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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차별금지법…신중함과 무관심 사이 이재명-윤석열

[사실은] 차별금지법…신중함과 무관심 사이 이재명-윤석열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은 어쩌면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2007년 법안이 처음으로 발의된 이후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대선 정국 후보 간 정책 경쟁이 불붙으면서, 자연히 차별금지법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정의당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지난달 25일,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끝장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대선 앞두고 뒷전으로 밀린 차별금지법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결은 약간 다르지만, 다소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후보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팩트체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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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윤석열의 '차별금지법'


먼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입니다. 이 후보는 지난달 초부터 차별금지법을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를 해야한다고 말하며, 사실상 연내 처리와는 거리를 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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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제정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구호를 듣고 "다 했죠?"라고 말하며 쌀쌀맞게 지나쳤던 게 논란이 됐습니다. 이 후보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한 발 물러난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신중론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입법은 신중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만, 최근까지도 차별금지법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이같은 반응을 보이자 비판이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민주당은 줄곧 차별금지법 처리를 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유엔에서 여러 차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 받은 바 있습니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견해(CERD/C/KOR/14)를 시작으로, 2019년에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견해(CRC/C/KOR/CO/5-6)까지 총 10차례 입니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많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이듬해 정부 발의 법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1건이 발의됐습니다. 이 가운데 5건은 임기 만료 폐기됐고, 2건은 철회됐습니다. 지금 4건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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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던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차별금지법을 추진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민주당 이상민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당시 회견장에 참석한 이상민, 권인숙, 박주민 의원 등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하는 기자회견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상민 : 이런 법안조차도 일부 세력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제정이 안 된다면, 대한민국 국격과 위상을 (고려할 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인숙 :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확고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고, 국회가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입니다.
박주민 : 최대한 속도를 내고, 최대한 내실 있는 토론을 통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법이 통과되도록 하겠습니다.
- 민주당 의원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 국회 소통관, 2021년 6월 16일

박주민 의원은 다음 날 개인 SNS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 데 대해, 반박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준석 대표님, 민생을 위한 정치는 언제 시작됩니까? 차별금지법 입법은 논의만 14년째입니다. 그런데도 "입법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하시면, 얼마나 더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박주민 의원 페이스북, 2021년 6월 17일

하지만, 이재명 후보가 차별금지법 신중론 입장을 말하자, 박주민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주민 의원 :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제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는 이유로 뭐라 그러시고 차별금지법을 찬성하시는 분들은 왜 더 못 하냐고 또 뭐라 그러시고 해서 약간 제가 중간에 끼어 있는 그런 부분인데요. 차별금지법 관련돼서 후보가 하셨던 얘기는 원칙적인 얘기이고 맞는 얘기죠. 그러니까 필요성은 인정하는데 이 법의 취지상 일방 통과보다는 논의를 통해서 통과시켜야 된다….
- SBS 김태현의 정치쇼, 11월 14일

민주당 의원들이 내뱉었던 수 많은 문장들이, 이재명 후보의 주장에 반박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대선 때 보수 표를 의식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 해도, 특정 법안에 대한 입장이 불과 몇 달 새 극적으로 바뀌는 모습은, 오히려 법안의 신뢰도를 퇴색시켜 사회적 합의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내용적인 부분은 윤석열 후보의 말을 통해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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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는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주로 차별받았다고 판단된 이들에 대해 실질적인 '구제' 방안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자주 소개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많은 선진국들이 차별금지법을 입법하고 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제한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와, 이를 통해 성취될 수 있는 공동체의 공익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후자에 무게를 뒀기 때문일 겁니다.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현황을 알아봤습니다. 다음은 유럽위원회(EC)가 펴내는 차별금지법 관련 보고서를 요약, 정리한 자료입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시행하는 유럽 국가들이,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차별 사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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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의 발언은 차별금지법의 '과잉 입법' 논란과 맥을 같이 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헌법도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고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1조)고 규정해놓고 있고, 근로기준법이나 양성평등기본법 등 차별을 금지하는 법들도 여럿 제정해놓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포괄적'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다시 만들어 운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차별이 공동체의 공익을 훼손하고, 나아가 모두에게 손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개별적 차원을 너머, 포괄적 차원의 명징한 '선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윤 후보가 말한 차별금지법과 개인 자유의 충돌 부분은 좀 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 후보 측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여러 나라에서도 이런 충돌 문제가 종종 논란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념과 자유의 딜레마


