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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매가 뭐길래…커진 미술시장의 명암

[취재파일] 경매가 뭐길래…커진 미술시장의 명암

이주상 기자

작성 2022.01.05 11:0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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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상 취파용

한국화랑협회가 갑자기 미술품 경매를 개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한국화랑협회는 국내 160여 개 갤러리들의 이익단체로, 봄에 '화랑미술제' 가을에 'KIAF' 두 차례의 아트페어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직접 '경매'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기존 경매업체들의 과열된 운영으로 시장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설명입니다.

미술 시장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고 처음 판매를 하는 1차시장과, 이후 손 바뀜이 일어나는 2차시장이죠. 1차시장은 대부분 갤러리, 즉 상업 화랑을 통해 이뤄집니다(물론 드물지만 작가가 직접 판매하기도 합니다). 2차시장의 경우 일부 갤러리와 딜러들도 참여하지만 경매 회사들이 주축입니다.

전 세계 미술품 경매는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데, 국내 역시 1998년 설립된 서울옥션과 2005년 설립된 케이옥션이 전체 경매 시장의 9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미술품의 1차시장을 이끌고 있는 한국화랑협회가 2차시장의 주축인 경매업체들에 도전장을 낸 셈입니다. 경매업체들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한국화랑협회 주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최근 미술시장의 활기를 틈타 경매 회사들이 경매를 '너무 자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2021년 국내 오프라인 경매만 각각 10번 넘게 열었습니다. 또 하나는 경매업체들이 작가들의 신작을 직접 경매에 올리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갤러리들 입장에서 양보할 수 없는 1차시장의 영역을 경매업체들이 침범했다는 것이죠.

한국화랑협회의 이런 주장에는 나름 근거가 있습니다. 2007년 한국화랑협회와 경매업체들이 협약을 맺었습니다. 1차시장과 2차시장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서로의 시장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핵심은 경매 회사들의 오프라인 경매를 1년에 4회로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작가들의 신작과 경매업체들이 직접 매입한 국내 작가의 작품은 경매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태는 협약이지만, 갤러리들의 1차시장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경매업체들의 각서나 다름없긴 했습니다.

한국화랑협회의 경매 개최 선언에 대해 서울옥션이나 케이옥션 모두 현재로선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의 '신사협정'에 대해서도 '시장의 환경이 바뀌었다'고 비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시장 환경뿐 아니라 경매업체들의 위상이 바뀐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2006년과 2007년은 우리 미술시장에서 2021년 못지 않은 엄청난 호황기로 불립니다. 그때만 해도 신생이었던 경매업체들이 급성장했던 시기였죠. 규모가 커진 미술시장의 과실을 경매업체들이 상당 부분 가져가자 갤러리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서울옥션의 대주주인 가나 아트와 케이옥션의 대주주인 갤러리현대도 한국화랑협회 소속인 만큼 동료 갤러리들의 불만을 모른 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주상 취파용

그렇지만 서울옥션은 2008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했고 케이옥션은 올 연말 상장을 앞두는 등 모체 갤러리와 경영상 분리가 이뤄지면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경매 규모도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서 가나 아트나 갤러리현대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겠죠.

역대급 호황이라는 지난해 미술시장에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사상최대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국내의 이우환, 박서보 등 단색화와 해외의 쿠사마 야요이,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전통적인 블루칩 말고도, 우국원, 김선우, 문형태 같은 신진작가들이 스타로 떠오르며 경매 신고가를 써 나갔던 것입니다.

이주상 취재파일 표

과거에는 작가와 갤러리가 협의하는 1호당 가격이 작품 가격의 기준이었지만, 요즘은 경매 낙찰 금액 기준으로 호당 가격이 매겨지는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갤러리들의 "2007년 신사협정 복구"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화랑협회의 독자적인 경매 개최는 그런 절박함에서 비롯됐습니다. 경매 회사들이 '무분별하게' 규모를 키우며 1차시장까지 침범한다면, 자신들도 2차시장에 참여하겠다는 것이죠. 시장 논리에 따라 미술품 거래를 중개할 뿐이라는 경매 회사들의 입장이나, 커지는 미술 시장에서 뒤쳐지지 않겠다는 갤리러들의 입장 모두 이해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주상 취파용

그런데 이런 논란 과정에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미술을 '투자'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난해 미술품 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경매 금액만 3,294억원이었다고 하는데 전체의 70% 가까이가 1위 이우환(395억원)과 2위 쿠사마 야요이(365억원)를 비롯한 30명 작가들의 몫이었습니다. 경매 거래가 투자, 즉 차익을 위한 재판매를 전제로 하다 보니, 팔리는 작가들만 계속 더 팔리게 되면서 미술품 생산의 측면에서 작가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술시장의 활황에 대해 2007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07년 정점을 찍고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거품이 꺼지자, 폭락을 경험했던 컬렉터들은 시장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구름 위에 탄 것 같았던 일부 작가들의 경우 지금은 작업을 계속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술 시장에 자본이 유입되고 신규 콜렉터들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미술품 생산의 측면에서도 저변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새로운 작가의 발굴과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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