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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스트] '염전 노예'는 말할 수 있는가?

[끝까지판다] 아직도 '노예'가 있다

"우리는 모두 석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석탄을 얻기 위한 과정이 어떠한 것인지는 떠올리지 못한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말입니다. 그가 당시 탄광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기록한 게 1937년. 그런데 85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우리가 눈을 떼지 말고 지켜봐야 할 열악한 노동 현장이 있습니다. 바로 염전입니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과 함께 대대적인 조사가 진행됐지만 염전 노동 실태에 대한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다시 염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지난해 10월 신안 염전에서 노동 착취를 당했다는 박영근 씨의 폭로에도 박 씨의 동료 대부분은 염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염전, 고통스러운 기억

염전 노동 피해자 박상근 씨

박 씨는 약 7년 간의 염전 생활 동안 짐승 같은 취급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박영근 / 염전 노동 피해자]
"하루에 2시간도 자고 1시간도 자고, 사람이 견딜 수가 있어야지. 짐승도 잠 안 재우면 주인 깨물고 하대요."

임금은 제대로 못 받았고, 감시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박영근 / 염전 노동 피해자]
"서너 달에 한 번씩 20, 30만 원씩 넣어주고." "아예 CCTV 설치를 해놓고 감시를 하는데 그러면 그게 감금 아니고 뭐냐."

염전을 빠져나오기로 한 것은 어려운 결심이었습니다.
 
[박영근 / 염전 노동 피해자]
"다른 노동자도 새벽에 도망갔다가 잡혀 왔어요. 그래서 엄청 두드려 맞았어요. 나는 바닷물 푸다가 아무도 없어서 기회다 해서 내가 나왔죠. 산으로 막 튀었지."

염전 일부만 1년 간 영업 정지 조치를 받았고 운영자 가족이 그대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박 씨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염전 소유주인 태평염전 측은 "운영자 일가에게 계약 종료를 통지했으나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 명도 및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박영근 / 염전 노동 피해자]
"(안 나가고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 그래요? (…) 조금 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조금 있다가 합시다. 하."

몸과 마음의 상처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박영근 씨 가족]
"동생이 지금도 조금만 얘기하면 울어요. 지금 치아가 하나도 없지. 이가 다 내려앉았어요. 어금니 조금밖에 없는데… 발톱도 동상이 걸려서 그냥 생 발톱이 막 빠져 날아가요."

박 씨는 그래도 도와줄 가족이 있어 다행이라며 염전에 남은 동료들을 돕고 싶다고 말합니다.
 
[박영근 / 염전 노동 피해자]
"저는 그래도 누나라도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그 사람들도 내가 데리고 와서 지원을 받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돈을 싹 받아내고 그랬으면 좋겠네."

박 씨에게 합의금 400만 원을 제시했던 고용노동청 목포지청은 재조사 끝에 8천만 원 넘는 임금이 체불됐다고 밝혔습니다.

피해 사실을 부인하는 피해자


박 씨 동료들의 임금 체불 여부는 아직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박 씨가 일했던 염전에 찾아가 여러 차례 피해 여부를 물었는데 대답을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피해 염전 노동자 동료]
"아닙니다. 월급은 매달 나옵니다." "억울한 거 없으니까 빨리 가시라고."

자신들의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사용한 혐의로 구속된 염전 운영자 측의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염전 운영자 가족]
"우리가 돈 더 줬으면 줬지 덜 주지 않았어요."
"애들이 막 요령 피우고 그러면 '이놈들 막 이제 빨리빨리 안 하냐' 이렇게 가족이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걔들을 뭐 때리고 그랬겠어요. 얘기하다 보면 답답하면 욕은 할 수 있겠죠."
"외출 못 하게 한 적은 없어요. 당연히 어디 갈 때는 이야기를 하고 가야지요. 일이 없으면 다녀오겠다, 그러면 갔다 와라,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얘들은 여기서 24시간 같이 생활을 하는 애들이잖아요."

