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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원로 진화생물학자 '떡상 유튜버' 된 사연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 인터뷰


어쩌다뉴스-최재천교수
첫 만남은 아마도 떨리는 새 학기, 고등학교 교과서였을 겁니다. 7차 교육과정을 거쳤다면 어렴풋하게 기억 속 저편에 있을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이 글은 2002년부터 고등학교 국어 국정 교과서 1단원에 실렸습니다. 외국어와 외래어의 범람으로 갈 길을 잃은 우리말의 처지를 외래종 개구리에 습격당한 토종 개구리의 생태계에 빗댔죠.

제목 오른쪽 아래 쓰여 있던 저자의 이름마저 왜인지 묘하게 생태적인(?) 느낌을 주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최재천. 있을 재(在)에 하늘 천(天)을 쓴다고 합니다. 국립생태원장,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등. 맡은 직함만 수 개에 이릅니다.

이번 '어쩌다 뉴스'는 명실상부 한국사회 '원로' 최재천 교수가 1년 전 시작한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이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차트 역주행'하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30년째 대중들에게 노크하고 있는 진화생물학자는 어쩌다 '요즘 것들'의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어쩌다뉴스-최재천교수
'떡상'의 서막은 한국 사회 출생률에 대한 작심발언부터입니다. 지난달 23일 올린 영상에서 "지금 한국에서 아이 낳는 사람은 바보", "아이큐가 두 자리가 안 되니 애를 낳는 거겠죠?"라는 발언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출산과 육아에 척박한 환경을 고려할 때 진화생물학자 관점에서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된 저출생은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는 겁니다.

"주변에 먹을 곳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거기서 애를 낳아 주체를 못 하는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라며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은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현명해진 세대, 지나치게 똑똑해진 세대의 불행"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런 차가운 계산을 거치고도 출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애국자'라는 것이 최 교수의 결론입니다.

파격 발언에 '좌표'가 찍혔습니다. 2020년 10월 첫 영상을 시작으로 여러 영상을 올렸지만 1년 가까이 1~2만 명에 그쳤던 채널 구독자 수는 한 달도 되지 않아 9만 명을 목전에 둘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차츰 늘어난 구독자들이 과거 영상들을 '역주행' 시청하면서 과거 발언들도 세간에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자연에서처럼) 일부일처제가 없으면 원빈, 현빈이 몇 천 명씩 데려가기 때문에 우리에겐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여성 착취의 역사",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한다는 것은 남성 입장에선 입을 다물어야 할 일", "동성애는 동물 세계에서도 자연스러운 현상"과 같이 진화생물학 관점에 기반한 젠더 발언들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사실 최재천 교수는 17년 전인 2004년,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폐지 판결 심리 당시, "생물학적으로 암컷이 수컷보다 진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므로 호주제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여권 신장에 대해 꾸준히 발언하고 실천해온 학자입니다.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수상소감에서 최 교수는 "허울뿐인 가부장 계급을 떼어내면, 편해지는 건 남성들"이라며 그때부터 지금껏 양성평등의 편익은 남녀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쩌다뉴스-최재천교수
기성세대의 '내로남불'이라면 치를 떠는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68세 교수의 진정성이 제대로 두드린 걸까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꿈을 이루라'는 덕담 대신, "같이 사는 세상인데 눈치 안 보는 사람들 싫다", "까딱하다간 굶어죽는다는 걸 모르고, 세상 물정에 약간 느렸던 덕에 생태학을 하게 됐다"는 솔직한 발언들도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방침이 발표된 지난 16일(목), 전날 밤늦도록 김부겸 국무총리와 유선 회의를 했다던 최재천 교수는 몇 시간에 걸친 인터뷰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침팬지 학자' 제인 구달 박사와 함께 창립한 공익 재단법인 생명다양성재단의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초과학을 지원하고 다양성 보전을 위한 방안을 개발하는 역할을 하고자 했는데 후원금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던 차에 주변의 조언을 얻어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 1년 지나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젠 조금씩 재단 후원도 늘고 있습니다.

