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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北 발사체는 그냥 탄도미사일"…정부별 제각각 北 위협 평가

[취재파일] "北 발사체는 그냥 탄도미사일"…정부별 제각각 北 위협 평가
지난 5일 북한이 좀 특이한 발사체를 쏜 이후 우리 군은 극히 말을 아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고도와 비행거리 정도는 공개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철저히 함구했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당 중앙이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는 그제(6일) 북한 보도에 북한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자 군 당국의 입이 돌연 바빠졌습니다. 어제 이례적으로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자처해 여러 가지 말들을 쏟아낸 것입니다.

우리 군 고위 장성과 국방과학 연구기관 관계자가 나서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한 발사체를 싸잡아 평가 절하했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도 아닌 그냥 일반 탄도미사일에 불과하다며 충분히 요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5일 북한 발사체가 극초음속 미사일이라면 국산 지대지 현무-2C는 훨씬 우수한 극초음속 미사일이라며 북한 발표를 전면 부정했습니다.

북한이 잔뜩 겁을 주자, 우리는 별 것 아니라며 위협을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번 정부 4년 반 동안 자주 있었던 일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비슷했습니다. 반면 박근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과대평가한 면이 있습니다. 정부의 성향에 따라 북한의 위협을 달리 보는 것입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진보 정부의 과소평가, 보수 정부의 과대평가 중 어느 쪽이 안보에 유익할까요?
 
왼쪽은 북한이 지난 5일 쏜 발사체의 사진이고, 오른쪽은 작년 9월 발사체의 사진이다. 북한은 둘 다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 정부의 북한 위협 과소평가

2018년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폐기가 이뤄지면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도발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창리 발사장은 미사일을 쏘는 곳이 아닙니다. 위성을 탑재한 로켓을 발사하는 시설입니다. 동창리 없어도 북한은 자유자재로 미사일 도발을 할 수 있음에도 대통령은 도발 위험을 낮게 봤습니다.

2019년 5월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김상균 당시 국정원 제2차장은 "지대지라는 사실만으로 공격용인지 방어용인지 말하기 어렵다"는 궤변을 늘어놨습니다. 지대지 미사일은 100% 공격용인데도 방어용 운운했습니다. 여당의 한 의원은 "도발이라기보다는 타격 훈련"이라며 북한 편드는 말까지 했습니다.
 
북한의 ICBM 화성-15형
 
2019년 11월 1일 청와대 국감에서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지금 저희가 볼 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TEL(이동식 발사 차량)로 발사하기 어렵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북한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TEL로 ICBM을 쐈습니다. 북한이 ICBM을 세울 때 밑에 거치대를 받치는데 북한 TEL이 거치대 일체형이 아니어서 정의용 실장이 그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체형 TEL로 쏘든 별도 거치대로 쏘든 북한 ICBM의 위협은 실존하는데도 안보실장은 북한의 ICBM 실력이 성숙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한 것입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기간 특대형 도발은 자제했지만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참 자주 쐈습니다. 그래도 정부는 정색하고 북한을 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한 발사체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투의 입장을 내놨습니다. 개발이 끝난 뒤 사거리와 낙하속도가 어느 정도까지 도달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요격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실패해서 위협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부도 그런 희망을 품지 말란 법 없습니다. 그렇다 한들 정부가 안보를 희망에 맡겨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주변의 비웃음을 뚫고 ICBM도 만들어냈습니다. 억지로 가리면 북한의 위협이 잘 안 보이기는 하겠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수 정부의 북한 위협 과대평가

지금의 진보 정부는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녹아있는 미래의 위협에 눈 감았습니다. 반대로 박근혜 보수 정부는 미래의 위협을 현재로 끌고 와 키웠습니다. 북한이 동창리에서 위성 탑재 로켓을 발사할 때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다"며 북한의 위협을 극대화했습니다. 동창리에서 발사된 북한의 광명성과 은하는 탄두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위성 태운 우주 과학 로켓입니다.

북한 동창리에서 발사되는 광명성 로켓
 
북한은 광명성과 은하 같은 우주 로켓을 발전시켜 ICBM을 개발할 생각이었을 테지요.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우주 로켓을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우긴 것은 미래의 위협을 현재의 위협으로 무리하게 치환한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네이밍 방식이라면 지난 10월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돼 고도 700km까지 올라간 국산 로켓 누리호도 그 자체로 장거리 미사일, ICBM이 되는 모순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도 2016년 2월 7일 발사된 장거리 로켓 광명성의 위협을 왜곡한 결과로 결정됐습니다. 광명성이 완전한 ICBM인들 북한이 대한민국 공격하는 데 사용할 리 만무합니다. 광명성이 발사됐다고 주한미군에 사드 들일 명분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광명성 발사가 당장의 큰 위협인 것처럼 앞세워 주한미군 사드 배치의 길을 열었습니다.

물론 주한미군의 사드는 북한의 스커드 같은 단거리 미사일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무기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잇따라 시험발사했을 때 사드 배치 카드를 꺼냈더라면 중국 뿐 아니라 국내의 반발도 덜했을 것이란 지적이 많았습니다. 당시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 쐈다고 사드 배치 카드 꺼낸 것은 넌센스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우리도 그 부분이 아쉽다"고 토로했습니다.

그즈음 주요 언론들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KN-08 여단을 창설했다"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때까지 KN-08은 시험발사한 적 없었고, 당연히 실전배치도 안됐습니다. 실전배치돼야 운용 부대가 편성됩니다. 즉 KN-08 여단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KN-08 여단 창설 보도는 위협의 과잉이자 집단 오보였지만 그때의 국방부는 즐기듯 지켜만 봤습니다.
 

올바른 위협 평가는?

이명박,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각각 진보·보수 성향에 맞춰 북한의 위협을 제각각 평가한 사례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보수 정부의 과대평가, 진보 정부의 과소평가는 이제 공식이 됐습니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협을 제대로 평가해야 합리적으로 대비할 수 있습니다. 북한 위협에 대한 과소평가는 우리 군의 방심을 낳고, 이로 인해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 있습니다. 진보 시대의 안보 불안입니다. 과대평가는 남북의 불합리한 군비 경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보수 시대의 안보 불안입니다. 양쪽 모두 안 좋습니다.

과소평가와 과대평가 사이 어디쯤에 북한 위협 평가의 균형점이 있습니다. 상대방 군사력의 실체를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파악된 기존 정보에 위기감을 조금 보탠 수준에서 위협 평가의 균형점은 형성될 것 같습니다. 정부의 성향이 어느 쪽이든 군은 개의치 말고 현명하게 위협 평가의 균형점을 찾아내 적절하게 대비태세 갖추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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