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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것도 못 해?" 꼬드겨 개통한 폰, 착취 시작이었다

경제적 착취당하는 지적장애인들

<앵커>

새해를 앞두고 우리 사회 관심이 더 필요한 지적장애인 관련 문제를 이틀에 걸쳐서 짚어보려고 합니다. 지적장애인을 교묘하게 속여서 돈을 갈취하는 범죄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신고하거나 피해를 스스로 입증하기가 힘들어 손해를 그대로 떠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그 실태와 대책을 소환욱, 하정연 기자가 차례로 보도해드립니다.

<소환욱 기자>

지적장애 2급인 정 모 씨가 지인 손에 이끌려 휴대전화 대리점을 찾은 건 지난 2017년,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말만 믿고 휴대전화를 개통했는데,

[정 씨/피해자 : 나는 안 하려고 그러는데 걔가 '형 바보야? 이것도 못 해?' 하면서, '해봐 쉬워' 하면서 '일단 연기만 잘하면 돼…'.]

지인은 바로 휴대전화를 팔아치운 뒤 돈과 유심칩을 가로챘습니다.

[정 씨/피해자 : '그 아저씨들한테 넘겨주고 돈 받으면 돼, 그리고 끝이야', 나 몰래 잠깐 아저씨랑 잠깐 얘기한다 그러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지만 상황을 정확히 몰라 주변에 피해 사실조차 알리지 못했습니다.

나날이 불어난 통신비를 뒤늦게 알게 된 어머니가 나섰지만,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 : 자기네(휴대전화 판매점은) 이랬든 저랬든 팔아먹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걸 저보고 휴대전화를 찾아오라는 거예요. 근데 어디 가서 찾아와요.]

경찰서에도 찾아갔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 : 경찰서에 가서 얘기를 했는데, 경찰서에서도 별 반응이 없었어. 혼자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는지 너무 난감하더라고. 내가 막 진짜 이리 쫓아다니고 저리 쫓아다니고 진짜 막 법원 앞에도 또 가보고.]

결국 지자체에서 연결해준 변호사를 만나 민사 소송에서 승소하고 돈을 돌려받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법원은 정 씨의 지적능력이 5, 6세 수준이라 체결한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정 씨처럼 계약을 무효화하고 채무 변제까지 받는 것은 지적장애인 대상 범죄에서 드문 일입니다.

[방대욱/변호사 : (지적장애인 피해자를) 기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특히 발달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이런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영상취재 : 양현철, 영상편집 : 이소영, VJ : 김종갑)

지적 장애 착취

<하정연 기자>

최근 3년간 장애인 학대사건 판례 중에서 대표적인 유형을 뽑아봤습니다.

먼저 지적장애인 일가족을 상대로 한 이웃 부부의 범행인데, "형이 구속되지 않으려면 통장과 휴대전화를 법원에 맡겨야 한다"거나 "건물을 사주겠다며" 꼬드겨 7억 가까운 재산을 가로챘습니다.

평소 지적장애인을 챙겨주던 지인이 "보험금은 죽으면 나오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속여서 질병에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을 해지하게 하고 자기 통장으로 2천100만 원을 받아 쓴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장애인 학대 건수는 총 702건인데, 학대 유형 중에 경제적 착취가 25.4%로 가장 많았습니다.

문제는 지적장애인이 피해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렵다 보니 신고 단계부터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적장애 피해자들이 1차로 찾아가는 파출소, 지구대, 그리고 동사무소 등에서 대응 매뉴얼부터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김성연/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 상담기관을 만나지 못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가장 가까운 지구대, 주민센터 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대응하실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발생하는 피해의 규모에 비해 체계가 만들어지는 속도는 굉장히 늦다고 생각이 돼요.]

단순 사기 피해가 아닌 장애 취약성을 악용한 학대행위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적장애인 경제적 착취 범죄의 경우 대부분 소액 사기사건으로 취급되다 보니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친 경우가 60%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양형 기준 강화 같은 제도적 개선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영상취재 : 양현철, 영상편집 : 이홍명, CG : 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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