열대 지역의 벌레는 왜 크기가 큰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을 깨우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처음엔 할아버지 과학자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교육 콘텐츠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다 콘텐츠 콘셉트를 한 번 바꿨습니다.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에 실명 '등판'해 질문에 직접 답해주고, 그 대가로 '내공'을 쌓아 '지존' 계급(해당 서비스는 답변 채택률이 높을수록 계급 상승을 할 수 있게 설계돼 있습니다)에 도전하는 새로운 콘셉트로 변신했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찍은 곤충이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교수의 월급이 얼마인지,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는 등의 당혹스러운 요청도 있었고 최재천 교수의 책으로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다섯 문장으로 써달라는 짓궂은 요청도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쌓은 내공은 비록 당초 목표치였던 '지존' 계급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가 좋아한다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과 이름이 같은 '영웅' 계급에 도달하며 시즌의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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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발언' 콘셉트를 어떻게 고안했냐는 질문에 68세 원로교수가 '요즘 유튜버' 같은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조회수가 한동안 만 오천 명에서 늘지를 않더라고요. 그러다 주변 과학자 중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장동선 박사(뇌과학자)가 한 번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그런 거 하지 말고 좀 진지한 거를 해보라고요. 자기로 치면 뇌과학자가 본 죽음 같은 걸로요. 자기도 그러니까 갑자기 늘더라고요."

출생률 발언에 대한 열렬한 반응엔 본인도 놀랐다고 합니다. 골자는 무려 16년 전 쓴 책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2005)>에 이미 언급한 내용입니다. 최 교수는 이 책에서 여성의 난모 세포가 고갈되고 더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자고 주장했습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표현이지만 당시 '폐경'을 '완경'으로 부르자고 처음 제안했습니다.

"(출생률 IQ 발언 반응은) 그 생각을 저만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전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는 사람이니까 생태의 기본이 개체군 변동이거든요. 옛날에 합계출산율이 1.2명 정도로 떨어지는 걸 보고 저출생 고령화가 한국 사회에 당면한 심각한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너무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서 책을 썼는데 당시엔 아무 반응도 없었어요."

2021년 3분기 합계출산율은 0.82명. 인구절벽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16년 전 '최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현실화할 동안 '번식', '도태'같은 진화생물학 용어들도 일반인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제가 동물학자니까 과거에는 '번식이 끝나면' 이런 식으로 표현했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대단히 불편해 했어요. 요즘엔 제가 아무리 번식 어쩌고 해도 거부감 없는 걸 보면 그간 생물학에 대한 인식도 폭이 많이 넓어진 거 같아요. 한국인들의 과학책 베스트셀러 부동의 1위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인데 그간 이 책을 많이들 읽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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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 높은 발언(보통 '어그로'라고 하죠)에 유입된 구독자들이 꾸준히 <최재천의 아마존>에 머무르게 되는 건 10년, 20년 동안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 최 교수의 '무해한' 이미지 때문이기도 합니다.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선 최재천 교수 콘텐츠를 '힐링물'로 소비한다는 감상이 많습니다. 주로 자기 전에 본다고 합니다.

정치적 편향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일평생 연구한 동물과 자연의 생태에서 발견한 실마리를 담담한 어조로 전하는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엔 소위 '악플'도 적은 편입니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소비되면서 '역주행' 시작한 구독자들에게, 과거 영상의 작은 발언들이나 본인의 삶에서 직접 실천한 공동보육, 글쓰기에 대한 태도들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중엔 '아내'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하버드 유학 시절 음악학을 전공한 아내를 만나 신혼 9년째 되던 해 아들을 얻었습니다.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집안일에서 설거지는 본인의 몫이라고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학위 과정을 일찍 마쳤기에 아내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최재천 교수가 어린 아들의 양육을 도맡는 일이 많았습니다. 미국에선 아기 띠를 매고 안은 채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선 아이를 바구니에 넣으려 하면 자청해서 자기 앞에 두고 아이를 들여다 봐주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서울대에 부임하고선 피치 못하게 두어 번 아이를 강의실에 데리고 가서 앉혀놓고 수업했지요.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강의평가에 6-7명이 '집에 가서 애나 봐라', '마누라도 없냐'고 써서 크게 실망했던 일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아이 낳는 것을 제외하곤 보육의 모든 과정을 남자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최 교수 역시 가부장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사내자식'이 부엌에 발을 한 번 디뎠다고 두 시간 동안 무릎 꿇고 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존경과 원망의 감정이 뒤섞여 있는 아버지에 대한 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덧니가 많은 분인데 남들은 모르고 지나가는 돌을 꼭 골라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늘 밥을 다시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마다 모두가 고요하게 아버지의 눈치를 봤습니다. 어머니가 상을 정리해 들고 나갈 때의 그 소리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때문에 밥상 위에 있던 그릇들이 부딪혀 달각달각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말랑팥죽'같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들 결혼식에선 자랑스럽게 '황제처럼 키웠다'고 말했어요."

