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난중일기는 되고, 검은 안 되고"…국보 기준 뭐길래?

<앵커>

오늘(22일)은 423년 전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날입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실제 사용했다는 장검이 지금까지 남아있는데도 국보로 지정돼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 임상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문화재청 허가를 얻어 어렵게 들어간 현충사 수장고.

봉인함을 열자 충무공의 장검이 위용을 드러냅니다.

[이석재/경인미술관장 : 장식에 들어 있는 입사라든지, 그리고 칼집 손잡이에 어피를 사용한 방법, 옻칠을 하는 방법, 굉장히 조화롭게 어우러진 기물이고, 공예적으로도 우수한 예술성을 지닌 기물입니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4년 왜에 끌려갔다 도망쳐 온 도공들이 충무공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임원빈/전 해군사관학교 교수 : 그야말로 단 한 척도, 단 한 놈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응징하겠다. 요즘 말로 얘기하면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내야 된다.]

난중일기나 정조 때 펴낸 이충무공전서에는 장검의 존재는 물론 검명 같은 특징들이 상세히 언급돼 있습니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 문중은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이 장검만은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300점이 훨씬 넘는 국보 리스트에는 빠져있습니다.

난중일기를 비롯한 문헌들은 일찌감치 국보로 지정된 반면, 이 검은 보물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

가설 1. 무기에 대한 편견?

[이석재/경인미술관장 : 살상 무기라고 하는, 그런 부분에 거부감이 있긴 하죠. 무구류라던가 그런 부분에 대한 연구자도 많지 않고.]

가설 2. 무를 경시하는 문화 반영?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무를 숭상할 줄 모르고, 무를 천시해왔던 그런 문화의 반영 아닌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러는 사이 일본도 모방이라는 논란도 있었고 붉은 도료를 칠했다가 벗겨 내는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덕수 이씨 문중은 장검의 가치를 재 평가받겠다며 최근 국보 승격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영상취재 : 이승환, 영상편집 : 이기은, CG : 홍성용·성재은·안지현·전해리·조현서, VJ : 정한욱·김초아, 글·구성 : 김유미)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