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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람 몸에서 뛰는 돼지 심장…이식용 장기도 수입해야 하나?

[취재파일] 사람 몸에서 뛰는 돼지 심장…이식용 장기도 수입해야 하나?
▲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베넷과 의료진(위)
 

지난 1월 7일(금) 미국 볼티모어시 메릴랜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8시간의 수술 끝에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57세의 남성 데이비드 베넷(David Bennett)은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 논란 속에서도 별 이상 없는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메릴랜드의대는 성공에 가장 중요하다는 48시간을 지나 수술 3일 뒤인 지난 7일 베넷의 이종간 장기 이식 수술의 성공을 발표한데 이어, 폐와 심장을 우회해 베넷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도 점차 제거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돼지 심장 이식 후 1주일이 지난 13일 메릴랜드병원 관계자는 "베넷의 몸이 이식된 심장을 거부하는 반응이 나타날 것에 대비해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잘 회복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Bartley Griffith) 박사는 12일 병원 측이 촬영한 영상을 통해 "이식된 심장은 새 몸 안에서 행복한 듯 힘차게 박동 치고 있다. 오늘은 다시 말도 할 수 있게 됐다"며,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상태"라고 밝혔다.

사람의 신장을 이식할 때도 면역 거부 반응이 생기는 상황에서 돼지의 심장을 이식한 베넷의 몸이 거부 반응 없이 얼마나 정상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의료진들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거부 반응이 없어도 이식한 돼지의 유전자에 있는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에 감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돼지 심장 이식 시험에 이용된 개코원숭이

수백 년 된 이종간 장기 이식, 성공의 열쇠는 유전자 조작과 복제 기술

동물의 조직이나 피부를 떼어내 사람에 이식하는 종간 이식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물의 피나 피부를 이용하려는 노력은 수백 년 전부터 시도돼 왔다.

1960년대 침팬지의 신장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침팬지의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들은 9개월 이상을 살지 못했다. 1983년 개코원숭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베이비 패(Baby Fae)는 20일 만에 숨졌다. 영장류는 사육하기가 힘들고, 영장류의 세포에 있는 바이러스가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의 세포를 감염시킬 위험도 크다.

영장류의 장기 이식이 실패한 뒤 돼지는 종간 이식 조직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사육하기 쉽고, 조직이 사람과 비슷한 데다 6개월이면 다 자라기 때문이다. 장기 이식용 미니돼지는 다 자라도 일반 돼지의 3분의 1 크기이지만, 몸무게는 60kg으로 사람과 비슷하다. 심장 크기도 사람 심장의 94% 정도이고 해부학 구조도 비슷하다.

미니돼지의 심장 판막은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이식돼 왔고, 당뇨병 환자들은 돼지의 췌장 세포를 이식해왔다. 돼지 피부는 화상환자들의 임시 피부로 활용된다. 지난 7일 메릴랜드의대에서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베넷도 10년 전 돼지의 심장 판막을 이식받았다.

작년 10월에는 뉴욕대학교 랭곤헬스(N.Y.U. Langone Health) 메디컬센터가 뇌사자에게 유전자 조작된 돼지의 신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돼지의 심장을 이식 받은 베넷(우)과 수술을 집도한 그리피스 박사(좌)

최근 이종간 장기이식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 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이뤄진 유전자 조작(gene editing)과 복제기술(cloning)의 발달이다. 유전자 조작과 복제로 거부 반응을 최소화한 돼지의 수정란을 만들고, 이를 대리모에 착상시켜 기른 뒤 이식하는 것이다.

2015년 생명과학회사 eGenesis의 공동창업자인 루한 양(Luhan Yang)은 유전자 편집 기술 CRISPR-Cas9을 이용해 돼지의 유전자 가운데 사람에게 이식할 경우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베넷의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Bartley Griffith) 박사와 함께 메릴랜드의대 이종심장 이식 프로그램을 만든 무하마드 모히우딘(Muhammad Mohiuddin) 교수는 지난 2016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든 돼지의 심장을 개코원숭이의 복부에 이식해 1천 일을 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면역억제제를 투여한 원래 개코원숭이의 심장은 그대로 둔 상태였다. 이를 통해 모히우딘 박사는 면역억제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이종 장기의 거부 반응을 통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2018년 12월 뮌헨대학교(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 라이하르트연구소의 브루노 라이하르트(Bruno Reichart) 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든 돼지의 심장을 개코원숭이 4마리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다 2마리는 3개월 후, 다른 2마리는 6개월 후 안락사됐다.