박 씨 폭로 직후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도 "사장님은 돈 안 떼먹어요", "혹시 말을 잘못해서 사장님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요" 이런 말들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사에 참석했던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는 "자연스러운 본인 얘기라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입력된 진술을 그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 '진술 오염'이 의심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
"염주들이 평소에 입 딱 다물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아라. 사건 잘 해결될 것이고 너희들 어차피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다. 내가 너네들 인생 책임지고 있으니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아라 하는 거죠."

염전 밖에 나오자 입 열었다


박 씨 동료들의 진술에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고 합니다. 본인 명의 계좌에서 돈이 오간 내역을 알지 못했고 증거를 제시하면 침묵하거나 염전 운영자에게 유리하게 말을 바꾼 겁니다. 심지어 동료 A 씨가 가지고 있던 급여명세서에는 월급이 '-22만 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A 씨는 운영자가 구속된 뒤 염전을 나와서야 비로소 피해 사실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A 씨 / 박 씨 동료]
"OO이 하고 XX이 하고 불쌍해요." "돈도 못 받고. 도망가면 잡아오고 따귀를 때려버리고." "사장이 말하지 말라고, 입 딱 닥치라고 했어요." "전에 일하던 염전에선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인권단체들은 피해자를 가해자와 일정기간 분리해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해야 제대로 된 진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
"어린 시절의 코끼리가 작을 때 기둥에 다리를 묶어요. 그러면 이 코끼리가 처음에는 발로 차보기도 하고 기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다가 어느 순간 '아, 나는 이 기둥에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제 묶지 않습니다. 훨씬 더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져도 벗어나지 않아요."

"여기 있는 피해 장애인들은 대부분 10년, 20년 같은 염전에서 가해 업주와 계속해서 동거 생활을 하면서 일을 하셨던 분들이고 오랜 기간 지속된 이런 폭언과 학대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학습된 거예요. 지금 현재 정서적인 감금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나머지 동료들이 염전에서 나가길 거부하고 있어 강제로 데리고 나올 방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탈출자가 나온 이상 장애 유무라도 신속히 확인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염전 노예' 반복되는 이유

염전 자료화면

분리가 어렵다는 경찰 입장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염전 노동자들을 설득해봤자 나와서 지낼 곳이 마땅히 없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
"사실은 지금 2014년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습니다. 2022년 지금 현재 전라남도에 인권 침해 피해자 쉼터가 존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기존에 존재하던 곳은 지난해 12월 사업이 종료된 상황이에요."

"2014년 염전 사건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노숙인 시설로 거의 강제로 입소했던 경험이 있는데, 즉각적인 의료적 조치, 심리적인 치료 같은 것들이 동반되지 못해 사실은 실패 사례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염전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염전을 나왔다가도 어려운 형편에 다시 직업소개소로 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영근 씨 가족]
"실종신고를 했는데 어디 있었냐 하면 목포역 앞에 직업소개소에 있다는 거야. 어디 또 가려고 그랬는지. 배 타러 간다고… 내가 보니까 돈이 없어서 앉아 있었던 것 같아."

반면, 2014년 염전 노예 사건으로 적발된 업주 상당수는 지금도 염전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제재는 약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현실이 지금처럼 계속 반복된다면 염전 노동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대하긴 어려울 겁니다.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
"근데 아무것도 달라진 거 없잖아, (가해자들이) 아무 문제없이 염전 운영하고 있고, 여전히 똑같이 인권 침해하고 있는데, '나가자,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하느냐,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 그런 주장들을 상시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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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 : 하륭 / 편집 : 박승연 / 기획·제작 : D콘텐츠기획부)

*[끝까지판다] 아직도 '노예'가 있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는 피해자들의 폭로. 우리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 뒤에는 여전히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끝까지 판다팀은 취약 계층을 상대로 이뤄지는 '현대판 노예 노동'이 2022년 한국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인권단체들과 함께 추적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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