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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뭐?" 갑질에 멍든 야구 명문고

야구 명문고 감독은 왜 재계약을 하지 못했나

 
서울 B고등학교 야구부는 지난 2015년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 이후 신인왕 두 명을 포함해 전국 모든 고등학교를 통틀어 가장 많은 24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고, 전국 대회 결승전만 5번 올라가서 2차례 우승을 차지하는 등 빼어난 성적을 올렸습니다.

B고를 이끈 A감독은 성적만 인정을 받은 게 아닙니다.

​​​​​​학생들의 인격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지도 방침과 선진적인 시스템 활용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B고 출신 선수 1
"고등학교 올라가서 B고 감독님을 만나서 제가 날개를 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A감독님이 유일하게 제 폼을 지지해주셨던 분이에요, 처음으로. 그래서 거기서 더 믿고 자신감 갖고 잘했던 것 같아요."
B고 출신 선수 2
"A감독님이 (새로운 장비) 그런 거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런 미국 쪽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들여오는 게 많아서 감독님이 반영을 많이 하시죠. 제가 (B고 훈련방식을) 바꿨다기 보다는 (A감독님이) 바꿨는데, 제가 미국에서 하는 거랑 비슷해요 지금."

 
그런데 지난 1월 27일 B고등학교는 A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직무상의 의무를 태만히 했고, 근무성적 평가 결과가 낮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A감독을 믿고 자식을 맡겨둔 학부모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학부모 1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선생님한테서 다른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서 아이들이 배울 수 없다는 부분이 너무 일단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한다는 건지 저희는 납득이 되지를 않거든요."

이 학교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재계약 불가 뒤엔 왕회장님이 있었다


감독의 재계약 불가 통지를 본인이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질을 봐도 B 고등학교 있을 (감독, 코치) 애들이 아니야. 감독을 핫바리로 뽑아놓으면 그 코치는 더 핫바리가 되고….
교장한테 (얘기) 했지. 나는 해임 시키라고 그랬어."

 
단호한 어조로 감독 교체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이 사람은 B고 동문인 C회장입니다.

금융 회사를 운영하며 국내 채권 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C회장은 학교운영위원도, 야구부 학부모도 아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 선임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C회장은 어떻게 교장에게 직접 감독과 재계약을 맺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었을까요? C회장과 B고 야구부가 인연을 맺은 2019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큰손 왕회장님의 야구 사랑…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 2019년, C회장은 자신의 출신학교인 B고등학교에 10억 원의 후원금을 내고, 자신의 이름을 딴 건물까지 하나 지어줍니다.

건물을 짓고 남은 돈 2억여 원은 야구부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야구부에 거액을 건낸 직후 C회장은 지극히 사적인 요구사항도 전달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 하나는 유명 방송인인 지인 D씨의 아들을 B고 야구부에 받아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장을 쓸 수 있게 학교에 조치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집요한 C회장의 요구에, A감독은 결국 학생을 만나 테스트를 해봤지만, B고 야구부 입단은 흐지부지됐습니다.

이후 C회장의 야구부에 대한 간섭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B고 야구부 전 코치
"감독님은 항상 뭐 수시로 (C회장) 연락오면 불려가시고, 코치들한테도 뭐 게임 왜 그 따위로 하냐, 수비를 왜 전진 수비를 하냐. 뭐하냐 왜 그렇게 하냐. 일 똑바로 해라 장난치는 거 아니다 제대로 해라, 막 이런 식으로 말을 하죠."

"B고가 변화구에 약하다는 거, 대한민국 고등학교 감독은 다 안다"

 
지난해 3월, 시즌 전초전 격인 명문고 야구열전 준결승에서 B고는 4대 3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C회장은 이 패배를 빌미로 야구부에 대한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합니다.
 
C회장
"내가 열받아서 내가 (코치할 사람을) 알음알음 물어봤어. 타격코치를 좀 뽑으라고. 이 B고등학교 변화구에 약하다는 거 대한민국 고등학교 감독은 다 알아."

