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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경찰이 어려워했던 업무는…북한 경찰은 어떨까?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 있는가

동독 경찰이 어려워했던 업무는…북한 경찰은 어떨까?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남북 간 통합과정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 통합은 어떤 분야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앞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 모병제로 군 감축?…통일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것) 이번에는 경찰 통합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경찰 또한 군대처럼 물리력을 가진 집단인 만큼 통합 작업에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통합 과정에서 분란이 발생할 경우 물리적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찰 조직의 통합은 군대와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군대의 경우 남한군 중심의 재편이 이뤄지더라도 남한군이 북한군의 임무를 적절히 인수하기만 하면 국방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지장이 없지만, 일반 주민들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의 경우 외부에서 온 경찰이 현지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치안 업무를 담당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지역을 잘 아는 치안 담당자가 있어야만 주민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만큼 북한 경찰(사회안전원)들의 재임용은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독일의 경찰 통합 사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정식 취파용 / 독일 국기, 독일 깃발

독일의 경찰 통합


동·서독의 경찰 통합은 동독 지역에 서독의 경찰 체제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서독은 연방제 국가로 경찰권이 각 주의 권한이었던 반면 동독은 중앙집권국가로 경찰권이 국가의 직접 관할 하에 있었는데, 통일과 함께 동독의 경찰권은 서독처럼 통일독일에 새로 신설된 구동독 지역의 주들로 이양되었습니다.

동서독 경찰의 통합 작업은 통일 시점 이전부터 추진되었습니다.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됐지만 동서독 경찰 간 접촉은 1989년 11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 11월 11일 서베를린 경찰청장과 동독 중부지역 국경수비대 부사령관이 접촉한 것을 시작으로, 양독 경찰 간 전화통신이 연결되고 동서독 양 베를린 경찰 고위급 회의가 열리는 등 동서독 경찰은 협의의 수준을 높여갔습니다.

1990년 5월 5일 베를린에서 열린 동서독 내무장관 연석회의에서는 양독 경찰 조직의 통합, 경찰관의 상호교육, 공동교육 실시 등이 합의됐습니다. 6월 29일에는 서독 주와 동독 주 사이에 자매결연방식의 지원체계가 합의돼, 서독 주들이 동독의 자매결연 주에게 경찰을 파견하고 각종 물적 장비를 지원하며 동독 경찰에 대한 교육, 연수 등을 실행하도록 했습니다.

7월 2일부터는 서베를린 경찰교육센터에서 동베를린 중간간부급 경찰간부들을 상대로 직무수행과 관련한 기본교육이 실시됐습니다. 가택침입이나 약물중독처럼 동베를린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범죄들에 대한 교육이었습니다. 10월 3일 통일 이전부터 경찰 조직 통합을 위한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됐던 것입니다.

서독 주의 동독 주에 대한 자매결연 방식 지원은 인적 분야뿐 아니라 물적 분야 등 광범위하게 이뤄졌습니다. 서독 주는 동독의 자매결연 주로 1991년 초부터 50∽100명의 경찰관을 3개월에서 1년 이상씩 파견했는데, 이들 파견 경찰관은 각급 경찰서의 지휘부와 핵심부서에 배치됐습니다. 순찰차량, 모터사이클, 무전기, 사무실 집기, 방패, 방탄조끼 등도 서독 주에서 동독의 자매결연 주로 지원됐는데, 물적 지원에 소요되는 비용은 서독의 자매결연 주가 전적으로 부담했습니다.
 

고위직은 대부분 교체, 일반 경찰관은 대체로 재임용


서독 경찰의 동독 지역 파견과 함께 동독 경찰의 주요 요직은 대부분 서독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고위직은 물론 각 경찰서의 과장급 이상은 전원 교체됐습니다. 경정급 이상이나 50세 이상의 경찰 간부들은 대부분 해고되거나 퇴직했습니다. 고위직 가운데 일부 재임용된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계급이 1∽2 단계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동독 경찰 고위직들은 대거 교체됐지만 일반 경찰관들은 대체로 재임용되었습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의 경우 현지사정을 잘 알아야 하고 외부 인사들이 치안 유지에 갑자기 투입될 경우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측면, 서독 경찰만으로는 동독 지역 치안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측면들이 고려된 결과였습니다. 동독 경찰 67,356명 가운데 54,944명이 통일독일의 경찰로 재임용돼 재임용률이 85.6%에 달했습니다.

구조 조정된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동독 경찰들을 민주사회에 맞는 경찰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동독 경찰들은 민주시민사회라는 개념에 익숙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율적인 업무수행에서도 미비한 점이 많았습니다.

서독 경찰은 경미한 사안의 경우 현장에서 재량권을 행사해 업무를 수행하는데 익숙한 반면, 동독 경찰들은 술집에서의 싸움이나 교통사고 같은 경미한 사안들도 현장에서 독자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일일이 상황실에 보고하고 지침을 받는데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또 동독 경찰들은 집회나 시위, 집단 난투극, 경제범죄 같은 구동독 시절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사안들에 대해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동독 경찰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이 대대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서독 경찰들이 3년에 걸쳐 받는 교육을 1년 속성 교육으로 받도록 했고, 교육기간 동안 3번의 중간시험과 1번의 졸업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중간시험에서는 15% 정도 졸업시험에서는 10% 정도 탈락했는데 탈락자들에게 1번의 재시험 기회가 부여됐지만 끝내 탈락하는 경우 청사 경비나 기능직으로 업무를 전환하도록 했습니다.

