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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득이는 암흑의 통찰력 - 기리노 나쓰오 '일몰의 저편' [북적북적]

번득이는 암흑의 통찰력 - 기리노 나쓰오 '일몰의 저편'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27 : 번득이는 암흑의 통찰력-기리노 나쓰오 '일몰의 저편'


 
"우편함을 보니 '마쓰 유메이' 귀하라고 적힌 커다란 파란 봉투가 들어 있었다. '마쓰 유메이'는 나의 필명이다. ….(중략)…. 한데 확인을 위해 봉투를 뒤집어 보니 보낸 이의 이름이 다나카가 아니었다.

'총무성 문화국 문화예술윤리향상위원회'라고 적혀 있다. 나는 관청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어서 무슨 연락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지만, 보는 순간 언짢은 예감이 스쳤다. 집에 들어가 봉투를 열자 얇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첫머리에 '소환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40대 초반의 여성 소설가 마쓰 유메이에게 어느날 날아든 우편. 정부 산하 기관인 것으로 보이는 이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는 무려 소환장, 뒤이어 사람을 보내 마쓰 유메이를 바닷가 절벽의 미심쩍은 건물로 데려갑니다. 이 알 듯 말 듯한 기관은 왜, 어떻게, 무슨 권리로 소설가를 소환하는 것일까요. 주인공은 이 곳에서 무슨 일을 겪게 될까요.

추리/스릴러/범죄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에서 이 장르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이 익숙할 것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일본 추리/스릴러/범죄 장르의 햇살 같은 존재라면, 우리나라에서 그 지명도가 미야베 미유키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오늘의 작가는 아마도 어둠, 그것도 짙은 어둠에 해당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실은 햇살 아래 보이는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의 이면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이면들이 단지 드러나 보이는 정도에 그칠 뿐 아니라 그 어둠 속 깊은 곳으로부터 날아와 읽는 이를 강타해서 잊지 못할 묵직한 충격과 감정을 상흔처럼 남기곤 합니다. 이번주 [북적북적]에서 함께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이 날카롭고 묵직한 어둠의 작가, 기리노 나쓰오입니다. 1951년생으로, 30대 초반의 주부였던 84년에 데뷔해 30년이 넘도록 활발하게 그만의 독보적인 이야기들을 펴내고 있는 사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뽑아내는 점에 있어서는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유일한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신작 [일몰의 저편]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일몰의 저편]은 우리나라에선 지난 11월말에 출간됐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일에 흥미가 없다. 절망한 탓이다. 어느새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라 불리게 되었고 모든 일에 국가가 우선이며 사람들은 자유를 빠르게 국가에 넘겨주었다. 뉴스는 인터넷으로 보고 있었는데, 집권한 정부에 아부하는 논조에 진저리가 나서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물론 텔레비전은 내다 버렸고 신문도 구독을 끊었다. ……(중략)…… 아리에의 신작 제목은 '미쓰 잠들다'로, 제목은 의미심장하지만 내용은 강렬한 섹스 장면의 연속이다. 박력이 넘친다. 단숨에 읽고 아리에의 재능을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나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작년에 낸 책도 성애를 그린 작품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금기나 양식 따위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지점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독자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고 싶었다. 강간, 페도필리아, 페티시.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공들여 썼지만 아리에의 자유로움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나는 아리에를 내심 질투하고 있었다."
 
주인공 마쓰 유메이는 누가 봐도 작가 기리노 나쓰오 본인이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 내세운 인물입니다. 충격적인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방식으로 박력 있는 글을 쓰는 게 목표인 작가. 조금은 까칠하고, 약간은 반항적이고, 쉽게 발끈하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마쓰 유미에는 갑자기 날아든 소환장을 받아든 뒤 곧바로 끌려가다시피 '요양소'라는 곳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근에 통과된 모종의 법을 정부가 '유권해석'해 세웠(다는 묘사 이외에는 더 이상의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이곳은 마쓰 유메이를 비롯한 작가들을, 창작자들을 모아 가두고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다다의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난다. 무서울 정도로 인상이 좋았다. "우리는 당신들 작가 분들이 사회에 적응한 작품을 써 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적응한 작품이란 어떤 작품이죠?"

"올바른 작품입니다."

"누가 그런 걸 강제할 권리를 갖고 있죠? 아무도 그럴 권리는 없어요."
어이가 없어진 나는 이미 흥분하고 있었다.

"컾플라이언스라는 말을 아세요? 총무성 쪽에서도 작가들의 작품에 약간의 컴플라이언스를 요구하게 된 겁니다. 방치하면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른 거죠."

……..(중략)…….

"독자의 고발이 있었습니다. 마쓰 유메이는 강간이나 폭력, 범죄를 긍정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고.."

너무나 뜻밖이라는 놀라움과 실망으로 나는 소파에서 맥없이 쓰러질 뻔했다. 이제부터 시작될 일이 두려워 한없이 겁에 질리는 순간이었다.