최 교수는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혐오와 갈등에 대해서도 10여 년 전 예상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준말을 잘 쓰지 않아 '여혐(여성혐오)'이란 말을 직접 쓰진 않았지만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남성들이 억지로 추를 붙들고 있었어요. 경제권을 쥐고 있으면서 휘두르는 사회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게 풀리기 시작하면서 추를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 겁니다. 다만 이 추를 놓으면 '남녀평등'이라는 정중앙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추는 저 쪽으로 갑니다. 한동안은 남성들이 불평하고 억울해할 수 있을 거라 말했습니다. 그때가 이제 온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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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등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갈등의 골을 메우기 힘든 쪽은 세대 간 갈등이라고 지적합니다. "남녀갈등은 언젠가 풀립니다. 남성 여성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남', '이대녀' 이렇게 놓고 보니까 심각해 보이는데 남성 전체와 여성 전체를 놓고 보면 오히려 남성들이 반기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남성들 입장에선 전통적으로 돈 버는 기계에서 가정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직장에서 여자들한테 '내 직장 빼앗긴다'고 느끼지 않고 내 아내의, 내 딸의 직장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들어 주4일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저는 예전부터 주3일제를 주창해왔습니다. 이런 겁니다. 일주일에 하루 쉰다 치면 3일은 남자가, 3일은 여자가 일하는 겁니다. 그렇게 나눠서 일하고 쉬고. 남자들도 카페에 앉아 수다도 떨고 아이도 돌보고. 얼마나 좋습니까?"

수 백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연구실엔 곳곳에 책을 빌려간다는 포스트잇이 붙어있습니다. 열정적인 저술가이면서 애서가, 장서가이기도 한 최 교수에게 독자들을 위한 연말 추천 도서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자연을 잘 들여다보면 손잡은 놈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에서 함께 살아남습니다. 그간 우리는 자연 선택이라는 과정을 '적자생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Survival of the Fittest'라고 하는데 여기서 최상급이 잘못 들어갔습니다. 우리 사회는 마치 1등이 아니면 다 망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자연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이상하게 자연을 그런 식으로 바라봅니다. 자원이 부족해지면 저 밑에 경쟁력 없는 누군가 죽어가는 거지 1등만 남겨두고 다 죽는 게 아닙니다. 몇이서 같이 힘을 내서 잘 해서 함께 살아남자, 잘 들여다보니까 자연이 그런 곳이더라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집대성해서 쓴 책이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2014)>입니다. 그걸 최근에 생물학자들이 많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휴먼 카인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우정의 과학> 세 권을 추천합니다. 연말에 마음이 따뜻해지실 겁니다."

어쩌다뉴스-최재천교수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미국으로 유학해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과정을 거쳐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2년 미시간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됐고 1994년 귀국 후 2006년까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2007년부터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까치 연구를 25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슬하에 1남과 1견, 2묘가 있습니다. 1981년 결혼 초부터 30년 간 집안일에서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MBTI는 ENFJ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유형(최재천 교수의 초간단 MBTI 테스트는 추후 업로드 될 인터뷰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입니다.

20여 년 간 종합일간지 <한겨레>와 <조선일보> 등에 기명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작문 열정이 남달라 이틀 전에 원고를 미리 보내놓습니다. 조사 하나를 바꾸는 데도 시간을 많이 들여 생각합니다. 시간 관리에 있어서 철저히 'J' 유형입니다. 2021년 12월 현재까지 95권의 저서를 냈습니다.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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