C회장은 지인으로부터 프로 출신인 E 코치를 추천받고 학교에 타격코치로 선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C회장
"내가 추천을 했어 E코치를. 그렇지만 학교 입장이 있으니까 뭐 공모 절차를 밟았지. 그래가지고 뭐 단수 후보니까 분명히 뭐 내가 꽂아넣었다고 그랬을 거야 저쪽 학부형 애들은. 난 E코치 얼굴 그때 알지도 못 해."

C회장의 행위는 법과 규정, 그리고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학교 운동부 운영에 대한 법과 규정에 따르면, 학교 운동부는 일종의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운영됩니다.

운동부에 속한 학생과 학부모가 자신의 활동을 위한 돈을 부담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감독과 코치 선임 등 운동부 활동에 중요한 일들도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돈 많은 후원자'에겐 당연히 결정권이 없습니다.
 
박은선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변호사
"후원을 많이 했다고 이런 (수익자 부담) 원칙에 위배해서 후원자가 마음대로 감독 해임과 교체를 요구하고 특혜를 누려서는 안 되는 건데, 저희가 감사 중에 이런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에…."

 
하지만 C회장은 학부모의 의견 수렴 절차를 무시하고 E코치의 선임을 강력히 요구했고, 다수 학부모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자 자신의 의견이 꺾인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자신보다 커리어가 나은 코치가 오는 것을 반대한 A감독과 코치들이 학부모들을 선동해 이런 일을 벌였다고 C회장은 주장합니다.
 
C회장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E코치 못 들어오게 (감독·코치들이) 학부형들하고 여론조성을 했다고. A감독한테 경고를 했어 "하지마라." 이 XX는 못 들은 척, 방조 방임.. 내가 교장한테 야 이건 좀 문제가 있다. (A감독을) 자르자. 그래가지고 1학년 감독으로 내려보내고 E코치를 2, 3학년 감독으로 했더니 또 고3 학부형들이 벌떼처럼 일어난거야."

결국 C회장이 앉히려던 코치는 3주 만에 학교를 떠납니다.

뜻이 좌절된 C회장은 이후 본격적으로 '감독 몰아내기'에 돌입했습니다.

학교 야구장에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 감독과 코치에게 폭언을 쏟아냈고,
 
B고 야구부 전 코치
"(C회장이) 감독님 정강이를 찬다든가, 코치들이 지나가면 불러서 일 똑바로 안하냐면서 폭언을 한다든가.
시합을 졌을 때 잘 못한 선수까지 불러서 선수한테까지 뭐라고 할 정도로 좀 심했거든요."

들으신 것처럼 학교장에게 감독 해임을 종용했습니다.
C회장
"아니 이런 게 있는데 내 의견도 얘기 못합니까.
(감독) 교체나 해임이나 똑같은 거 아냐. 해임시켜야 교체가 되지.
(그런데) 계약 기간 중에 그건 교장이 못하겠다고 그러더라고.
노동법에 또 (하면서) 뭐 저쪽에서 (소송이라도) 걸면 골치 아프다고 학교가…."

자신의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C회장
"나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이번에 (감독·코치) 얘네들 유임시키면 저는 업무방해로 (학부모들) 고소할 겁니다.
공립학교니까 공무집행방해야 이거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이런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까 나는 당당해.

결국 이번에 학교가 A감독을 사실상 경질하며 C회장의 뜻은 현실이 된 셈입니다.

'모든 것은 회장님 뜻대로'..교장 선생님은 왜?


 
C회장의 이런 거침 없는 행보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공립 학교인 B고등학교 측 인물들이 C회장의 지시를 받는 하수인처럼 움직였다는 겁니다.

C회장은 지난해 고교야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 출입증을 매고 자유롭게 출입했습니다.

