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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붕괴에 매몰까지…피해 지원 비용 부담은 누구의 몫일까

붕괴사고가 난 광주 아파트 현장 (사진=연합뉴스)

광주 아파트 붕괴와 양주 채석장 매몰사고까지. 연초부터 안타까운 사고들이 잇따랐습니다. 사고 뒤에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남습니다. 보통, 사고 직후 해당 지자체가 수습대책본부를 꾸립니다. 피해자와 가족들 지원을 위해서입니다. 피해 당사자의 치료비, 유족의 장례비, 가족들의 생계 유지비 등등 크고 작은 비용들은 지자체가 지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신속한 피해 지원이 가장 중요하지만, 재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모두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까요? 사고 내는 사람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나 생각이 들만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2년 전 설날에 있었던 안타까운 인명사고와 이에 대한 판결을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이런 사고가 났을 때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하게 되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2020년 1월 25일, 설 명절 당일이었습니다. 밤 8시가 되어갈 무렵 강원도 동해시의 한 펜션 '바다' 객실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났습니다. 설을 맞아 바닷가로 놀러 왔던 일가족 7명이 화상으로 숨졌고 다른 방에 있던 2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가스 폭발사고가 난 동해시 펜션 (사진=연합뉴스)

동해시는 재빨리 사고수습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재난관리법에 따라 피해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사망자 1인당 장례비는 800만 원까지, 사상자 의료비는 1인당 2천만 원까지 지원하기로 나름의 규칙도 정했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사고 현장까지 달려온 유가족들이 머무는 데 드는 비용 역시 동해시가 치렀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와 다친 분들의 치료가 끝나고, 동해시가 정산해보니 사고 지원에 8천57만 9천810원이 들었더랍니다. 하지만 비용을 지자체가 전부 떠안는 건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동해시민 누구도 특정인이 낸 사고의 처리 비용을 다 같이 떠안자는 데 동의하지 않았을 겁니다.

동해시는 곧장 펜션 주인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 소송을 걸었습니다. 구상권 청구란 채무를 대신 변제해준 사람이 원래 채무자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일단 시가 비용을 부담하고 나중에 사고에 책임이 있는 펜션 주인에게 청구한 셈입니다.

사건은 서울중앙지법으로 넘어왔습니다. 양측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본 1심 재판부(86민사단독 김상근 판사)는 비용의 70%는 펜션 주인이, 나머지는 동해시가 부담하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고를 낸 당사자가 70%, 즉 5천600만 원 정도는 부담해야 한다고 본 셈입니다. 판결문에 적힌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사회 재난의 경우에는 그 원인 제공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우에도 재난 구호 지원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부담으로 한다면, 원인 제공자는 자신의 잘못에 상응하는 배상 책임을 져야 마땅함에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재난 구호 지원 비용 부담으로 인하여 자신의 책임을 면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으면 피해 지원금을 사후 청구할 수 있다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셈입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전부 부담하는 건 맞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30% 정도는 지자체가 부담하는 게 합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재난 관리에 필요한 비용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 재난 관리 책임기관이나 구호기관이 재정 부담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사회보장적 성질을 가지는 비용이다 (…)"
"(…) 원인 제공자에게 무조건 재난 구호 지원 비용을 전부 부담하게 한다면 원인 제공자로서는 자신의 배상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

의미 있는 판례지만 아직 쌓이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가 사고의 원인 제공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재판에서 이긴 건 위 사례를 포함해 딱 2건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69명의 사상자를 낸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입니다. 당시 제천시는 사고 건물 주인에게 피해자 치료비, 사망자 장례식 비용, 유가족 생계 유지비 등 총 11억 6천만 원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했습니다. 이듬해, 재판을 거쳐 모두 받아냈습니다.

광주와 양주, 두 사고는 아직 실종자조차 다 찾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 대한 지자체 지원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관련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만큼이나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끔 강제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토사 붕괴사고가 난 양주시 석재 채취장 (사진=연합뉴스)

큰 사고인 만큼 광주광역시와 양주시 등 해당 지자체들도 현대산업개발과 삼표산업 등 관련 기업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겁니다. 그래야 비용 부담을 좀 내려놓고 더욱 적극적이고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있을 테니 바람직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고와 관련 없는 보통 시민들이 부담을 나눠지는 일도 더 이상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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