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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리는 해바라기센터 "열나니 다시 오라"

[Pick] 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리는 해바라기센터 "열나니 다시 오라"
코로나19 확산 이후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의 즉각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올해 운영 10주년에 접어든 해바라기 센터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와 가족에게 365일 24시간 상담, 의료, 법률, 수사지원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곳입니다.

현재 전국 총 39개소(위기지원형 15개소, 아동형 7개소, 통합형 17개소)의 해바라기 센터는 여성가족부와 지자체, 경찰청이 협업해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해당 기관에서 방역수칙을 이유로 즉각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이달 15일 미성년자 A (18) 양은 성폭행 피해 신고를 위해 서울의 한 해바라기센터를 찾았다가 입구에서 체온이 37.5도로 측정됐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했습니다.

피해 직후 심신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A 양은 "귀에 염증이 있어 체온이 높게 나왔을 수 있으니 한 번만 더 (온도를 재게) 해달라"라고 부탁했으나, 센터 직원은 "증거 채취가 어려울 수 있으니 씻지 말고 있다가 다시 오라"고 답변했습니다.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 몸에 남은 직접적 증거를 빠른 시간 내에 확보하는 게 피해 입증의 핵심 절차인데, 측정 체온이 정상 범주를 넘는다는 이유로 센터가 피해자를 돌려보낸 것입니다.

A 양뿐만 아니라 지난해 4월에도 성폭행 피해자 B 씨가 서울권의 또 다른 해바라기센터를 찾았다가 코로나19와 무관한 고열 증세를 순간적으로 보여 센터 출입이 거절되기도 했습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 세상 변호사는 "동행한 경찰관의 항의에도 센터 출입을 할 수 없었고, 피해자는 다음날 저녁까지 불안에 시달린 끝에 증거 채취를 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습니다.

해당 센터의 수동적인 대응에 피해 신고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울 지역 해바라기센터의 한 관계자는 "고열 때문에 증거 채취를 미뤘는데, 피해자가 사건화를 포기했다"며 "다시 전화해서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조은희 한국성폭력 상담소 부설 피해자 보호시설 열림터 원장은 "피해자가 사건 후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들이 해바라기센터나 응급실 관계자, 혹은 경찰"이라며 "이들의 대응에 따라 피해자의 사건화 의지가 갈리는데, 증거 채취나 출입을 단박에 거절당하는 경험은 피해자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체온이 37.5도를 넘으면 코로나 진단검사를 권고하는 정부 방역지침만 내세운 채, 피해자 지원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센터와 경찰 측은 증거 채취 골든타임인 '72시간'만 지켜진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여러 사정으로 72시간이 넘어갈 것 같다면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증거를 채취할 수 있지만, 센터가 긴박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채취를 미룰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승덕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는 "72시간은 불가피하게 정한 데드라인일 뿐 숫자에 속아선 안 된다"라며 "손에 묻은 피부조직 등은 빨리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 최대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2년째 지속되고 있는데도, 올해 하반기 각 센터에 배포된 '코로나 대응 관련 안내' 지침에는 내담자에게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으면 증거 채취를 미룰 수 있게끔 규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피해자 지원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 병원에서 즉시 격리 가능한 병동을 파악할 수 있게끔 매뉴얼을 보충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뉴스 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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