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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폭력 신고 후 해고…주한미군과 싸우는 여성의 절규

[단독] 성폭력 신고 후 해고…주한미군과 싸우는 여성의 절규

조기호, 김도균 기자

작성 2022.01.25 12:04 수정 2022.01.25 15: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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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수정 [단독] [취재파일] 성폭력 신고 후 해고...주한미군과 싸우는 여성의 절규

군대 내 성폭력이나 괴롭힘 문제는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일반 회사보다 잘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공군 이예람 중사와 육군 윤승주 일병 사건 등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군대 어디인가에서는 성폭력, 구타, 가혹행위, 따돌림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군인들이 분명 존재할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대한민국 내 치외법권' 지대로 불리는 주한미군의 경우 더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그동안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부대 담장 밖을 넘어올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해고된 치위생사의 사연은 그래서 우리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접수한 수백 페이지의 진정서, 일기처럼 써내려 간 인터넷 게시판의 글들, 미군 측에 보낸 각종 서류 등을 통해 그가 8년 동안 겪었던 일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취재했습니다.
 

"입사 한 달도 안 돼 치과 원장이 성추행"

이 모(45) 씨는 2012년 6월 대구의 한 미군부대에서 치과멸균기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주변 환경과 사람들 모두 낯설었지만 평생직장으로 생각한 만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이 씨에 따르면 입사 한 달쯤 지난 어느 주말 저녁,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자신에게 한국계 미국인 장교였던 당시 A 치과 원장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이 씨는 직장 상사의 말이었기에 함께 식사를 했고 2차로 주점에서 술도 마셨다. 이후 집에 가려는 그에게 A 원장은 호프집에서 한 잔만 더 마시자고 권유를 했고 이 씨는 거절하지 못했다. 자정이 다 될 무렵 A 원장은 '통금 규정이 있으니 잠시 어디에서 쉬었다 가자'며 이 씨를 모텔 입구까지 끌고 갔다. 이 씨는 거부했고, A 원장은 집요했다. 이 과정에서 성추행이 벌어졌다.
 
이 모 씨ㅣ성폭력 피해 등 고소인
주말하고 주중하고 컬퓨(통행 금지 시간)라고 있어요. 통행 금지가 있어서 그 시간에 밖에 나와 있으면 보통 제일 가벼운 처벌이 강등이에요.
- (선생님께 어디) 들어가자고 한 건 정상적인 제안입니까?
=이 사람은 일단은 바로 위에 수퍼바이저도 아니고. 예를 들자면 저는 이등병인데 그 사람은 그 완전히 무슨 어
-중대장?
=그 정도 수준이 되는 거예요. 군인으로 치면은.
그게… 앞으로… 뭔가… 하… 솔직히 별로 기억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이 씨는 "나와 원장의 관계는 군인으로 치면 중대장과 이등병의 차이였다"며 "그 사건 이후 원장을 보면 움츠러들게 되는 등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고 털어놨다. 2018년 2월 이 씨는 그 사건을 부대에 신고했다. 그때는 이 씨가 다른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시기였다. 이 씨에게 신고까지 6년이 걸린 이유를 물었다.

"직장을 계속 다녀야 했기에 참고 또 참았다. 그러면서 일만 더 죽어라 했다. 하지만 새 부대에서 더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되니 너무 화가 나더라. 바뀌지 않는구나 생각에 우선 전에 당했던 성폭력 사건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부터 문제 제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난 2018년, 이 씨가 조사를 요구하며 상관에 보낸 메일

"성폭행 한 새 부대 원장이 다음 날 사후피임약 먹으라더라"

이 씨는 더 끔찍했다는 '그날'의 일에 대해 말하길 계속 주저했다. 펄펄 끓는 물에 손을 다시 한번 넣어보라는 질문 같아 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 씨가 힘겹게 털어놨다.

