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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매번 '전격적'인 특별사면, '정치'인가요?

[사실은] 매번 '전격적'인 특별사면, '정치'인가요?
세밑 정국이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과 한명숙 전 총리 복권 논란으로 뜨겁습니다. 보복의 정치를 끝내기 위한 마중물이라는 주장의 맞은 편에는,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정치적 사면'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사실 특별사면 논란에는 늘 '정치적'이라는 수식어가 줄기차게 따라 붙습니다. 통치권자 의지에 따라 행사될 수 있는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헌법에 보장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특별사면이 지금껏 어떻게 이뤄졌기에 '정치적'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걸까요.

오늘 팩트체크 사실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과 관련해, '특별사면의 정치학'을 꼼꼼히 짚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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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이후 특별사면 전수분석


사실은팀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시행된 특별사면을 전수분석했습니다. 모두 87번, 24만 4,906명이 특별사면 됐습니다.

먼저, 각 정부 별로 특별 사면 규모를 파악했습니다. 집권 기간이 길면 그만큼 특별사면 숫자도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1년 평균 얼마나 많이 사면했는지를 기준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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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가 압도적입니다. 특별사면 규모가 한 해 평균 1만 4천 명이 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특별사면은 6번이 있었는데, 취임 첫해인 1998년에는 3만 6천 명을 넘었습니다. IMF 위기 때라 '대국민 화합' 목적이 컸습니다. 

시기 별로 분석했습니다. 시계열로 죽 늘어놓으면 그래프가 너무 길어져서 민주화 이전과 민주화 이후로 구분했습니다. 대대적 특별사면이 이뤄졌던 때는 보충 설명을 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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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민주화 이전에는 44번의 특별사면이 단행됐습니다. 사면 규모가 컸을 때를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이승만 정부 때는 초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재선으로 넘어가기 직전 3천600명이 넘는 특별사면을 단행했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 직후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오르기 직전 사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체제 당시 특별사면 규모가 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4·19 혁명 이후 국민 통합이 필요한 측면도 있었지만, 쿠데타 이후 통치권자의 취약한 정통성과도 맞물려 있는 걸로 읽힙니다. 5·16 직후에는 '광복절 특사'로 4천51명이, 5·16 1주년에는 '5·16 기념' 명목으로 1만 3천158명이 특별사면 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범준 국방부 방산차관보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대대적 사면은 1972년이 눈에 띕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8대 대통령 취임' 기념 특별사면인데, 정확히는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법적으로 보장했던 '유신 헌법' 제정 직후 이뤄졌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당시에도 이른바 '체육관 선거' 직후 대통령 취임 기념 특사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민주화 이후 특별 사면 현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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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에는 총 43번의 특별사면이 있었습니다.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들이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는 불거지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이후 그래프에서는 취임 1년 전과 1년 후를 하늘색으로 표시했는데, 이 기간에 특별사면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보통 대통령 취임 직후 이뤄진 경우가 많았고, 더러 임기 말에 단행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특별사면은 임기 말에 단행된 특별 사면에 속합니다.

저희 사실은팀은 민주화 이전이든 이후든, 결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사면이 통치권자들의 '정치적 입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통치권자의 정치적 정통성이 취약할 때, 혹은, 임기 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때, 또 혹은, 임기 말 국정 장악력이 약해져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 '특별사면' 카드가 자주 활용된 것으로 읽힙니다.
 

특별사면은 왜 늘 '전격적'일까요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발표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특별사면은 늘 '정치적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사실 집권자들도 이런 정치적 의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표현을 씁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도 어제(24일) 특별사면 관련 브리핑에서 "소통과 화합의 계기", "과거 불행한 역사를 딛고 온 국민이 대화합", "미래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이라고 명분을 밝혔습니다. 

물론 특별사면은 태생부터가 정치적이긴 합니다.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의 동의도 필요 없고, 대통령의 권한에 따라 사실상 자의적으로 행해질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상위법인 '헌법'에 보장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미국도, 일본도, 유럽 상당수 국가도, 최고 지도자의 특별사면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특별사면의 정치성을 존중한다 할지라도, 특별사면이 굳이 '전격 발표'의 형태를 띨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올 초 여당 대표였던 이낙연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사면 얘기를 꺼냈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민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며 선을 그어 왔습니다. 

말 바꾸기를 비판하려는 건 아닙니다. 이런 과정들이 공동체의 사면 논의 자체를 봉쇄했기 때문입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올해 1월 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국립현충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통치권자의 특별사면권을 인정하는 선진국의 경우 '정치적 의심'을 보완하기 위한 나름의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은 유죄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면 사면 절차가 시작됩니다.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특별사면 대상자 선정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사면권 행사를 위해 주(州) 대법원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고, 독일은 사면 절차에 당사자의 사건을 담당한 법원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절차적 요건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별사면권을 행사할 때 국회에 보고하는 절차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 절차들은 '전격 발표' 이전에 행사됩니다. 이를 통해 특별사면 절차가 경과되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게 만드며, 또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토론이 수반되기도 합니다. 자연히 공론장에서 '특별사면이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즉, 특별사면의 정치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그 정치성을 합리적으로 발현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특별사면이 통치권자의 권한이라고 해도, 공동체 구성원들의 고민을 건너띌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전격 발표'와 '논란'의 쳇바퀴는 결국 공동체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기도 하니까요.

SBS 사실은팀은 단순히 사실과 거짓 판정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다양한 층위를 풀어내는 팩트체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SBS 사실은 치시면 팩트체크 검증 의뢰하실 수 있습니다. 요청해주시면 힘닿는 데까지 팩트체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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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 권민선 · 송해연, CG : 조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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