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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논에 볍씨 뿌려 먹이 공급…철새와의 공생이 중요한 이유

[취재파일] 논에 볍씨 뿌려 먹이 공급…철새와의 공생이 중요한 이유
서해 천수만 간척지 논에서 지난 연말 벼를 수확했다. 제철이 두 달가량 지난 벼 베기와 탈곡이다. 때늦은 벼 수확은 철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한 특별한 행사였다. 벼 잎은 누렇게 마르고 시들었지만 이삭에 달린 볍씨는 알이 꽉 차게 여물었다. 농사가 잘됐다고 농민은 말했다. 벼를 베고 탈곡까지 동시에 하는 콤바인 농기계가 논바닥을 달렸다. 이삭에서 떨어져 나온 볍씨가 자루에 담기지 않고 논에 쏟아져 내리고, 볏짚은 콤바인을 따라가며 논바닥에 깔렸다. 벼를 수확한 곳은 휴경지 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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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는 드넓은 간척지 논과 인공호수가 있어 새들에게 좋은 환경을 갖췄다. 국내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중 한 곳이다. 서산시는 휴경지를 이용한 철새 먹이공급 시범사업을 했다. 휴경지 논 10ha에 5천만 원을 투자했다. 1ha당 500만 원을 농민들에게 제공하고 새 먹이용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다. 생산된 쌀은 90여 톤에 이른다. 휴경지는 쌀값 안정을 위한 수급조절을 위해 농사를 지으면 안 되는 논이다. 이렇다 보니 생산된 쌀은 시장으로 유통하면 안 되고 모두 논바닥에 뿌려 새 먹이로 제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냥 놀릴 수밖에 없는 땅에 돈을 주고 벼농사를 짓다 보니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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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이 끝나고 볍씨를 뿌려준 논에는 예상대로 기러기 떼를 비롯해 겨울 철새들이 날아들었다. 먹을게 많다 보니 새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먹이터 중심으로 머물렀다. 철새들의 이동에 가장 민감해하는 사람들은 닭, 오리 등을 키우는 농민들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매개체가 철새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닭에게 치명적이다. 오리는 치사율은 덜하지만 전염력이 높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걸리면 모두 살 처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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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AI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8일 충북 음성 메추리 농장에서 처음 발생한 뒤 7일 기준 확진 농가는 19곳이다. 가금 별로는 오리가 10곳으로 가장 많고, 산란계 6농가, 육계 2농가 등 닭이 8농가다. 지역별로는 충청과 호남에 집중되고 있다. 전남이 9곳으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충북과 충남이 각각 4곳과 3곳이고 세종 2, 전북 1농가 순이다. 닭 81만 5천 마리와 오리 20만 1천 마리가 살 처분 됐다. 확진농가 반경 500미터 안에서는 예방적 살 처분도 이뤄졌다. 닭은 19농가에서 80만 수가 살 처분됐고, 오리 살 처분 수는 1농가 1만 6천 수에 이른다. 또 7일 오전 전북 정읍 종오리 농장에서 의심축이 발생해 조사 중인데 고병원성 확진 판정은 1~3일가량 걸린다.

2003년 이후 20여 년째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다 보니 겨울 철새는 가금 농민들에게 불청객이 됐다. 철새 분변이나 포획된 개체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사례도 15건에 이른다. 농민들은 철새로부터 닭, 오리를 보호하기 위해 농장을 빈틈없이 틀어막고 있다.

소먹이용으로 볏짚을 걷지 않고, 논바닥에 그대로 놔두는 것도 철새 먹이 공급 사업 중 하나다. 탈곡한 볏짚에 남아있는 낟알을 새들이 먹게 하기 위해서다. 천수만 간척지 내 볏짚을 수거하지 않은 논은 2천695ha에 이른다. 농가에 제곱미터 당 27원을 보상하고 논에 볏짚을 남겨둔 거다. 철새들이 밤에 잠을 자도록 논에 물을 대 만든 무논도 68ha에 이른다. 겨울철에 논에 물을 대기 힘들다 보니 보상가는 볏짚존치보다 많은 제곱미터 당 90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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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10일부터 3일간 전국 철새도래지 112곳에서 겨울철새 서식현황을 조사했다. 168종 132만 마리가 관찰됐다. 지난 2020년 123만 마리 보다 7.2% 증가했다. 특히 걱정스러운 건 오리과 조류가 30종으로 전체 77.7%인 102만 마리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오리는 조류인플루엔자 전파 가능성이 높다.

철새도래지 별로는 금강호에 28만 2천 마리가 날아들어 가장 많았다. 전남 영암호와 전북 동진강에 각각 8만 1천 마리와 7만 3천 마리가 도착했다. 또 천수만 간척지 주변인 간월호에 2만 7천 마리, 부남호에서 1만 7천 마리가 관찰됐다.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복지실장은 새들은 먹이를 찾으러 이동하게 되는데 특정 지역에서 먹이가 공급된다면 이동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AI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새들이 건강한 경우에 바이러스 배출량이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며 먹이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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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들이 먹이를 충분히 먹고, 건강해야 가금농장 주변으로 이동하지 않고 AI 전파 위험도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겨울 철새는 10월 초부터 날아와 이듬해 3월 초쯤 대부분 번식지인 중국과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으로 돌아간다. 국내에 머무는 4개월간 먹이가 부족하지 않게 신경 쓰고 챙겨줘야 한다. 철새가 건강해야 닭, 오리도 AI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게 된다. 경제적 피해와 방역비용도 줄일 수 있다. 철새와의 공생은 선순환 효과가 있다. 논바닥에 철새들의 먹이를 남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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