라이하르트연구소의 돼지 심장 이식은 여러 단계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됐다. 유전자 조작 돼지의 심장을 개코원숭이에 이식하는 첫 번째 시도는 바로 실패했다. 돼지 심장을 이식한 개코원숭이는 얼마 살지 못했다. 5마리 가운데 3마리는 이식 수술 직후 심장마비로 죽었다. 사람의 심장과 달리 돼지의 심장이 쉽게 손상된 것이다. 유전자 조작 돼지에서 떼어낸 심장은 개코원숭이에 이식하기 전까지 이른바 허혈시간(ischemic time)을 견디지 못했다.

두 번째 돼지 심장 이식에 나선 라이하르트 박사는 사람의 심장을 이식할 때 심장을 보관하는 배양액에 돼지 심장을 담근 뒤 이식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는 1개월밖에 버티지 못했다. 원숭이에 이식한 돼지의 심장이 자라면서 갈비뼈를 눌렀고, 결국 죽고 만 것이다. 돼지의 심장은 6개월 만에 성체로 자라지만 원숭이의 심장은 10년 동안 서서히 자라기 때문이었다.

라이하르트연구소는 돼지에게 성장억제제를 투여한 뒤 심장을 떼어내 세 번째 그룹의 원숭이 5마리에게 이식했다. 기계적인 이유로 51일 만에 죽은 1마리를 제외한 4마리의 원숭이는 안락사시키지 전까지 3개월에서 6개월 동안 생존했다.

돼지의 유전자 조작 절차

돼지 심장 사람 이식, 어떻게 가능했나

사상 처음으로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데이빗 베넷은 말기 부정맥 환자로 높은 혈압과 다른 건강 문제로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을 수 없었다. 2개월 동안 심장 보조기구를 달고 있었던 베넷은 의사들의 처방을 따르지 않아 사람의 심장 이식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메릴랜드의대 의료진은 베넷의 동의 하에 FDA로부터 돼지 심장을 이식해도 좋다는 특별 허가(compassionate use)를 받았다. FDA는 의료용으로 적합한 수준의 돼지 사육 시설과 10마리의 개코원숭이에 대한 심장이식 수술 경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넷에게 이식한 돼지 심장은 바이오 회사 리비비코(Revivicor)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든 돼지에서 떼어낸 것이다. 리비비코는 이식 수술을 한 모히우딘 박사 팀과 오랫동안 협업을 해 온 회사이다. 지난 2016년 모히우딘 박사가 개코원숭이의 복부에 이식해 2년 이상을 살도록 하는 데 성공했던 돼지의 심장도 리비비코가 제공한 것이었고, 최근에는 리비비코가 제공한 돼지 심장을 개코원숭이의 심장에 이식해 9개월 간 생존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종간 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발생하는 거부반응을 줄이는 것이다.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돼지의 심장 세포 표면에 있는 당을 이물질로 인식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데, 이 당 성분을 제거해 항체 결합을 최소화하는 게 성공의 열쇠였다.

유전자 조작 돼지를 만드는 리비비코는 사람에 이식하는데 적합하도록 돼지를 형질 전환하기 위해 돼지의 유전자 10개를 변경했다. 우선 돼지의 세포에서 당을 형성하는 3개의 유전자를 잘라내고, 6개의 사람 유전자를 주입했다. 2개의 항염유전자와 2개의 혈액응고 조절 유전자, 2개의 항체 반응 조절 유전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돼지 심장이 더 커지지 않도록 조절하기 위해 생장호르몬수용체(Growth hormone receptor) 조절 유전자를 제거했다.

