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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권 말 '낙하산 인사' 언제까지 봐야 하나요?

방사청 고위직이 공공금융기관에 임명

꽂으려는 자와 뽑으려는 자. 무슨 게임 속 캐릭터 얘기 같지만 사실은 임기 말 '낙하산 인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대 모든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눈 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답답합니다.

캠코 한국자산관리공사

14일 오후 2시 부산에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에서 주주총회가 열렸습니다. 안건은 방위사업청 국장 출신인 원 모 씨를 가계지원본부장(임원직)에 선임하는 문제였습니다. 캠코 측은 강행했고, 노조 측은 온몸으로 저지했지만 결국 통과됐습니다.

캠코는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부실 채권을 정리하는 등 고도로 정밀하게 운용되는 금융기관입니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77%,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이 18%의 지분을 갖고 있는 준정부기관이기도 하지요. 원 씨의 선임 안건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는데, 이날 주주총회에 참가한 주주는 대부분 기재부였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입니다.

원 씨는 방사청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며 드론 등 무기 개발과 계약을 맡아온 인물입니다. 방사청에 따르면 원 씨는 지난 8월 이사관, 그러니까 국장으로 퇴직한 뒤 인사혁신처에서 취업제한심사를 받았다는군요. 인혁처 홈페이지에 공개된 '퇴직공직자 취업 심사 결과'를 살펴보니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보안원에 취업하려다 승인 거절됐습니다. 그 뒤 캠코의 임원직에 내정이 된 건데, 알고 보니 캠코는 인혁처의 취업제한심사 범위에서 빠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두 곳 모두 방사청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기엔 연관성이 한참 떨어지는 곳인 데다 정부가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연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캠코

김승태 캠코 노조위원장은 "원 씨가 방사청에서 해온 일에 대해 폄훼하고 싶지 않지만 캠코의 업무는 그 분야와 전혀 다른데 아무리 연관 관계를 찾아봐도 우리 쪽과 연관되는 업무가 없다"라며 "일반 직원이 아닌 가계 지원본부의 임원으로 온다는 것 자체가 낙하산 인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캠코 측은 이에 대해 "민간 대기업들도 경영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30~40대 젊고 능력 있는 인사들로 임원진을 대거 교체하고 있다"며 "원 이사를 적임자로 판단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상하네요. 원 씨는 50대인데 말이죠. 게다가 "방사청도 민간 기업과 협력을 한다는 면에서 (그가) 전문성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민간 기업과 협력하지 않는 정부 기관도 있나요? 이 해명도 잘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원 씨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속 시원한 해명을 듣기 위해 방사청에 연락처를 문의했더니, 원 씨가 원하지 않아 연락처를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원 씨가 자력으로 캠코 문을 두드렸을 가능성은 없는지 노조 측에 문의하니 "임원직은 사장이 임명하는 자리인데 현재 사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캠코 이사진 누가 함부로 그 중요한 자리에 업무 연관성도 없는 사람을 임명할 수 있겠느냐"라며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임기 말이 되면 정부가 공공 기관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 태워 내려 보내는 일이 공식이 된 지 오래입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전 정부의 '알박기 인사', '낙하산 인사'를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해온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논란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금융 경력이 전혀 없는 대통령 총무비서관실의 천경득 전 선임행정관이 지난해 9월 연봉 2억 4천만 원인 금융결제원 감사로 임명됐고요, 청와대 출신의 김유임 전 여성가족비서관도 같은 달 LH의 비상임이사로 임명됐습니다. 당시는 LH가 '부동산 사태'로 내홍을 겪으면서 신규 직원 채용 계획도 올스톱 된 때였는데 말이죠.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역시 금융 경력이 아예 없는데도 자금 20조 원을 움직이는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2본부장에 내정됐다가 노조가 극렬히 반발하는 바람에 이사회 개최 직전에 자진 사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공공성이 무너지면 금융기관이 사금고화 되는 것"이라며 "경력과 상관없는 사람들, 줄 서기 한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들어오면 그 조직에 효율성과 생산성이 있겠느냐"라며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외부 인재, 영입할 수 있습니다. 능력과 실력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인물이라면 어느 누가 마다할까요? 하지만 적어도 공공기관만큼은 낙하산을 타고 특정 지점에 뚝 떨어지는 인사 말고, 활주로가 닳도록 비행을 반복한 인사가 착륙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해당 조직도, 그 조직과 연관된 민생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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