그가 대구에서 경기도 평택의 미군부대로 옮긴 해는 2016년이었다. 사건은 그해 가을에 일어났다. 새로 온 한국계 미국인 장교 B 원장이 이 씨에게 식사를 제안했다. 이 씨는 또 나쁜 사람일까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계속 사람을 의심하며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친구로서 함께 밥을 먹은 뒤 간단한 술자리도 가졌다. 다른 직원들도 B 원장의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식을 먹은 적도 있었고, 함께 있는 동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기에 이 씨는 "B 원장이 자신의 집에서 한 잔만 더 하자는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며 "그걸 뿌리치지 못한 내가 참…"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는 '그날' B 원장이 마셔보라며 가져온 상표 없는 술을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집에 돌아왔는데 B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사후피임약을 먹는 게 좋겠다'는 원장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씨는 바로 동네 산부인과로 가서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받았다. B 원장 자신이 저지른 짓을 똑똑히 보라는 취지에서 그를 병원으로 불렀다. 진료비는 이 씨가 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 씨는 "그 사람에게 돈 받으려고 병원에 부른 거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다"며 "그 이상 신고든, 고소든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해외 주둔 미군은 치과 부문에서 우수한 직원들을 20명씩 선발해 정기적으로 상을 준다고 한다. 'Pacific Regional Dental Command TOP20'라는 상이다. 이 씨는 이걸 두 번이나 받았다. 이 씨 말고 한국인이 받은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이 악물고 일만 한 덕분이다. 두 번의 성폭력 사건만으로도 직장이라는 링 위에 쓰러질 법했지만 이 씨는 그러지 않았다.
 
이 모 씨ㅣ성폭력 피해 등 고소인
자기네 그거 고향에서 갖고 온 술이 하나 뭐 그러면서 그걸 보여주는데 병에 라벨이 없는 거예요.
먹고 나서 소파에 앉아 있는데 되게 되게 많이 졸렸어요. 그래서 잠들었어요. 네.
-그런데 다음 날 뭐라고 전화가 왔습니까?
= 그런데 다음 날 이것저것 일이 있고 나서… 집에 와 있는데 그게 그런 거(사후피임약)를 좀 먹어야 될 거 같다고
= 네 그래서 그 조처가 필요할 것 같아서 병원에 갔고. 오라고 그랬어요. 제가. 같이 갔어요. 네 그래서 제가 돈을 냈어요. 나는 너한테 돈 받으려고 이렇게 한 거 아니니까 제가 돈을 냈고 좋지 않은 약을 먹었고….
 
 

"결혼 왜 안 하냐, 레즈비언 아니냐"…일상화 된 성폭력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일할 때였다. 미국인인 유부남 동료가 소독실 등에서 '사귀자'며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려고 했다. 심지어 이 씨의 집에 찾아가겠다며 SNS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를 거절하자 그때부터 그 유부남은 이 씨에게 '레즈비언이라 남자에 관심이 없다'는 등 없는 말을 지어냈고, '창녀'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참다못한 이 씨는 상관에게 보고해 조치를 요구했지만, 한국인인 이 씨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경기도 평택의 미군부대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근무한 시간보다 더 많이 일한 걸로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또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치위생사가 해서는 안 될 '진료 결정'을 하는 동료도 있었다. 이 씨가 경위를 묻자 그들은 그때부터 따돌림과 악의적인 소문으로 되갚았다. 이 씨는 점점 주변과 고립돼 갔다.

이 씨의 입바른 말은 꺾이고 굴절돼 잔소리, 헛소리로 치부됐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4월. 감염 위험으로 치과용 공동 소독기구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 씨는 따랐고 동료는 따르지 않았다. 못 본 척 넘어갈 법 했지만 이 씨는 그러지 않았고 그의 입지는 더 좁아져 날카로운 바늘 위에 몰렸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군의관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나눠줬다. 원래 사내 매점에서 팔던 것들인데 그날따라 무료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나눠준 음식 중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히 남은 음식도 있었다고 한다. 화가 난 이 씨는 재발 방지를 위해 중간 관리자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해당 군의관과 얘기했더니 유통기한이 10일 이상 남은 음식들이었다더라. 거짓말 하지 말라"며 외려 이 씨를 질책했다. 설상가상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받은 한국인 근로자들도 증인으로 나서길 주저했다.

[단독][취재파일] 성폭력 신고 후 해고...주한미군과 싸우는 여성의 절규

이 사건 이후로 이 씨는 고립무원이 됐다. 그동안 동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며 은근히 따돌렸다면 이제는 대놓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을 때 철제 캐비닛 문을 여닫는 소리가 크다며 폭력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가 없는 시간에 삶은 달걀을 한 개 먹어도 '근무시간에 왜 음식을 먹느냐'며 심하게 질책을 받았다. 이 씨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일만 하자'고 다짐하며 봉인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들기 시작했다.

