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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생 방사하겠다더니…울타리에 가둔 반달곰

[취재파일] 야생 방사하겠다더니…울타리에 가둔 반달곰
러시아에서 온 반달가슴곰 4마리를 만난 건 지난해 6월 중순이다. 지리산 숲속 훈련장에 있는 1년생 새끼 곰들인데 가슴에 반달 문양이 또렷했다. 지난 2020년 12월 초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지리산에 풀어놓기 위해 머나먼 타국 낯선 곳으로 데려온 거다. 수컷 3마리와 암컷 1마리다.

숲속 훈련장은 5천800여㎡다. 반달곰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쇠 울타리가 어른 키보다 훨씬 높게 둘러쳐져 있다.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먹이를 줄 때도 반달곰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곰들은 사람과 전깃줄 기피 훈련도 받는다. 이곳에 올 때 반달곰의 몸무게는 20kg 정도였는데, 6개월 만에 살이 올라 통통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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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 새잎이 돋는 봄날 울타리 넘어 숲으로 갈 줄 알았는데, 반달곰들에게는 먹이가 풍부한 가을이 되도록 야생으로 갈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반달곰들의 희망은 사라졌다. 지난해 11월 중순 반달곰은 숲속 훈련장을 떠나 생태 교육과 번식용 사육곰이 머무는 곳으로 옮겨졌다. 환경부가 야생 방사를 포기하고, 번식용 사육곰으로 키우기로 결정한 뒤다.
 
숲속에서 간섭받지 않고 살아야 할 반달곰의 운명이 울타리에 갇혀 사람의 손에 길들여지는 신세가 된 거다. 이 반달곰 4마리는 러시아 야생 숲에서 태어난 개체다. 사냥꾼에게 어미 곰을 빼앗기고 낙오된 새끼들로 러시아 환경 관련 단체에서 보호하다 우리나라로 보내진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2004년 지리산에서 반달곰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2007년까지 러시아, 중국 등에서 온 반달곰을 야생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겨울잠에 든 어미 곰의 출산이 이어지면서 봄이면 새끼 곰의 울음소리가 지리산을 깨웠다. 지리산 숲속 반달곰 식구들도 서서히 불어났다. 복원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유전적 다양성 문제가 제기됐다. 지속 가능한 반달곰의 생존과 증식을 위해선 다양한 개체의 유전 형질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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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환경부는 러시아와 협약을 맺고 지난 2016년부터 20년까지 5년간 반달곰을 들여와 지리산에 추가로 풀어놓기로 했다. 러시아에 지급한 비용은 곰 1마리당 1천600여만 원이다. 연구와 관련된 협력 비용 명목이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들여온 반달곰은 11마리다. 이 가운데 3마리는 번식용으로 활용됐고, 나머지 8마리는 지리산에 풀어놓았다. 4마리는 잘 적응해 살고 있고, 4마리는 폐사했다.

환경부가 지난 2020년 들여온 러시아 반달곰 4마리의 방사를 포기하면서 든 이유는 지리산의 반달곰 개체수가 74마리로 이미 적정한 서식 밀도를 넘어섰다는 거다. 하지만 적정 개체수를 78마리까지로 보는 국립공원공단 연구 결과도 있다. 초창기 반달곰 복원사업에 관여했던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일본 등 다른 나라 곰 서식지와 비교해볼 때 지리산은 지금보다 더 많은 반달곰들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 소장은 일본 홋카이도국립공원에 있는 곰 서식지는 지리산 면적에 비해 3분의 2밖에 안 되지만 불곰 350여 마리가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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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 밀도 문제보다 근본적인 것은 반달곰들의 유전적 다양성이라고 강조했다. 지리산에서는 현재 4세대 곰까지 태어나 살고 있다. 지난 2004년 방사곰의 손자 곰이 또 새끼를 낳아 함께 서식하고 있는 거다. 근친교배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상훈 소장은 근친교배를 했을 때 신체적 장애나 생식 능력의 저하 등 종의 생존에 문제가 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는 게 과학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반달곰 복원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반달곰 추가 방사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2016년부터 방사 목적으로 5년간 들여오기로 해놓고, 돌연 계획을 바꿔 사육곰으로 방향을 튼 환경부의 갈팡질팡 행정을 무책임하고 일관성 없다고 꼬집었다. 방사하지 않을 거면 아예 들여오지 말고 반달곰이 러시아 숲속에서 살아가도록 둬야 했다는 주장이다. 또 복원사업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지리산 서식 밀도가 포화상태에 이르도록 놔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당초 반달곰 복원사업의 목표가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으로 확대하는 거였는데, 지금까지 지리산 외에 반달곰 방사를 통한 서식지 확대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야생동물이 살아갈 곳은 울타리 안 사육장이 아니라 사람 손을 타지 않는 야생이다. 그들의 권리를 빼앗을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불가피하게 간섭을 해야 한다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반달곰이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선 가두지 말고 풀어놓아야 한다. 탐방객과 주민의 안전, 곰 서식지 보호는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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