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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법으로 산다는 것…이들이 버티는 이유

뉴스 10초 정리

새벽을 맞이하는 아이들

[취재파일] 불법으로 산다는 것…이들이 버티는 이유

  새벽 6시. 어린이들이 집에서 한창 잠 잘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새벽 6시는 다소 생경합니다. 어둑어둑한 골목.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이 아빠 품에 안겨 있습니다. 두터운 외투를 한 번 더 여며주고 털모자도 꼭꼭 눌러주는 아빠들. 꼭두새벽, 영하 10도의 추위에 이들이 집 밖을 나서 기다리고 있는 건 어린이집 등원 차량입니다.
  이른 시간에 등원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내랑 공장 일을 나가야 해서 아이들을 빨리 보냅니다"라고. 차량이 도착하자 잠이 든 아이들에게 안전벨트를 채웠습니다. 부모 품에서 떨어졌다는 걸 알아차린 듯 아이들은 크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이 아침을 맞는 모습입니다. 이 일대에는 이런 '생계형 미등록 이주민' 가족들이 시선을 피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취재파일] 불법으로 산다는 것…이들이 버티는 이유

태어났더니 부모가 '불법 체류자'…아이들 옥죄는 주홍글씨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해 불법 체류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부모들과 그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는 사실 선택권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건 아이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겁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미등록 부모의 자녀라는 이유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많은 차별을 겪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태어나보니 엄마, 아빠가 불법 체류자인데 자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 아이들이 마주하게 될 현실은 냉혹하기만 합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을 가르치는 기관들의 도움을 받아 이제 열 살 남짓 되는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어떤 고충을 겪는지 그 속내를 어렵사리 들어봤습니다.
 
"친구가 옥상으로 올라가서 저희가 말렸어요. 그러다가 (친구가) 자살 포기했어요."
"1학년 때 너무 왕따를 당했어요. '너 외국애야' 하면서 놀리면서 때려요."



  담담하게 얘기하던 한 아이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만났던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그림에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 그리기도 했습니다. '물고기 가족'을 주제로 그림 그리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아이는 자신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아픈 상처를 떠올리고 누군가에게 드러낸다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다름이 차별로 이어지는 현실. 합법적으로 체류 자격을 부여받은 이주민도 한국에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물며 이들 미등록 이주 아동의 경우 훨씬 더한 고충이 따르고 있다는 겁니다. 어려움을 겪는 우리나라 국민의 사정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일들을 마주하고 끄집어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입니다.
 

그들이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위에 언급한 인터뷰 내용은 수십 분 얘기 중 민감한 부분을 제외한 극히 일부입니다. 이렇게 차별을 당하면서도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있는 이유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의사는 있겠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미등록 이주민 부모들의 속사정도 익명 인터뷰를 전제해 들어봤습니다.
 
[취재파일] 불법으로 산다는 것…이들이 버티는 이유
"(시리아에 있는 가족들) 보고 싶지만 어려워요.
아빠하고 엄마 가족 다 진짜 보고 싶지만 아기들 때문에 못 가요."
"비행기에서 마을로 미사일이 떨어져요"

시리아 국적의 이 여성은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다면서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리아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훌쩍 자란 아이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했고, 한국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에 내전이 그치지 않은 특수한 상황도 이 여성이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시리아에는 아직도 길을 가다 보면 비행기에서 마을로 미사일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또다른 미등록 이주민 가정은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관련) 보안 사항을 한국 당국에 제보해서
인도네시아 돌아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기획 기사를 보도한 뒤 '불법 체류자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라. 감성팔이 하지마라'는 내용의 항의 메일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더 큰 어려움과 또 다른 차별을 겪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직 내전을 치르고 있는 나라도 있고, 자국의 보안 사항을 한국 당국에 제보해서 보복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정의 경우 기댈 곳이 없는 상황입니다.
 

"필요한 일을 하겠다"…호소하는 이주민들

"뭐 정부 입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희들도
불법을 쓰고 싶어서 쓰는 건 아니라는 걸 좀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전문가들은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시각을 '필요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합니다. 어딘가에 꼭 필요한 존재(=노동력)이라는 의미입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 소규모 공장의 경우 미등록 이주민 6명을 고용했는데 이들이 없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을 고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업주에게 물었더니 "(한국인들의 경우) 보통 2~3일 견디기 힘들어 해요. 전혀 일 할 의사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업주의 경우 "불법인 줄 알지만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한국말을 배우며 일하고 있는 한 몽골 국적 여성의 인터뷰 내용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외국 사람들 한국에서 와서 힘든 일 하고 있어요. 호텔 청소, 화장실 청소, 공장일, 이삿짐 센터. 한국 사람들 안 하고 있는 일 하고 있어요." 

(취재 : 김아영, 배준우, PD : 김도균,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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