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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책을 내고 싶다면

[인-잇] 책을 내고 싶다면
"책을 내고 싶은 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독서 관련 강연을 할 때 가끔 받는 질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좀 있다면 책 내기는 쉽다. 이른바 자비 출판, 그러니까 책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면 책을 만들어주는 곳들이 많다. 교정교열도 어느 정도 해주긴 하지만, 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질문 한 사람이 자비 출판 방법을 물어봤을 리는 없다.

책을 쓰고 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학원 비슷한 곳들도 있는 모양이다. 출판사 편집자들에 따르면, 그런 곳에서 배운 사람들이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오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한다. 원고를 읽어보기 시작하자마자 짐작이 간다고 한다.

먼저 확실히 해둘 것이 있다. 책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편집자와 출판사의 일이다. 작가는 글을 쓸 수 있을 뿐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감독과 제작자다. 배우는 연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게 낫다. "편집자의 마음에 들어서 책으로 나올 수 있는 원고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영화에 견주면 감독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연기력이 좋아야 한다. 평소 꾸준히 연기력을 갈고 닦는 수밖에 없다.

첫째, 주제를 가져야 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꾸준히 탐구할 수 있는 주제여도 좋다. 이미 익숙하며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주제여도 좋다. 사소해 보이는 것, 심지어 하찮아 보이는 것이어도 좋다. 자신이 일해 온 분야와 상관있어도 좋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다룬 주제여도 상관없다. 얼마든지 새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주제는 등대와 비슷하다. 등대 불빛을 가까이 또는 멀리 비추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무리 주제를 궁리해보아도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주제는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한다고 떠오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책과 경험과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 분야의 책이나 다른 자료를 찾아 읽는다. 온라인 자료여도 좋다. 자신이 경험하는 것들을 예사로 넘기지 않고 되새겨 본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교류한다. 여기에 더하여,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써본다. 주제는 그렇게 하는 가운데, 나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둘째, 양을 쌓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양은 주제에 관한 자료, 주제에 관해 내가 쓴 글, 주제에 관해 궁리한 시간 등을 모두 뜻한다. 글이란 정직한 것이다. 내가 모은 자료, 생각하고 쓰는 데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나아진다. 단행본 한 권을 낸다고 해보자. 요즘엔 판형이 작고 본문 편집이 성긴 책들도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200자 원고지 600매 정도는 되어야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해 원고지 600매를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200매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써내려갈 수 있을지 모르나, 그걸 넘어가면서부터 벽에 부딪히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주제를 소주제로 나누면 된다. 600매 분량을 소주제 30개로 나누면, 소주제 하나에 20매가 된다. 50개로 나누면 12매가 된다. 이렇게 하면 원고지 600매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잡은 주제를 과연 30개 이상 소주제로 나눌 수 있는가? 이것도 막상 해보면 어렵다. 그래서 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30개 이상 소주제로 나누어 원고지 600매 이상 쓸 수 있으려면, 많이 쌓아두어야 한다.

셋째, 꾸준히 계속 한다. 사실 책을 내는 것 자체를 목표 삼는 건 이상한 일이다. 처음부터 '나는 반드시 책을 낼 것이다',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하는 작가는 드물다. 쓰고 또 쓰다 보니 어느 사이 책을 낼 수 있게 됐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거듭 말하지만 책은 편집자와 출판사가 만든다. 작가는 다만 쓸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해야 할 일, 쓰는 일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니 책을 낼 수 있을지 여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달려있다. "작가의 일을 얼마나 꾸준히 계속해서 할 수 있는가?" 물론 대답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야 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도 하거니와, 책도 하루아침에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서 실력이 늘수록, 오히려 책을 내기가 두려워진다. 나의 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 차별성은 주제일 수도 있고, 문체일 수도 있으며, 주제를 다루는 방식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다른 작가들과 달라야 한다. 유명 가수의 노래를 정말 잘 따라 부르는 사람, 이른바 모창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창하는 사람들과 진짜 가수가 가림 막을 쳐놓고 노래를 불러 겨루는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출연자들이 진짜 가수를 맞히지 못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모창하는 사람은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나도, 실제 가수로 데뷔하거나 하는 경우가 드물다.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SBS에서 방영됐던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에서, 박진영 씨가 출연자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정말 잘 불러요. 느낌도 잘 살리면서 아주 정확해요. 그런데 그게 다에요. 원곡을 부른 가수한테서 벗어나질 못했어요." 차별성을 갖추지 못하면 자기 노래를 발표하기 어렵다. 책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네 가지 노력을 열심히 기울여도 책을 내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자. 열심히 노력하는 사이에 지적인 능력이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관해 꾸준히 자료를 정리하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경험은 그 자체로 값지다. 설령 책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표정훈 인잇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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