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보수세력에는 열고 쇄국 비판에는 닫고…기시다의 '듣는 힘'

[취재파일] 보수세력에는 열고 쇄국 비판에는 닫고…기시다의 '듣는 힘'
지난해 10월 출범해 4개월째를 맞고 있는 기시다 정권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오미크론 환자 폭등으로 인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50%~60%대의 지지율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총리 교체 전 스가 정권의 지지율이 30~40%대로 추락했던 것을 보면 정권 출범 직후 치러진 중의원 선거를 선방으로 이끌며 지지율을 올리고 있는 기시다 총리를 다시 봐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듣는 힘' 기시다 리더십 통해


정권의 초반 성공 요인으로 일본 언론들은 '기시다식 리더십'을 꼽고 있다. 관료적인 모습으로 답답한 이미지였던 기시다 의원이 총리가 되자 예상외로 단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스가 정권 이후 코로나 정책을 강력하게 이끌고 있고, 정치인 기시다 자신이 트레이드 마크처럼 주장하고 있는 '듣는 힘'(聞く力)이 일본 국민들에게 어필했다는 평가다. 방송에서 기자회견 뒤 질문을 받는 모습을 보아도, 총리가 직접 일일이 기자들을 지명하면서 성실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답변 내용은 '검토하겠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 '전문가들과 심의하겠다' 등 알맹이는 거의 없지만 답변하는 자세와 말투 등은 물어본 사람을 존중해 답변하고 있다는 인상은 충분히 주고 있는 것 같다.

보수에는 귀 열고…사도 광산 추천

사도광산

지난 28일 사도(佐渡)섬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방침을 전환한 모습도 그가 자랑하는 '듣는 힘'이 발휘됐던 것일까. 당초 일본 내각은 외무성을 중심으로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예상하는 미국의 우려, 과거 일본의 모순적 행동 등을 고려해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추천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를 위시한 자민당 내 강경 보수파의 압력에 결국 기시다 총리는 방침을 급선회했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수 차례 통화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총리는 추천 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방침 전환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애초부터 추천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답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세계의 목소리엔 귀 닫고…입국제한 계속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듣는 힘'은 다른 쪽에서는 아예 작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일본은 코로나 대책의 일환이라며 자국의 문을 걸어 잠그고 외국인의 입국을 막고 있다. 이로 인해 뜻하지 않은 가족이 갑자기 이산가족이 되어 만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유학생은 입국은 못한 채 빈 방에 대한 방세만 내고 있다. 전 세계가 오히려 입국 제한을 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도 연호를 딴 '레이와쇄국'(令和鎖國)이라며 비아냥까지 등장했고, 해외에서는 입국 금지 철회 촉구 시위와 서명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이달 초 15만 명 가까운 유학생 가운데 0.1%도 안되는 국비 유학생 87명만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전부다. 이후에는 어떤 질문에도 2월말까지 상황을 봐 가면서 대응하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외국인 입국금지 연장

기시다 총리의 책을 보면 자신의 '듣는 힘'에 대해 "국민 여러분들이 정치와 정치가에 대해 알고 싶고, 의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중하고 철저하게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기시다 총리가 보여준 최근 일련의 모습으로 판단해 보면, 그가 말하는 '듣는 힘'이란 이해관계에 따라 기준 없이 활용되는 정치적 제스처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진정한 정치인의 '듣는 힘'이라는 것은 여러 경로의 다양한 의견을 선입견 없이 듣고 깊은 논의를 통해 냉정하고 판단하며 용기 있게 결단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