지난해는 코로나 19 확산 때문에 야구부 관계자 외에는 구장 출입이 금지됐는데, SBS 취재 결과 C회장은 야구부 부장 교사로 등록돼 출입증을 발급받았습니다.

학교 측은 왜 교직원이 아닌 C회장을 교직원으로 등록시켰느냐는 SBS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장학금을 받을 야구부원 선정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C회장의 요구에도 학교는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습니다.
 
=C회장
"얘네들 (장학금) 1년치 다 주면요. 3천 2백만 원? 내가 넷을 뽑았는데 1억 2천, 3천만 원 들어가요.
요거 나한테 장학금 잘린 애들 (학부모) 둘이 선동해가지고, 그 딱 보면 답이 안 나와요?
그리고 근거가 있잖아. 하나는 실력 미달, 두 번째는 학부형 규약 위반. 나머지 둘은 그냥 줘요,
내 돈이니까. 내 돈 내 맘대로 쓰겠다는데, 명분이 있잖아."

교장은 C회장의 전횡을 막기는커녕 장학금을 받은 학부모에게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믿기 힘든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B고 교장
"일단 (장학금을) 50%를 내가 100%로 줄테니까 그렇게 되면 보통 보면 1년에 사실 600만 원이 들어가야되는데 1200만 원을 넣어줄테니까 3년 같으면 3600만 원 정도 될거야. 그중에 나한테 1천만 원을 좀 돌려줬으면 좋겠어."

 
저희 취재진은 교장에게 장학금 리베이트 요구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교장은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현재 C회장과 학교장, 그리고 야구부 담당 부장은 뇌물죄와 김영란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교육청이 경찰에 수사의뢰할 예정입니다.
 
박은선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변호사
"(후원자가) 의견을 제시를 할 수는 있는지 몰라도 그게 어떤 강제력을 갖거나 아니면 학교장님이 그 후원자님의 의견에 따라야할 의무는 전혀 없는 건데, 저희가 파악한 정황을 보면 학교장님이 후원자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 수사 의뢰를…."

"A감독 유임시키면 법적 조치 검토"


지난 3년 간 수많은 지원을 B고등학교에 쏟아부었다는 C회장
C회장
"내 후원내역 영수증 다 보여드릴 수 있고, 내가 저기다 7억짜리 건물도 지어준 사람이야. 내가 사실 (감독·코치) 얘네들 생계 , 밥줄이 걸린 문제라 젊은 애들 나도 고민 많이 했어요. 많이 했는데, 하이 자식들이 너무 오버를 해. 하 이거 처신이 이러면 안 되겠다…."

 
C회장은 이번에 경질된 감독과 코치가 자신에게 금일봉을 받았다며 할 말이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감독과 코치들은 야구부 성적에 따른 격려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결국 피해를 보게 된 건 당장 동계 훈련을 눈앞에 둔 학부모들과 학생 선수들입니다.
 
학부모 2
아무 일 없으면 걱정 없이 아이들이 운동에만 전념을 할 수가 있는데,
아이들은 새로운 지도자들보다는 지금의 기존의 지도자들한테 교육받는 걸 굉장히 원하고 있어요. 저희 아들 역시 그렇고, "저희는 지금의 감독님 코치님들한테 교육을 계속 받고 싶어해요. 지금 코치님 감독님이 좋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 돈 내 맘대로 쓰는 곳'에선 학생 야구가 꽃필 수 없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입니다.

돈이 없어도 실력이 있는 야구 꿈나무가 뜻을 펼치기 위해선 C회장과 같은 후원자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그 도움이 절실하다 해서 후원자가, 그리고 그의 돈이 절대적 존재가 돼서는 안됩니다.


*SBS의 취재 이후인 어제(29일) B고등학교 측은 A감독 등 야구부 코치진과의 재계약 불가 결정을 일단 보류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이병주 황인석 / 영상편집 : 이정택 / 디자인 : 최진영 / 기획·제작 지원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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