동독 경찰의 상당수가 치안 유지를 위해 재임용됐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독일의 경찰 재편기에 범죄 발생이 증가한 것은 주목해 볼 일입니다. 통일 직후의 통계자료를 보면 독일 전체에서 1991년 10만 명 당 범죄 발생 건수가 6,649건이었던 것이 1992년에는 7,938건으로 증가했고 1993년에는 8,337건으로 늘어났습니다. 반면 범죄 해결률(검거율)은 1990년 47%였던 것이 1993년에는 43.8%로 떨어졌습니다. 통합과정이 진행되는 과도기에 사회 혼란기를 틈타 범죄는 늘어나고 검거율은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는 것으로 과도기 치안 유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안정식 취재파일용-북한 경찰

남북 경찰 통합


남북 경찰 통합에서도 중요한 과제는 통합 과정에서 치안 공백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한 경찰이 일시에 북한 경찰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 경찰, 즉 사회안전원의 재임용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구체제에서 인권탄압 등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들이 그대로 재임용된다면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통일사회에 대해 갖는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사회안전원 상당수는 재임용해서 민주사회의 경찰로 재교육하되 문제 있는 인사들은 걸러 내는 이중의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경찰기구인 사회안전성에는 특별시, 직할시, 도에 12개의 사회안전국과 시, 군, 구역에 200여 개의 사회안전부, 동, 리에 4,000여 개의 분주소가 설치돼 있으며, 사회안전원은 약 2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주민등록업무나 건설·자재 관리, 철도관리, 산업감찰 등 순수 경찰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인원을 제외하면, 약 8만 명 정도가 순수 경찰업무에 종사 중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통일 시 북한 지역에서 필요한 경찰 수요도 이와 비슷하게 7만여 명에서 10만여 명으로 추산하는데 근거는 이렇습니다. 남한 경찰관은 2020년 기준 12만 6,227명으로 경찰관 1인당 담당인구는 411명입니다. 통일 시 북한 지역은 과도기적 혼란으로 인해 치안수요가 높아질 것인 만큼 경찰력에 대한 수요도 평시 남한에 비해 높아질 것입니다. 경찰관 1인당 담당인구를 남한의 2배 수준인 250명으로 계산하면 2020년 북한 인구 2,537만 명(한국은행 통계)을 기준으로 할 때 10만 1천여 명의 경찰이 필요하고, 경찰관 1인당 담당인구를 350명으로 계산하면 7만 2천여 명의 경찰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12만여 명 수준의 남한 경찰이 7∽10만 명 규모의 북한 지역 경찰 수요를 담당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북한 사회안전원 가운데 상당수를 재임용해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북한 지역 경찰 수요를 남한 경찰로는 대체할 수 없기도 하고,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경찰들을 통해 통일 과도기에 치안 공백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다만, 북한 경찰 상당수를 재임용하더라도 지휘권만큼은 남한 경찰이 확실히 인수해 북한 경찰 조직을 민주사회의 경찰로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퇴직 경찰관 활용방안 고려해봐야


북한 경찰의 지휘권을 남한이 인수하기 위해서는 남한 경찰이 북한 지역에 파견돼야 하는데 파견에 필요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군대의 경우 어차피 집을 떠나 생활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국가의 명령에 따라 파견이 가능하지만, 경찰은 직업인인 만큼 장기간 파견을 인사배치 명령으로만 강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북한 지역은 생활여건이 남한에 비해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주거 여건이나 자녀교육 등을 생각하면 가족과 함께 이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퇴직 경찰관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합니다. 나이 든 퇴직자들의 경우 재취업의 기회가 생기는 데다 집을 떠나 파견업무를 수행하는데 대한 거부감이 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지역 일선 경찰 지휘권 인수 과정에 나이 든 퇴직자들을 활용하게 된다면, 연장자를 대우하는 전통이 남아있는 북한 사회에서 지휘권 인수 작업도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장기 파견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더라도 남북 경찰 간 3∽4개월 단위의 상호 순환근무는 인사명령을 통해서도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환근무는 상대측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북한 경찰들이 민주사회의 경찰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북한 경찰들에 대한 재임용 심사 과정에서 인권탄압이나 반인륜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은 배제해야 합니다. 이는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군대의 경우 병역 의무를 위해 차출된 인원들로 구성된 조직이고 일상생활과 격리된 집단인 만큼 인권탄압이나 반인륜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일상생활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집단인 만큼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각종 부정행위와 인권탄압 등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독재체제에서는 체제를 보위한다는 목적으로 고문이나 기타 반인륜 범죄가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런 범죄적 행위에 연루된 사람들은 통합과정에서 배제되어야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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