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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뉴스] 나무위키가 공약 플랫폼이 된다?

MZ 세대 기자의 눈으로 전하는 뉴스 속 숨은 조각

나무위키
지난 7일(화). 나무위키에 생성된 '윤석열 후보 공약' 페이지로 접속자 트래픽이 몰립니다. 윤석열 후보 측이 대선 공약을 나무위키에 게재한다는 방침을 '비판 및 논란' 섹션에 기술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10일까지 127개가 넘는 스레드(하나의 이슈에 대해 연결된 의견 게재 단위입니다)가 생성됐습니다. 

'플랫폼 사유화 우려가 있다', '논란이라고 지칭하기 위해선 제도권 언론의 기사가 필요한데 근거로 삼을 만한 기사가 현재로선 마뜩치 않다' 등의 의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국민의힘이 나무위키를 정책 소통 플랫폼으로 쓰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원희룡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은 "앞으로 정책 공약을 만들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겠다"며 "모든 정책과 공약은 나무위키를 통해서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이준석 당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표는 원희룡 본부장의 발표 소식을 담은 기사를 페이스북에 링크해 홍보전에 나섰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원 본부장에게 배우라'고 일갈하는 일부 댓글엔 직접 대댓글을 달아 "내 아이디어"라며 다소 발끈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이번 기획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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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축 자문진인 고려대 이한상 교수에 따르면 이번 계획의 초기 단계엔 윤석열 후보의 언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약을 마련할 때 경제 사회 정치 전문가들이 각각 이합집산으로 고안해 만드는 방식 대신 이슈에 대해 다양하게 터놓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이준석 대표의 아이디어가 결합하며 등장한 기획입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언론 보도에 언급된 '우려'들은 대략 이렇게 정리됩니다. "장난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이 우려를 조금 더 주관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런 겁니다. 캠프의 공식 입장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있고, 공약 생성과 수정의 책임 여부가 불명확해 '정책 수요자 중심의 문제 설정과 해결책 모색'이라는 애초 취지가 달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환영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국민의힘의 적극적 '청년 소통' 행보에 찬성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나무위키는 어쩌다, 대선 국면의 '소통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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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인이라면 나무위키 모르기도 어렵습니다. 자주 보는 문서를 맨 위로 올려주는 알고리즘 덕에 저를 비롯해 구글 검색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은 늘 상위 지점에 노출되는 나무위키 플랫폼에 익숙합니다. 

특정 개념, 인물 또는 사건 사고와 현상까지, 주관을 배제하고 건조한 문체로 사실관계만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는 일반 '백과사전'에 비해 나무위키는 친근한 문체와 직관적인 목차로 단시간에 맥락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데 도움을 주죠. 대학교 수업과제 출처에 '나무위키'를 게재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포털만큼이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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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탄생한 나무위키는 '위키'의 속성에서 한국적(?)으로 자생력을 얻어 발전한 플랫폼입니다. IP로 식별 가능한 아이디를 생성하고 로그인을 하면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윤석열 후보의 대선 공약 페이지도 지난달 25일 처음 개설된 뒤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수정되고 있습니다. 플랫폼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편집자들을 차단하는 관리자 그룹도 있지만, 이들도 불특정 다수에 의해 탄핵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무위키 플랫폼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도 있습니다. 백과사전의 사용자 체험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편향적 서술이 충분히 가능한 플랫폼이기 때문이지요. 자체적으로 만든 운영과 편집 매뉴얼에도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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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나무위키에 등재한 대상에 관한 주관적인 평가나 논란 서술이 작성자와 작성시점에 따라 시시때때로 바뀌는 건 아닙니다. 이견이 발생하는 이슈에 관해선 '토론'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논문 및 저널에 대한 발췌문과 출처' 또는 '일반적으로 접근 가능한 언론 기사 및 도서의 표제, 일자 및 페이지' 등의 근거를 제시해 토론할 수 있고 그 결과 합의문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플랫폼 안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논리 전투'에서 승리 또는 타협한 서술의 경우엔 아무리 '편향적'이라 해도, 나무위키 등재의 영예를 거머쥘 수 있게 되는 거죠! 

다만 모든 전투가 그러하듯 승리를 결정짓는 데엔 객관적 전력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근성(?)' 역시 큰 몫을 합니다. 틀린 말이라도 다수 참여자들의 관심에서 제외되거나, 관리자의 감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 그리고 상대의 근성에 밀려 포기하는 경우(내지는 토론 의지를 상실한 경우)엔 제 아무리 논쟁 여지가 남아 있는 경우라도 어느 한쪽의 입장만 게재되고 마는 기술적 한계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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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측은 나무위키와 함께 또 다른 문서 공동 작업 툴인 '노션' 페이지를 가능하면 이번 달 27일에 오픈한다는 방침입니다. 누구나 접속해 공약을 수정하고 각자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치를 이중으로 마련한 뒤, 이를 수렴한 공약에 대한 비판과 평가는 나무위키에서 받겠다는 겁니다.

수 년 간 무수히 많은 '논리 전투'들로 자체적으로 촘촘하게 마련된 나무위키의 토론 규칙 속에서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아 공약을 지속 수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어쩌면 이 기사도 막 불 붙은 '윤석열 공약페이지 - 비판 및 논란' 토론 스레드의 전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무위키를 활용한 국민의힘의 청년 소통 대 기획은 과연 진짜 '비단주머니'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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