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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뉴요커'가 뭐기에…영화 두 편과 '뿌리깊은 나무'

'프렌치 디스패치'와 '마이 뉴욕 다이어리'<br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뉴욕에는 뉴요커가 살고, 파리에는 파리지앵이 살고, 런던에는 런더너가 산다. 그리고 뉴욕에는 '뉴요커'(The NEWYORKER)가 있다.

'뉴요커'는 1925년에 창간해 4년 뒤면 창간 100주년을 맞는 미국의 주간 시사문예지다. 창간 이후 한 번도 제호 디자인을 바꾸지 않았고, 표지는 사진 대신 늘 최고의 일러스트를 쓴다. 수준높은 정치/문화 비평, 소설, 시, 카툰 등을 싣는 뉴욕의(어쩌면 미국의?) 자존심 가운데 하나. ​'뉴요커'에는 어떤 작가들이 글을 싣는고하니,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업다이크('뉴요커'에서 편집자로도 일했다), J.D.샐린저, 무라카미 하루키 쯤 된다.

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원제: My Salinger Year)의 주인공 조안나(마가렛 퀄리)는 '뉴요커'에 글 한편만 실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작가지망생으로 대학을 갓 졸업하고 뉴욕의 작가 에이전시에 조수로 겨우 취직했다.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중

'마이 뉴욕 다이어리' 중 ​ 박봉에 쪼들리는 뉴욕생활과 냉정한 사장(시고니 위버)의 쪼임보다도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명색이 작가지망생인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요커' 편집실에 원고 심부름만 가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그녀이기에.

조안나의 업무는 에이전시가 관리하고 있는 은둔의 작가 J.D. 샐린저(맞다. 원제가 낫다)에게 보내오는 수많은 팬레터에 답하는 일이다. 답신은 정해져 있다.

"샐린저 씨에게는 편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전설이 된 샐린저에게는 에이전시도 먼저 연락을 할 수 없다. 그가 이따금 걸어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사장은 법적, 도덕적 책임을 피하고 혹시 모를 사건사고를 막기 위해 팬레터를 읽어보되 답은 늘 똑같이 사무적으로 하라고 조안나에게 지시한다. 물론 글쓰는 데 진심인 조안나는 한 어린 학생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썼다가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자리를 비웠을 때 몇 번 샐린저의 전화를 받아 몇 마디 나누게 된 조안나의 마음이 샐린저에게도 전달됐는지, 샐린저는 이따금 조안나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매일 쓰세요"... "하루에 15분이라도 쓰세요" ​

90년대 중반의 고즈넉한 뉴욕을, 컴퓨터가 막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수동타자기의 타탁거림이 고막을 기분 좋게 간질이던 뉴욕의 사무실을, 부엌에 싱크대도 없어서 욕조에서 설거지를 해야 했던 뉴욕 청춘들의 가난한 일상을, 그러면서도 술집에서 낭만과 이상을 토로하던 뉴욕의 문학청년들을, 그 시절을,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따스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 *** ​
  그런 문학청년 중에는 웨스 앤더슨 감독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로 잘 알려진 웨스 앤더슨 감독은 텍사스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뉴요커'의 사생팬이다. U.C 버클리에서 40년간 모은 '뉴요커'를 폐기한다고 했을 때 그걸 600달러에 모조리 사들였을 정도다. (9월5일자 '뉴요커' 인터뷰) ​

웨스 앤더슨 감독의 버킷리스트에는 늘 '뉴요커'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로 그 꿈을 이루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타이틀부터 엔딩 크레딧까지 완벽하게 '뉴요커'에 대한 헌사다. 잡지 형식으로 구성된 4개의 단편 소설같은 에피소드로 영화가 구성되는 것이 그렇고 각각의 에피소드가 시작하는 비주얼 스타일이 잡지를 빼다 박았다. (특히 엔딩크레딧의 뉴요커풍 일러스트는 빼박)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포스터
세계적 인기 감독이지만 웨스 앤더슨에게 거장이란 수식어는 잘 안 어울린다. (수준이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웨스 앤더슨은 완벽한 대칭의 미장센과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스크린을 채우는 자신만의 문체(style)를 가진 감독이다. 어쩌면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뉴요커'를 좋아했던 것도, 그의 영화가 결국 '뉴요커'를 닮아가게 된 것도 '뉴요커'에는 '문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미상 한번 못받은 웨스 앤더슨에게 유명배우들은 줄을 선다. '프렌치 디스패치'에는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티모시 샬라메, 리아 세이두, 시얼샤 로넌, 애드리안 브로디, 프랜시스 맥도먼드, 베니시오 델 토로 등 아카데미 남녀주연상급 배우들이 한편에 다 출연한다.

​기자 출신으로 '뉴요커'를 창간한 해럴드 로스를 모델로 한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 아서 하위처 Jr.(빌 머레이)는 해럴드 로스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이 잡지의 편집장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기자와 편집자들의 지휘자인 편집장 빌 머레이는 때로는 기자처럼, 때로는 편집자처럼, 때로는 경영자처럼 세심하게 크리에이터들을 조율하며 최선의 콘텐츠를 뽑아낸다.

