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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직원들에 전화해 '숨소리만'…경징계 내린 고용노동부

[취재파일] 여직원들에 전화해 '숨소리만'…경징계 내린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 여직원들이 이상한 전화를 받기 시작한 건 지난 2019년 1월쯤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은 새벽 시간에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오는데, 막상 받으면 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 없이 숨소리만 들렸습니다. 한 여성은 "전화하지 말라"라고 정체불명의 상대방한테 호소해봤지만, 그 뒤에도 잊을만하면 전화는 계속 걸려왔습니다.

2019년 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공포스러운 전화에 시달린 피해 여성은 모두 5명. 한 직원은 다섯 달 동안 무려 16번이나 전화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피해자의 경찰 신고로 전화 건 범인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고용노동부 남성 직원 A 씨였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던 동료 남성 직원이었던 겁니다.

동료 여직원들에게 이상한 전화를 건 남성 직원

고용노동부 징계위원회에 출석한 A 씨는 자기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이해가 안 가는 변명을 늘어놨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이름을 잘못 검색해서 실수로 걸었다"라고 혐의를 부인하다가 계속 추궁하니 "피해자에게 호감이 있어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안 될 거라는 생각에 말을 하지 못했다"라고 횡설수설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같은 부서에 근무하고 있어 자신을 노출하면서 전화하기는 어려워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걸었다"라고 진술하는 등 자신의 행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징계 과정에서 쟁점은 바로 A 씨의 비위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성 비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사회적 추세에서 같은 공무원 비위여도 성 관련이면 처벌 수위가 대폭 올라갑니다. 성희롱인지를 판단하는 별도 자문위원회가 열렸는데, 자문 위원 6명 중 5명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등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고, 반복적으로 밤늦게 전화를 걸고 말없이 끊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 성적인 언동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전화를 통한 가해자의 숨소리는 피해자가 공포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보여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자문위원회 다수가 성희롱으로 판단했는데도 경징계에 해당하는 '감봉 3개월'을 내렸습니다. 고용부 측 설명은 성희롱 판단을 반영해 '최고 수준'의 처벌을 내렸다는 겁니다. 감봉 처분은 이후 소청 심사 절차를 거쳐 지난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SBS 취재진이 징계 사유서와 처분 결과를 외부 법률 전문가들한테 의뢰한 결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만장일치 의견을 받았습니다. 성희롱에 대한 공무원 징계 기준을 살펴보면 비위 정도와 과실 여부를 두고 징계 수위를 크게 4단계로 구분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약한 단계인 '비위 정도가 약하고 경과실'에 해당한 경우의 최고 처벌이 감봉입니다. 다시 말해, 고용노동부는 A 씨의 비위가 '약하고 고의성도 없다'라고 본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징계 판단 기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으며 징계 규정대로면 최소 해임까지 가능한 '중징계'도 내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여직원에게 이상한 전화 건 남성 (취재 자문표)
<권두섭 / 변호사>
"제가 봤을 때 범죄 시간대, 피해자 여러 명, 횟수가 반복적이고 말 안 하고 있는 게, 어떻게 보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더 공포를 줄 수도 있고 한편으로 성적으로 굉장히 수치심을 더 느낄 수도 있거든요. 최고 징계인 파면까지는 지나치지만, 최소한 해임은 가능한 정도가 아니냐고 봅니다."

<이지은 / 변호사>
"최소한 고의나 중과실에 해당이 된다고 볼 수 있는 사안이고요. 성희롱이면서 고의 중과실의 경우 파면이나 해임 정도가 됩니다. 설령 성희롱이 아니라,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고의 중과실의 경우는 강등이나 정직까지 징계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원 징계 처분은 아주 가장 경한 감봉 3개월에 그쳤거든요. 납득할 수 없는 징계인 거죠."

이와 관련해서 취재진은 A 씨 입장도 들어봤습니다. A 씨는 오히려 감봉 3개월 징계가 가혹한 처분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지만, 당시 성적인 범행 의도가 전혀 없었던 만큼 성희롱은 전혀 아니었다는 겁니다. 대다수가 여성 위원으로 구성된 고용노동부 자문위원회가 편향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 문제에 대해서 가장 솔선수범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기업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신고를 고용노동부나 각 노동청이 직접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부 문제에 대해선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면 과연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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