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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번엔 대학 입시장에서…끊이지 않는 '묻지마' 범행

일본 도쿄대 앞 흉기 난동…'모방 범죄'의 공포 확산

1주일 전 일본 도쿄 도심의 고깃집에서 점장을 인질로 3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한 인질극이 있었다는 내용을 취재파일로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월드리포트] 한밤 도심의 인질극…10월 '조커'의 악몽

당시 인질극은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범인이 체포되는 걸로 끝났습니다만 정확하게 1주일 뒤인 지난 15일,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대입 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일본의 대입 공통 테스트 시험장을 노린 '묻지마' 범행이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부상자가 3명이나 나온 사건이었습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15일 오전 8시 반쯤, 일본 도쿄 분쿄(文京)구 도쿄대학교 캠퍼스 북쪽 출입구 앞. 1시간 뒤면 시작될 대입 공통 테스트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하나둘 교문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북쪽 캠퍼스의 입구는 도쿄메트로(지하철) 남북선 '도쿄대앞(東大前)' 역 출구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역에서 나와 교문으로 향하는 길에서 갑자기 비명이 울려 퍼졌습니다.

도쿄대 흉기 난동

교복 차림의 학생이 앞을 걸어가던 70대 남성의 등을 흉기로 찌른 뒤 계속해서 수험생 2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겁니다. 북쪽 캠퍼스 출입문 근처에는 고반(交番, 파출소)이 있어 경찰이 상주하고 있는데, 이곳에도 급박한 목소리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범인은 잇따라 세 명에게 상처를 입힌 뒤 큰 소리로 절규했습니다.

"나도 내년에 도쿄대 시험을 볼거야!"

긴급 출동한 경찰이 범행 직후 교문 근처에 주저앉아 있던 범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이내 소방 구급차도 달려와 피해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상처를 입은 세 명은 모두 의식이 있었고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상태였지만, 70대 남성의 경우 병원 도착 후 상태가 나빠져 긴급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범인은 3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자해를 시도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그만둬!'라고 강하게 저지하자 흉기를 내던지고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습니다. 달려온 경찰에 체포돼 자동차로 옮겨질 때까지 줄곧 무표정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대학 도쿄대학에서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향하는 긴장 가득한 시간에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으로 학교 앞은 오전 내내 술렁거렸습니다. 시험 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한 수험생들은 교문 앞을 가득 메운 경찰과 소방대원들을 보며 불안감 속에 학교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도쿄대 흉기 난동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에서 명문 사립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이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전날인 14일, 무단으로 학교에 결석하고 밤 11시쯤 나고야에서 도쿄로 향하는 심야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사건 당일 아침 6시 반쯤에 도쿄역에 도착해서 지하철 한 번 갈아타며 도쿄대 근처로 향했습니다.

흉기 난동 30분 전에는 앞서 말씀드린 '도쿄대앞' 역을 지나친 전동차와 역 구내 곳곳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 흔적이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어느 곳에서도 큰불은 일어나지 않은 채 진화됐습니다. 역 구내에 설치된 폐쇄회로 TV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무언가에 불을 붙이고 빠르게 도주하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A군은 경찰에서 "전동차에 불을 지르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교문 앞에서 체포된 A군의 가방에서는 범행에 사용한 흉기 외에도 2점의 다른 흉기, 그리고 모두 3리터나 되는 가연성 액체와 이 액체에 불을 붙일 때 사용하는 착화제를 넣은 병이 여러 개 나왔습니다.

도쿄대 흉기 난동

경찰 조사를 종합하면, A군은 대학 입시 첫날 도쿄대로 오는 불특정 다수를 노리고 방화를 계획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화를 위해 수 리터의 가연성 액체와 착화제, 나무 조각 등을 나고야에서부터 소지하고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이 생각대로 잘 붙지 않자 방화를 포기하고 '도쿄대앞' 역을 나와 교문을 향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함께 가져온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A군이 지하철에서 화재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도 끔찍합니다. 평일보다 유동인구가 적은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말씀드린 대로 대학 입시로 각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수험생과 응원차 따라 나온 가족들이 많은 시간대였습니다. A군은 경찰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도쿄대를 목표로 공부했지만, 1년 전쯤부터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아 자신감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의사를 목표로 공부하던 학생이,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해 쌓인 불만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상대로 이런 끔찍한 일을 계획했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도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도쿄대 흉기 난동

일본에서는 흔히 '길 위의 악마'로 부르는 '묻지마' 범죄가 종종 일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이미 8뉴스와 취재파일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전해드렸지만, 우리 국회에 해당하는 중의원 선거일과 핼러윈이 겹쳤던 지난해 10월 31일에는 도쿄 신주쿠를 향하던 게이오선 전철 안에서 영화 캐릭터 '조커'를 모방한 차림의 남성이 방화와 흉기 난동 사건을 일으켜 17명이 부상을 당했고, 긴급 정차한 열차에서 승객들이 앞다투어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딱 한 달 전에는 오사카에서 자기가 다니던 병원에 불을 질러 환자와 병원 원장 등 25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범행의 경우 범인도 며칠 뒤 숨져 아직도 범행 동기가 불분명합니다.)

문제는 이런 '묻지마' 범행들이 대부분 이전에 있었던 다른 범행을 '참고'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범행 동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른바 '수법'은 앞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다른 범행들을 모방하거나 더 치밀하게 계획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게이오선 전철 방화 사건의 범인은 (2021년) 8월, 오다큐 전철 방화범이 방화에 실패한 이유를 보고, 인화력이 더 높은 기름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12월 오사카 병원 방화범은 2019년에 36명의 희생자가 나온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사건' 관련 신문 기사를 자택에 보관하고 있었던 사실이 경찰의 현장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군가 무언가에 강한 불만을 갖고 이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반사회적 범죄로 발산하는 경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 지원에서 시작해 강력한 법적 제재에 이르기까지 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도쿄대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인 A군이 지난해 있었던 지하철 방화 사건을 어떤 식으로 접하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경찰에서의 구체적인 진술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모방 범죄가 장소와 시간을 막론하고 연령대까지 개의치 않고 빈발하는 상황에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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