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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한미군 철수 반대" 싱글러브의 별세…우리 장성들은 어떠한가

[취재파일] "주한미군 철수 반대" 싱글러브의 별세…우리 장성들은 어떠한가
▲ 1977년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주장하다 강제 전역한 존 싱글러브 장군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 근무에 이어 6·25 참전, 유엔사 참모장 역임… 존 싱글러브 예비역 미 육군 소장이 한국과 맺은 인연의 고리들입니다. 최고의 명장면은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던 1977년 5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5년 이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라고 비판한 뒤 사실상 강제 전역당한 일입니다.

싱글러브 소장이 현지 시간 지난달 29일 오전 7시 미국 테네시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100세. 북한군의 전력이 위협적이던 시절 주한미군의 철군을 막음으로써 한국 안보에 큰 기여를 한 별이 진 것입니다. 우리 예비역 장성들은 잇달아 SNS에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고, 언론들도 그를 기리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력이 안보에 있어 잘못된 길을 갈 때 고위 장성들이 소신을 밝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 싱글러브 장군처럼 신분 상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확정된 정책에 군은 저항하면 안 되지만,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이라면 군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싱글러브처럼 들이받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원칙입니다. 우리 군은 어떻습니까.

이승도 전 해병대 사령관(왼쪽)과 부석종 전 해군 참모총장(오른쪽)

희귀한 장면 둘…부석종·이승도의 정당한 저항


우리 군 장성들도 최근 정책 결정 과정에서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두어 번 정당한 의견을 개진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승도 35대 해병대 사령관입니다. 해병대는 공격성과 생존성이 뛰어난 전문 공격 헬기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정부가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마린온' 개량 헬기를 밀어붙이자 이승도 사령관이 나섰습니다.

재작년 10월 26일 국회 국방위의 종합감사에서 이승도 사령관은 "해병대가 요구하는 것은 공격 헬기이다. 일부에서는 기동 헬기에다 무장을 장착한 헬기를 얘기하는데 기동성과 생존성이 우수한 헬기, 그러다 보면 마린온에 무장을 장착한 헬기가 아닌, 현재 공격 헬기로써 운용되는 헬기를 해병대에서 원하고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국군 중에서도 가장 소군인 해병대 수장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작전의 완전성과 부하들의 생명 보존을 위해 사령관이 시쳇말로 목을 내놓은 것입니다. 지도층들은 보통 "책임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이것이 바로 책임지는 행동입니다. 비록 해병대 공격 헬기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마린온 무장형으로 기울었지만 최고 지휘관은 부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부하들은 지휘관을 신뢰하는 해병대 전통의 한 자락이 놓였습니다.

부석종 34대 해군 참모총장은 작년 연말 삭감된 한국형 항모 예산을 기적적으로 되살리는 과정에서 강단을 보여줬습니다. 해군이 당초 요구한 항모 예산은 72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방위에서 여야 합의로 71억 원을 삭감하고 1억 원만 남겼습니다. 방사청장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여야와 정부가 항모 사업을 접기로 마음을 잡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군은 지레 포기하는데 부석종 총장은 달랐습니다. 부석종 참모총장은 해군 페이스북에 총장 명의로 장문의 글을 올려 항모 건조의 당위성, 예산 복구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국회 본회의 개최 전, 즉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때여서 부석종 총장이 여야정 잠정 결론에 반대하는 데 하등 문제가 없습니다. 결국 부석종 총장의 저항이 싹을 틔워 항모 예산 72억 원은 전액 살아났습니다.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 모인 서욱 국방장관과 각군 장성들

육군 · 공군은 과묵한 건가, 비겁한 건가


작년 연말 방위력 개선비가 사상 최대로 감액됐습니다. 방위력 개선비는 국산·외산 무기를 도입하고 기존 무기를 성능 개량하는 데 투입되는 돈입니다. 우리 군의 전력증강 계획에 차질을 빚는 사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무기 수입 줄고, 무기 수출 늘었다고 눈치 없이 희희낙락하는데 대단한 착각입니다. 무기 수입은 안보와 직결되지만, 무기 수출은 안보와 하등 관계없는 경제의 영역입니다.

전력증강 계획에 상당 수준 제동이 걸렸다면 각군 총장은 국회 본회의 전에 강력하게 이의제기를 해야 합니다. 총장이 국회나 청와대, 언론에 호소하든가 방사청장 또는 방사청의 장교들을 불러 닦달을 했어야 했습니다. 육해공군 삼군 총장 중 유일하게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만 목소리를 냈습니다.

육군 참모총장, 공군 참모총장은 남의 일 구경하듯 입을 다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준 부석종 총장만 자리를 내놨습니다. 육군과 공군의 참모총장은 입을 닫은 덕에 자리보전을 한 것일까요. 그랬다면 비겁한 장성들과 그렇게 장성 인사한 정부 모두 문제입니다.

민주주의 문민통제는 문민정부와 군의 전략적 상호작용으로 정의됩니다. 안보정책 결정 과정에서 문민정부와 군은 치열하게 토의하는 상호작용을 벌여야 합니다. 안보, 전략, 전술에 취약한 문민정부에 대해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군이 충분한 제언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문민정부와 군의 갈등은 병가지상사입니다. 일단 정책이 확정되면 군은 좌고우면 하지 말고 절대 순응해야 합니다.

싱글러브 장군은 안보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당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우리 군의 부석종 제독과 이승도 장군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안보에 이롭다고 판단되는 의견을 적극 개진했습니다. 문민통제의 바른 길을 좇은 좋은 군인들입니다. 육군과 공군은 최근 들어 이런 장성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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