차별금지법 심사기한 연장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벌어질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A 씨는 판사로 임용됐다. 그런데, 과거 자신의 SNS에서 위안부를 부정하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던 게 문제가 됐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며 국민들 반발이 빗발치자, 법원은 A 씨를 해임하고 임용을 취소했다. A 씨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차별금지법 조항을 근거로 해임 처분 무효 확인 소송과 함께, '악의적인 차별 행위에 대해 별도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많은 사람들은 위안부를 부정하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판사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법리 해석의 최전선에 있는 판사는 그 누구보다 엄격한 자격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신념'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입니다. 신념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리, 그리고 공직자의 도덕성과 품위라는 가치, 나아가 공동체의 기본 정서가 충돌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차별 문제와 관련한 가치 충돌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사실 유럽에서도 차별로 제기되는 문제와 다른 헌법적 가치와의 충돌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수정[비디오머그]이란 히잡

가령, 독일 베를린은 '종교적 중립'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중립법(Neutralitätsgesetz)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공적 공간인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건 불법입니다. 이런 원칙 때문에 공무원이나 교사는 종교적 신념이 드러나는 복장을 착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무슬림 교사가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히잡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침이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는 겁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교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가가 요구하는 종교·이념적 중립은 국가와 교회를 엄격히 분리한다는 의미에서 거리를 두는 태도가 아니라, 모든 신앙에 평등하게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태도로 이해해야 한다.
The religious and ideological neutrality required of the state is not to be understood as a distancing attitude in the sense of a strict separation of state and church, but as an open and comprehensive one, encouraging freedom of faith equally for all beliefs.
-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2015년 1월 17일 판결 (1 BvR 471/10, 1 BvR 1181/10)

독일 연방법원 판결로 이 교사는 히잡을 착용해도 됐지만, 종교적 중립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했습니다. 실제 반발도 적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신념이 드러나는 복장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여러 진통을 겪다 판결 2년 뒤에야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법리는 수학 공식이 아니라 해석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해석에는 공동체의 정서까지 고려됩니다. 독일 히잡 교사의 사례처럼, 차별 문제에는 여러 사회적 가치의 충돌이 불가피하며, 다양한 법리 검토와 해석의 과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합니다.

결국, 차별금지법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 자체가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아니고, 차별을 완전히 해소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차별금지법은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론회의 '발제문'에 가깝습니다. 유럽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별개 법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의미의 차별금지법을 정해놓은 이유 역시, 평등의 원칙을 보다 적극적으로 토론해보자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습니다. 법 하나로 장밋빛 미래를 기약할 필요도, 흙빛 미래로 제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이런 부분을 잘 정리해놨습니다.
 
차별 사유를 정하고 평등을 증진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규범을 정하였다는 것만으로 현실에서 바로 평등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구체적인 사건에서 이를 적용할 때에는 다층적인 가치충돌이 있을 수 있다. …… 유럽 각국에서도 이에 따라 일반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차별 구제 시스템을 갖추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아니하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차별 구제와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 국회 입법조사처, 김선화, <유럽 차별금지법제와 시사점>, NARS 현안 분석 제224호, 2021년 11월 24일.

SBS 사실은팀은 이번 대선 기간, 후보들의 말과 정책을 팩트체크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분들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서 SBS 사실은 치시면 팩트체크 검증 의뢰하실 수 있습니다. 요청해주시면 힘닿는 데까지 팩트체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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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참고 자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차별금지법 발의 현황 재분석
SBS 김태현의 정치쇼, 11월 14일
민주당 의원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 국회 소통관, 2021년 6월 16일
유럽위원회(EC), <A Comparative Analysis of Non-discrimination Law in Europe 2020>
독일연방헌법재판소, 2015년 1월 17일 판결 (1 BvR 471/10, 1 BvR 1181/10)
국회 입법조사처, 김선화, <유럽 차별금지법제와 시사점>, NARS 현안 분석 제224호, 2021년 11월 24일.

(인턴 : 권민선, 송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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