돼지의 유전자 조작과 함께 이번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의 성공에 기여한 것은 특수 개발한 면역억제제다. 사람간의 장기이식과 달리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 어떤 면역 반응을 일으킬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메릴랜드 의료팀은 키닉사 제약(Kiniksa Pharmaceuticals, Ltd)의 강한 면역억제제 KPL-404를 베넷에게 투입했다.

유전자 조작된 돼지에서 심장을 떼어낸 뒤 베넷에게 이식할 때까지 보관한 특수 용액도 관심이다. 메릴랜드의대 연구팀은 스웨덴 XVIVO사의 특수 배양액을 사용했다. 물,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 용해한 코카인을 섞어 만든 수프에 돼지의 심장을 보관해 이식할 심장의 기능이 유지되도록 했다.

하지만 10개의 유전자 조작이나 배양액, 강력한 면역억제제가 각각 얼마나 어떻게 면역거부 반응을 억제했고 수술의 성공에 기여했는지 구체적인 기전은 수술에 참여한 과학자들도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종간 장기이식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상당기간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이식용 돼지 심장을 떼어내 들고 있는 매릴랜드의대 의료진

"한국은 이종장기 수입국 될 겁니다"…국내 장기이식 연구 사실상 '올스톱'

"한국은 외국에서 이종 장기 이식 기술이 성공하면 결국 수입하는 나라가 될 겁니다."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이병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이종간 장기 이식 연구는 사실상 모두 중단된 상태라며, 정부가 지금처럼 보수적인 정책을 유지한다면 외국에서 먼저 기술개발에 성공한 장기나 기술을 수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우리나라도 유전자 조작과 복제 기술을 갖고 있지만, 정부가 "관련 연구를 하려면 왜 되는지를 먼저 밝혀라. 안전하다는 것을 먼저 입증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을지대학교 임상병리학과 김건아 교수는 "황우석 사태, 인보사 사태, 신라젠 사태 등 국내에서 바이오 관련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지금까지 이뤄진 이종장기 이식 사업 과제도 연구개발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대에 'SNU피그'가 있지만 인허가가 보류되면서 이종장기 연구에 필요한 '미녀처피그'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식약처는 윤리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며 선례가 없으면 연구 승인도 해주지 않는다. 기술은 보유했지만 사실상 연구 인프라가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종장기 연구를 하는 비엔지티생명공학연구소 강정택 소장은 "미국에서는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동물 장기 이식을 허용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물 장기 이식은 법적으로 허용이 안된다. 기술이 있어도 임상시험조차 허용이 안된다. 동물 유래 세포를 이용한 연구는 허용이 되지만 고형 장기를 이식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세포 차원의 연구도 임상시험이 안돼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 식약처는 선도적으로 바이오 연구를 허용하기보다는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간 장기이식 활용 사례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20년 8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 동물유래 이종세포에 관한 연구가 법적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이종 조직이나 장기 차원의 연구는 아직 관련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연구개발 허용 여부를 심사하는 식약처에서 유전자 조작이나 이종간 장기이식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법에서 허용된 분야에 대한 임상시험도 현실적으로 허가를 받기 어렵다는 불만이 높은 실정이다.

메릴랜드의대에서 FDA의 허가를 받아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앞으로 미국에서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심장은 물론 신장, 간, 폐 등 다른 장기의 이종간 이식에 대한 임상시험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최첨단 이식용 장기 사육 시설과 유전자 조작 돼지를 보유한 리비비코 외에도 eGenesis는 레트로바이러스를 유전자 조작으로 제거한 돼지를 만들었고, 뉴질랜드의 Nzero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신장을 가진 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돼지의 심장 박동과 사람의 심장 박동이 같은지 등 이종 장기의 생리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식약처도 이종장기 연구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연구비를 따내고 관련 연구를 마무리하면 그것으로 손을 놓고 지속 연구를 하지 않는 연구개발 풍토, 그리고 첨단 분야에서 조차 "실제 되지만 왜 되는지를 먼저 밝혀라"라며, 안전보장을 먼저 요구하는 정책당국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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