그는 말한다.  "내가 죽거든 이 잡지도 폐간시키게" ​

세상에는 시스템만으로는 승계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개성 강한 작가와 기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소신과 애정과 전문성을 갖추고 매거진이라는 문화엔진의 윤활유 역할을 하던 빌 머레이도 이를 직감했을까... 영화 속에서 프렌치 디스패치는 폐간했다. 만약 웨스 앤더슨이 사라진다면 웨스 앤더슨이라는 영화도 사라지는 것이다.
​ *** ​

그런 의미에서 100년 가까이 스타일과 영향력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는 '뉴요커'는 대단한 잡지다. 그런데 뉴욕에 '뉴요커'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뿌리깊은 나무'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뉴요커'에 해럴드 로스가 있었고, '프렌치 디스패치'에 아서 하위처 Jr.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한창기 선생(1936-1997)이 있었다.

한창기 선생이 1976년 3월 창간한 교양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는 비록 뉴요커의 1/20의 기간 밖에 발행되지 못했지만 최초의 한글 전용과 전면 가로쓰기, 레이아웃과 폰트 등에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시스템 등 그때까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세련된 잡지 스타일을 개척했던 잡지였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창간호
뿐더러 토박이 문화에 대한 애정을 글말이 아닌 품격있는 입말로 바꾸어 써 신선한 문화 충격을 던졌다. "뭐든 물 건너 온 것이 좋은 것"이라는 편견에 맞서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웅숭깊음을 발견해낸 K-컬쳐의 선구자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점을 앞서 깨달았던 잡지였다. 그러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았다. 당시 '뿌리깊은 나무'는 인기 월간지 '신동아'가 2만부를 찍을 때 6만부까지 찍었다고 한다.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는 창간 4년여 만인 1980년 8월, 신군부에 의해 폐간되고 말았다. 한창기 선생은 1984년 종합여성교양지 '샘이 깊은 물'을 창간해서 역시 새로운 잡지의 전범을 보였으나, '샘이 깊은 물' 또한 1997년 한창기 선생이 작고하고는 몇 년을 표류하듯 버티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창기 선생의 심미안과 열정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뉴요커'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품격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잡지 하나 없다는게 매우 아쉽지만, 한창기가 없는데 '뿌리깊은 나무'가 '뿌리깊은 나무'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차라리 '뿌리깊은 나무'가 전설로 존재하는 것도 어쩌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창기 선생이 쓴 '뿌리깊은 나무' 창간사 중 이 시기에 꼭 전하고 싶은 대목이 있어 이를 에필로그로 대신한다.

"잘사는" 것은 넉넉한 살림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도 누리고 사는 것이겠읍니다. "어제"까지의 우리가 안정은 있었으되 가난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물질가치로는 더 가멸돼 안정이 모자랍니다. 곧, 우리가 누리거나 겪어온 변화는 우리에게 없던 것을 가져다 주고 우리에게 있던 것을 빼앗아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사는" 일은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뿐만이 아니라 억울함과 무서움에서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맞을 슬기를 주는 저력-그것은 곧 문화입니다. 문화는 한 사회의 사람들이 역사에서 물려받아 함께 누리는 생활방식의 체계이겠읍니다.

그런데 흔히들 문화를 가리켜 "찬란한 역사의 꽃"이라느니 합니다. 또 문화는 태평세월에나 누리는 호강으로 자주 오해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문화의 한 속성으로써 본질을 설명하는 잘못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이것은 예로부터 토박이 민중이 지닌 마음의 밑바닥에 깔려 내려와서 "어제"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를 이어온 토박이 문화가 외면되고 남한테서 얻어와서 실제로 윗사람들이 독차지했던 조선시대의 고급문화와 같은 것만이 문화로 받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문화는 역사의 꽃이 아니라 그 뿌리입니다. 그리고 정치나 경제는 그 열매이겠읍니다. 정치나 경제의 조건이 문화를 살찌우는 일이 있기는 하되, 이는 마치 큰 연장으로 만든 작은 연장이 큰 연장을 고치는 데에 곧잘 쓰임과 비슷할 따름입니다.

<한창기. 뿌리깊은 나무 창간사. 1976.3.15.>


※쿠키※ ​
최고의 실력자지만 냉정한 상사와 꿈에 가득차 있지만 어딘지 부족한 사회초년생의 좌충우돌 성장담이라는 설정은 영화에서 자주 보는 클리셰다.
'마이 뉴욕다이어리'를 관람하다 보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떠오르게 마련인데, '악마는...'에서 스타로 떠오른 앤 해서웨이가 진정으로 가고 싶어한 곳이 바로 '뉴요커'였다. ​ '악마는...'은 패션잡지 '보그'의 전설적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했는데, '보그'와 '뉴요커'와 둘다 콘데나스트 미디어그룹 소속의 잡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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