중국의 택배 기사

중국의 택배 기사는 3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중국 매체 노동보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월급은 5천 위안, 우리 돈 94만 원 정도입니다. 하루 노동 시간은 12시간을 넘기기 일쑤고 주말에도 일을 합니다. 루안 씨도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 7~8시까지 고단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루안 씨처럼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이른바 '농민공'은 3억 명에 육박합니다. 많은 농민공이 택배 기사와 음식 배달원 등 '저임금 고노동' 전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동이 제한돼 온라인 주문이 늘면서 이들의 노동 강도는 더 세지고 있습니다. 2020년 중국의 택배 배송 건수는 835억 건으로 8년 전인 2012년에 비해 14배나 증가했습니다. 이들의 건당 배송비는 업체 간 과다 경쟁과 택배 기사 증가로 오히려 2012년보다 더 낮아졌습니다. 중국의 IT 산업, 공유 경제의 급성장 이면에는 이들의 희생이 있습니다. 루안 씨가 말하는 '영예'가 마냥 영예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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