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단원경찰서에서 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조사를 받고 나온 조두순에게 SBS 사회부 한소희 기자가 물었습니다. 머리에 응급 처치를 한 상태로 경찰서를 나온 조두순은 당시 가해자가 어떤 상태에서 공격을 했는지, 부상 정도는 어떤지 등을 묻는 질문에 일체 답하지 않았습니다. 조두순은 다만 "죄송해요. 다 나로 인해서 이뤄진 거니까"라며 질문과 관계없는 사과를 했습니다. 이번 피습 사건의 원인이 자신이 저질렀던 아동 성범죄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범죄자에게 직접 천벌을"…역사가 된 '사적 제재' 사전
한국 사회에서 가중 잘 알려진 사적 제재 사건은 단연 '안두희 정의봉 피살 사건'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권총으로 암살했던 안두희를 박기서라는 이름의 시민이 살해했던 사건입니다.
1917년 평안북도 용천군 태생인 안두희는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사저로 사용하던 서울 종로구 경교장 건물에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해 포병사령부 연락장교로 근무하던 33살 안두희는 서재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김구 선생을 향해 45구경 권총을 발사했고 김구 선생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안두희는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구 선생이 사회에 혼란을 주고 공산주의자들을 자극했다'고 주장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민들이 분노한 건 안두희에 대한 법적 단죄의 과정과 수위였습니다. 안두희를 조사한 헌병사령부는 사건 발생 1시간 24분 만에 이 사건이 안두희 개인의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몇 달 뒤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됐고 1년 뒤인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형 집행정지를 받은 뒤 군에 복귀하기까지 합니다.
안두희는 이후 1953년 소령으로 예편함으로써 사실상 암살 사건 이전의 신분을 완전히 되찾았습니다. 심지어 제대 이후 군납공장을 차려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축적하기도 한 걸로 전해집니다.
"인간 쓰레기를 치우는 심정으로"…안두희 피살 사건의 결말
안두희는 이후 여러 차례 암살 및 살해 협박을 받거나 진실을 고백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빗발치는 위협 속에 1992년 김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당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암살의 배후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지만 증언을 할 때마다 말이 바뀐다는 비난 속에 시민들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박기서 씨가 안두희를 살해한 사건은 그로부터 4년 뒤 일어났습니다. 버스 기사로 일하던 48살 박 씨가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반쯤 '정의봉'이라고 쓴 둔기를 가지고 안두희의 집을 찾아가 폭행해 살해한 겁니다.
박 씨는 사건 직후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일약 '영웅'이 됐습니다. 심지어 살해 도구로 쓰였던 '정의봉'은 모 박물관에 기증돼 보존되고 있습니다. 반면 살인 피해자인 안두희를 향한 동정은 지금까지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배경에는 안두희에 대한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대중의 분노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외신 "음주범죄 처벌 관대한 한국"…들끓는 시민들의 분노
당시 영국 BBC 방송은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량이 줄어든 사실을 보도하며 "한국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서 행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훨씬 관대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조두순이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한 반면 공판 담당검사는 항소를 포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법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불신은 극에 달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검사에게 법리 적용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주의 처분을 내렸지만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조두순은 지난해 12월 13일 12년의 복역 기간을 마치고 출소했습니다. 출소일이 다가오면서 시민들의 분노와 불안감은 다시 한국 사회를 달궜습니다. 조두순이 만 18세부터 54세까지 성범죄를 비롯해 모두 17건의 범행을 저지른 사실도 추가로 알려지면서 조두순의 집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심각한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출소 당일 다수의 유튜버들은 조두순에 대한 사적 제재를 예고했고 조두순이 탄 차량 위에 올라가 뛰는 모습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조두순을 폭행한 20대 남성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두순이 범한 성범죄에 대해 분노했고 공포를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집을 찾아갔다"고 밝혔습니다. 폭행을 저지른 당시 상황에 대해선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어 둔기를 휘두른 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정신질환 진단을 받아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걸로 알려졌는데, 앞서 지난 2월에도 조두순을 응징하겠다며 흉기가 든 가방을 메고 조두순의 집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입건된 적이 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사적 제재'와 법치주의…"법이 보호해야 할 존재는 오로지 국민"
경찰은 오늘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분노에 휩싸여 사적 제재를 저지른 순간은 잠시였지만 그로인한 대가는 무거울 수 있습니다. 다만, 국민의 법감정과 심각한 괴리가 있는 처벌 수위는 또 다른 사적 제재가 일어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제도 개선이 조두순 사건 발생 이후 이뤄졌다는 점은 한국 사회에 어두운 과거로 남게 됐습니다. 범죄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사법 체계가 불신과 분노의 대상이 됐다는 점도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사적 제재는 법치 사회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행위입니다. 그러나 '법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국민들이 느낀다면 이 역시 법치주의의 큰 위협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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