2021년 2월. 이 씨는 이미 조사를 요구했던 대구에서의 성추행 사건을 포함해, 평택기지에서 있었던 성폭행 건과 그동안 벌어졌던 직장 내 괴롭힘 사건들을 정리해 주한미군 범죄사령부에 수사 의뢰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이 씨가 받은 건 '조사 중'이라는 회신 대신 '파면 예정 통지서'였다. 그리고 넉 달 뒤 '파면 결정 통지서'가 날아왔다.

2021년 주한미군이 이 씨에게 보낸 파면 결정 통보서

주한미군 측이 보낸 '파면 결정 통지서'에 따르면 이 씨는 근무지에서 소란을 유발했고, 개인이나 기관의 평판, 권위 등을 손상하는 허위 또는 악의적인 진술을 했다고 한다. 이 씨는 "모든 건 대구 성추행 사건을 신고한 뒤부터 잘못되기 시작한 것 같다"며 "해고가 이렇게 쉬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울분을 털어놨다.
 
이 모 씨ㅣ성폭력 피해 등 고소인
일단 우유라든가 두유라든가 기타 그런 간식 같은 그런 종류죠. 라면 같은 거 일단은 제가 문제 제기한 라면 같은 그런 것도 있었고 사람으로서 그게 기본이잖아요. 그리고 평소에도 뭔가 음식 같은 걸 가지고 와서 다 같이 나눈다면 그건 참 감사한 일이에요. 근데 먹던 거 갖고서 준다는 거 그런 거 있다면 좀 굉장히 불쾌한 일이거든요.
CID라고 미군 범죄사령부에다가 그 의뢰를 해서 거기 가서 절차를 밟았는데, 문제가 뭐냐면 이런 종류의 사건은 관할처가 미군으로 돼 있어요. 그럼 뻔한 거죠.
- 어떤 회신이 왔습니까?
= 회신이 와봐야 뭐 거의 그래서 그냥 불기소 처분이라고 얘기 들었어요.
- 이유를 혹시?
= 자세하게 얘기를 안 해줬던 거로 기억이 나요. 그리고 또 그 불기소 처분 얘기를 듣자마자 제가 흥분을 좀 했었어요. 제가 그때 좀 조금 화를 냈어요. 그래서 너 누가 죽어야 수사할 거냐고 내가 그랬어요.
이게 일반 회사로 치면 이곳이 얼마나 오래 갈까 싶었어요. 원칙이 무너진 곳은 그렇게 오래 갈 수 없어요.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미군 측, "고용부 본청 아닌 지청이 왜 전화?"

이 씨는 먼저 노무사를 찾아갔다. 주한미군을 이기려고 시작한 싸움이 아니었다. 8년 넘게 열심히 일해온 직장에서 이대로 해고 처분을 받아들이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노무사와 함께 그동안 인터넷 공간에서 하소연 한 글들,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메일, 문자메시지, 병원 진료 기록 등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기억을 더듬어가며 '8년간의 기록'을 완성했다.

다음 방문지는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이었다. 기록을 꼼꼼히 검토한 윤지현 감독관은 '처리 결과를 알려달라'는 취지의 개선 지도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지도문 발송부터 쉽지 않았다. 윤 감독관은 "평택 미군기지에 등기 우편을 보냈는데 반송이 됐고 전화도 여러 차례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며 "어렵게 미군 인사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를 확인해 지도문을 보냈더니 그제서야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윤 감독관에 따르면 인사 담당자는 사건에 대한 얘기 대신 "고용부 본청이 아니라 지청에서 왜 바로 미군에 연락했느냐"며 기분 나빠했다고 한다. 윤 감독관은 "우리 국민이 미군부대 내에서 겪은 사건이라 조사를 해주시고,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담당자는 'SOFA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윤지현ㅣ고용노동부 평택지청 감독관
부대에 일단 개선 지도문을 발송을 했고요. 그런데 우편물조차도 저희가 받아볼 수 있는 주소지를 확인을 하기가 어려웠고, 등기 우편물도 반송이 됐었습니다. 미군부대 측에 연락을 드렸는데, 전화 연락도 쉽지 않았고요.
주한미군 인사부 담당자분의 연락처를 알게 됐는데, 그쪽도 전화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를 하다가 이메일 정보를 알게 돼서 이메일로 일단 저희 개선 지도문을 보내드렸고 그 이후에 주한미군 측 인사 담당자께서 전화를 주셔서 그때 어렵게 통화를 했었습니다.