"그 고발인지 뭔지는 편지나 전화로 오는 건가요?"

나는 겨우 물었다.

"아뇨, 문윤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요. 문예작품에 대한 독자의 니즈를 널리 모으고 있죠. 거기에 올라온 글들입니다."

공무원은 밀고를 '니즈'라고 부르나 보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밀고를 근거로 '조사기관'인지 뭔지에 맡기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니, 전혀 몰랐다. 심의회에 출석하라고 요구하는 문서가 왔을 때 좀 더 진지하게 대응했어야 했던 걸까.

"몰랐네요. 언제부터 시행된 거죠?"

"일 년쯤 전부터입니다."

"고지되었나요?"

"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그런 것은 고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라는 조직 자체를 아무도 모르니까. 실제로 내가 구글로 검색했을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곳은 작가들의 감옥이자 고문의 장입니다. 이른바 '정서에 좋지 않은', 기득권에 이롭지 않거나 그저 탐탁치 않은 작가들이 이곳에서 '갱생'이라는 명목 하에 정신말살 프로젝트의 대상이 됩니다. 마쓰 유미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이 상황에 적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작가들을 잇따라 만나게 됩니다. 이제 마쓰 유미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에게는 어떤 선택지들이 남아 있을까요.

기리노 나쓰오는 지난 200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추리소설문학상인 에드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매니아 독자들을 보유한 작가입니다. '무슨무슨 상 받은 사람이다' 식의 소개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늘은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런 말들부터 저도 모르게 늘어놓게 됩니다. (아마 기리노 나쓰오가 본다면 '이런 시시한 녀석!' 눈총을 줄 것 같은데,) 저 역시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를 좋아한다니 변태 아니야? 어디 꼬인 사람 아니야? 같은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 느끼면서 자기검열부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금기를 무시하는 소재로 가득한 걸로 유명합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부러 찾아읽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꺼리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를 에드거상 후보에 오르게 한 장편 [아웃]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책에도 토막살인, 사체유기, 살인충동 묘사 같은 소재나 상황들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들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 [그로테스크] 역시 2천년대 초반 실제 살인사건에 극단적인 상상력을 덧붙여 탄생했습니다. 동시대, 일본의, 여성작가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을 거짓 희망이나 환멸이 끼어들 여지 하나 남기지 않고 악마적으로 밀어붙인 통찰력이 섬뜩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걸작입니다. 그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편이 되거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글은 이토록 강력하고 진실한 것이로구나. 추악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통찰은 이다지도 힘이 센 것이로구나. 제가 기리노 나쓰오의 글들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 기리노 나쓰오가 [아웃]으로부터 20년 지난 시점에 마쓰 유미에의 입을 빌려 "절망한 탓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 신작 [일몰의 저편]입니다. 그가 이 작품에서 통렬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문학과 예술, 사상에 가해지는 일종의 신(新)전체주의적 경향입니다. 일본의 최근 사회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비단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강렬하게 공감하며 읽게 되는 대목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넷플릭스에서 선보였던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지옥]과 그 안의 '화살촉'들이 생각났습니다. 과연 이것이 [일몰의 저편]이나 [지옥]의 허구적 과장일 뿐일까. [1984]나 [동물농장]의 세계에나 등장하는 꾸며낸 상황일 뿐일까. 기리노 나쓰오가 던지는 오늘날의 질문과 절규는 오늘의 우리에게 너무나도 생생하게 감겨듭니다. 이 이야기가 가감없이 풀어놓은 강력하고 비관적인 절망의 정서가 결국은 우리가 소설로부터 길어올리는 자성과 용기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몰의 저편]을 읽습니다.
 
"놈들은 우리가 뛰어내리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당신한테도 산책하고 오라고 적극 권하지 않던가요? 아니면 조깅이라든지."

"듣고 보니, 그랬어요."

역시, 하고 A45는 웃었다.

"바깥을 뛰어 다니다가 굴러 떨어지기를 바라는 겁니다."

"여기에는 몇 명 정도나 수용되어 있죠?"

"늘 스무 명은 돼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죄 같은 거 저지른 적 없어요."

나는 발끈하며 말했다. 바람을 타고 A45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얌전해지셔서 당신만이라도 무사히 귀가해 주세요."

"우리는 가장 어려운 걸 요구받고 있군요."

"그렇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힘든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자리에는 어떻게 갈 수 있는 거죠?"

"위험하니까 시도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나도 오늘은 이만 방으로 돌아갈 겁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죽을 마음이 사라졌어요."

"그럼 내일도 여기서 만나요."

대답은 없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들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로 강렬한 스트레스와 함께 그보다 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제 클래식이 된 [그로테스크]와 [아웃], 그리고 오늘의 신간 [일몰의 저편]을 감히 추천드립니다.

*북스피어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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