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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니좌' 노재승의 사퇴, 그리고 국민의힘이 '청년'을 상대하는 방식

노재승 국민의힘 선대위원장

지난주 국민의힘을 뜨겁게 달군 이름은 지난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 지지 연설로 주목받은 일명 '비니좌', 37살 노재승 씨였습니다. 노 씨는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나흘 동안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가 자진 사퇴 형식을 빌려 사실상 경질됐습니다. 이번엔 취재 과정에서 당사자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리고 노 씨와 같은 30대 청년으로서 국민의힘 선대위가 청년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살면서 5·18을 단 한 번도 폭동이라고 말해본 적 없다"


지난 6일(월) 아침,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는 노재승 씨의 공동선대위원장 취임을 공식 추인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민주당 청년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노 씨가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발언들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노 씨의 페이스북을 찾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들어가 보니 5·18 관련 게시물은 이미 삭제됐지만 민주노총 집회와 관련해 '경찰의 실탄 사용에 이견 없다" "정규직 폐지론자"와 같은 글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문장들이었습니다.

당사자에게 직접 입장을 물어야 했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노 씨의 전화번호를 알 턱이 없었습니다. 결국 직접 찾아가 선대위 회의장을 나서는 노 씨를 붙잡고 말을 걸었습니다. 취재에 응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명함을 교환했습니다. 5·18 관련 영상을 공유한 게시물에 대해 물었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5·18을 폭동이라고 말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왜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 관념이 완벽하게 잡혀 있으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첫 대화에서 노 씨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관념' 같은 꽤 독특한 화법으로 해명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화 막바지에 노 씨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도 갑자기 공당의 선대위원장이 된 거니까, (상대편에서) 정치적 공격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욱 조심할 거고, 지금 논란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검정고시 제도를 '비정상적인 교육'이라고 폄하하는 글을 공유하고, "김구는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 죽인 인간"에 '#개돼지 되지 맙시다'라는 해시태그까지, 취재를 위해 노 씨의 SNS에 접속할 때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법한 표현들에 눈을 의심해야 했습니다.
 

"이승만 폄훼하고 김구만 높이는 사태를 비꼬고 싶었다"


다음 날(8일), 당 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쯤 되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사퇴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왔을 때쯤, 예상치 못하게 노 씨 쪽에서 전화가 먼저 걸려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인터넷 기사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며 담당자 연락처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번호를 안내하고 나서 김구 비하 댓글에 대해 묻자 노 씨는 "충분히 소명할 수 있다"며 상기된 어조로 길게 답변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한 견해나 기록이 나눠져 있어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기록이 있으니까 그건 해석하기 나름이잖아요.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중략) 제가 부정적인 측면으로 다룬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고 김구만 드높이는 그 사태를 비꼬고 싶었던 겁니다."

다른 질문도 하려던 참에 노 씨는 약속된 전화가 왔다며 통화를 끝냈습니다. 약 10분 남짓한 통화에서 느낀 건 노 씨가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글을 썼고, 그렇기에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거나 사퇴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게 노 씨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노재승 사퇴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거친 문장에 상처 받은 분들께 사과"… 선대위의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선대위도 논란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았습니다.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후보에게 부담되는 게 맞다"며 "어른이었다면 나가라고 대놓고 권고했을 텐데 아직 너무 어린 나이라 상처 받을까 봐 단호하게 대처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날 노 씨를 추천한 권성동 의원실 관계자가 노 씨를 직접 찾아가 의사를 물었지만, 사퇴할 뜻이 없다는 답변을 받은 걸로 확인됐습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자기 발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압박만 한 겁니다.

마지막 날 (9일) 아침, 어제 노 씨와 직접 만난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정강정책 연설) 방송합니다"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이 관계자는 "오후에 방송이 나가고 나면 여론이 달라질 수 있다. 꼭 들어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 씨와 비공개로 면담한 권성동 사무총장도 "사람이 살다 보면 젊은 시절에 이런저런 실수할 수 있다"며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다, 며칠 지켜보자"고 감싸기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결국 노 씨의 방송은 취소됐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과거 문제로 (임명이) 취소됐던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기준으로 처리될 것"이라며 사실상 경질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밀어내기'의 마지막 한 방이었는지, 결국 노 씨는 오후 5시 반쯤 권성동 총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노재승 사퇴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청년'을 상대하는 방식


그래서 노 씨가 사퇴했으니 논란은 여기서 끝난 걸까요? 오히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국민의힘 선대위의 '청년'에 대한 어긋난 인식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노 씨의 발탁 과정입니다. 공동선대위원장은 그 선대위의 각 분야별 '얼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노 씨가 발탁된 이유는 '지난 보궐선거 때 보니 젊은 사람이 연설을 잘하더라' 였습니다. 과연 노 씨가 청년을 대표할 만한 요소들이 있는지, 또 그의 생각에 다른 또래 청년들이 공감할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해봤는지, 혹시 청년들을 '자기 또래가 나와서 연설하면 별생각 없이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라고 얕잡아 본 건 아닌지 의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검증도 없었습니다. 논란이 됐던 발언들은 몇십 년 전에 한 게 아니라 검색하면 5분이면 찾을 수 있는 SNS에 버젓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 씨가 대중들 앞에 설 때까지 그 누구도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매번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 대표 격을 뽑을 때 이 정도의 검증이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논란에 대한 해명도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해명은 청년을 여전히 미성숙한 시혜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말이지, 적어도 제1 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의 '막말'을 옹호하기 위해 할 말은 아닙니다.

결국 선대위는 노 씨를 계속 안고 가면서 여론의 비판을 감당하거나, 아니면 공식적으로 경질하고 인사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둘 중 하나의 결정을 내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이미 사퇴를 거부한 사람을 기어코 어르고 달래서 내보내는 모양새였고 누구도 책임은 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30대 청년으로서 저는 국민의힘이, 우리 정치가 청년을 상대하는 방식이 최소한 이번보다는 더 나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청년들은 나이 어린 또래가 나와서 연설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지지하지 않고, 망언을 '어려서 실수했다'고 감싸준다고 해서 '우리 편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 청년의 선택을 받고 싶다면, 부디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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