일단 지청에서, 고용노동부 본부 측이 아니라 지청에서 직접 연락을 준 거 자체에 대해서 좋지 않게 얘기를 했었고요. 제가 일단은 국민이 당한 피해 내용이니까 그거에 대해서 내용을 살펴봐주시고 공식적인 답변을 요청을 드렸는데, 미군부대 내에서 일어난 일은 SOFA 협정에 따라서 절차대로 진행을 해주길 바란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어려웠던 건 저희가 직접적으로 처분을 하기 전에 조사부터 이뤄져야 하고 피해 내용이라도 알려드려야 하는데 주한미군 문턱 자체가 너무 높고, 저희가 전달할 수 있는 통로 자체도 찾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SOFA 노무조항이 뭐길래

SOFA 17조(노무조항)는 이렇게 돼 있다.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와 군사상 필요에 배치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 노동법령에 따라야 한다> 17조엔 해고에 대한 규정은 나와 있다. 현재 전쟁 중이거나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를 제외한 다른 징계 사항과 직장 내 성폭력, 괴롭힘 등의 문제는 한국 노동법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미군 측은 '따라야 한다'(conform with)를 의무 규정이 아닌 '부응하다'로 해석하며 우리 정부와 계속 맞서고 있다. "SOFA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인사 담당자의 말도 여기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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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SOFA에 나와 있는 해고 조항은 어떨까. 다시 말하면 이 씨는 앞으로 어떤 절차를 밟게 될까. 다음 달 23일 미군 측이 자체 소청심사위원회(소청위)를 연다. 여기서 '해고 절차가 문제 없음'이라는 결론이 나오면 그때부터 우리 정부가 관여할 수 있다. 미군 측의 소청위 결과를 고용부가 재심사 한 뒤 다퉈볼 이유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 미군 측에 특별심사위원회(특별위)를 열자고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위는 한국과 미국이 6인 이하 동수로 꾸려진다. 만약 3대3으로 의견이 갈리면 양국 대사 등이 참여하는 외교 사절단이 협의를 다시 하는 걸로 돼 있다. 특별위에 가는 과정도 험난하고, 가서도 달걀로 바위 치기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함정이 있다. 고용부가 미군 측에 특별위 개최를 요구해도 차일피일 미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SOFA에는 '적시에 응한다'라고만 돼 있을 뿐, 응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제재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고용부 정택진 주무관은 "최근 5년 동안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가 해고를 당했다고 신고한 건수는 7건"이라며 "이 중에 1건만 구제됐다"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전체 1만 2천5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 중에 이 기간 몇 명이 해고를 당했는지 통계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이 씨 사건을 맡고 있는 최지혜 노무사는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들도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우리나라에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라며 "하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잔인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지혜ㅣ노무사
물론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시는 근로자분들도 요즘 직장 내 괴롭힘이라든가 갑질에 대해서 어려움을 굉장히 많이 호소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처럼 주한미군 사례의 경우에는 굉장히 특수하고 폐쇄적인 고용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태에서는 국내 기업보다는 조금 더 직장 내 괴롭힘이라던가 갑질에 대해서 호소를 하는 방법과 절차에 확실히 더 어려움을 느끼고 계십니다. 사실 주한미군에서 근로하시는 한국인 근로자분들도 똑같이 4대 보험도 납부하고 똑같은 근로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구제 방안이 없는 상태이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해고를 당해야지만 다투어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그마저도 SOFA 협정 등이 우선시되는 상황이어서 이것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근로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특히나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세상에 알리는 것도 굉장한 용기와 힘이 필요한 이러한 현실에 너무나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독일도, 일본도 미군이 주둔하지만…

고용부는 SOFA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처럼 미군이 주둔하는 독일과 일본 사례를 연구했다. 이에 따르면 독일은 우리처럼 미군이 독일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노무조항에 독일 노동법을 '반드시' 따르도록 수정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우리처럼 미군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국민에게 유리하도록 바꿨다는 얘기다.

일본은 방위성이 자국민을 채용한 뒤 미군 측에 근로를 제공하는 간접고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임금을 주기 때문에 노무관계 역시 일본이 직접 조율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우리보다는 자국민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를 촘촘하게 마련한 셈이다.

소청위를 앞둔 이 씨는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 싸움을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할 수조차 없다고도 했다. 다만 "미군 측이 마음대로 해고해도 한국인은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중간에 터져버릴지, 하늘로 힘껏 뻗어나갈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8년간의 기록'을 들고 미군부대 담장 밖을 넘어와 세상에 알렸다는 사실이다. 이 씨'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취재 : 조기호, PD : 김도균, 영상취재 : 김학모, 편집 : 정용희, 디자인 : 최진영,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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