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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장의 인스타 사진을…영화 '돈룩업'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아담 맥케이의 영화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와 많이 닮았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마이클 무어가 있다면 극영화에는 아담 맥케이가 있다고 할까.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드는데, 신랄하고 풍자적이며 독설가다. 둘 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영화에서 정치와 자본은 부패했고, 사회는 부조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잘만 돌아간다. (또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아담 매케이의 신작 '돈 룩 업'(Don't Look UP)은 미쳐 돌아가기 때문에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냉소다. 결코 좋은 한국어 제목이라고는 할 수 없는 '돈 룩 업'(Don't Look Up)은 글자 그대로 올려다보지 말라는 뜻으로 이 영화의 맥락에서 보면 "신경 쓰지 마", (나와 의견이 다른)"저쪽 얘긴 믿지 마"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돈룩업 리사이징

미시간주립대(우연이겠지만 마이클 무어가 중퇴한 대학은 미시간대이다) 천문학과 대학원생인 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교수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알리는데, 혜성의 궤도와 속도를 계산한 디카프리오는 경악한다. 불과 6개월 뒤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데, 혜성의 크기로 보아 지구는 파멸하고 인류는 절멸할 상황인 것이다. 공부만 했지 세상 물정엔 어두운 두 천문학자가 이 사실을 알리려고 동분서주한 끝에 백악관에 도착하지만 비서실장은 미시간주립대라며 슬쩍 깔보고, 대통령(메릴 스트립)은 눈앞의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느라 혜성 따위엔 관심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언론은 20대 톱스타를 출연시켜 애인과 이별한 얘기를 대단한 뉴스인 양 다루는 곳인데, 혜성 지구 충돌 뉴스를 다루는 이유도 자극적으로 포장할만한 소식이기 때문이다. 진지함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뉴스 진행자들에게 역겨움을 느낀 제니퍼 로렌스는 지금 지구가 멸망하게 생겼다고 분노하지만 오히려 그 장면이 인터넷 밈이 되어 조롱의 대상이 된다.

지구에서 육안으로 혜성이 보일 정도가 돼서야 정부는 핵폭탄으로 혜성의 괘도를 바꾸겠다며 정치적 이슈로 포장해 미사일을 발사하지만 이마저도 한 IT 구루의 계획에 막혀 좌초된다. 우주사업을 벌이는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모두 합쳐놓은 것 같은 IT기업 '배쉬'의 창업자인 마크 라이언스는 혜성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 광물 자원이 있다면서 이를 쪼개서 지구에 추락시킨다는 무모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마크 라이언스처럼 이 시대 IT기업의 창업자들은 단순한 비즈니스맨이 아니다. (영화에서 IT기업 CEO를 연기하는 마크 라이언스도 자신은 비즈니스맨이 아니라고 말한다) AI와 빅데이터로 무장한 이들은 정치인이 갖지 못한 막대한 자금력과 비전으로, 문제 해결에 대한 무한 긍정 메시지와 치솟는 주가로 대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메시아적 존재다.

돈룩업 리사이징

메릴 스트립이 트럼프에 빙의해 연기하는 대통령은 거대 문제 해결은 IT구루에게 넘기고 정권 유지에만 몰두한다. 관료들은 큰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하다. 대중에도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여전히 말초적인 뉴스와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인터넷 밈 만들기에만 여념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fact)이 명확해진 상황에서도 사회는 두 편으로 나뉜다. '#룩업(LOOKUP)' 즉, 혜성이 다가오는 하늘을 직시하자 쪽이 있는가 하면, '#돈룩업(DON'TLOOKUP)"을 외치는 무리들도 있다. 사실과 주장이 뒤죽박죽인 세상이 되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휴대폰과 소셜미디어로 세계는 동기화(synchronized)되었다.

감독은 현실을 직시하자는 #룩업(LOOKUP) 진영에도 날카로운 비판을 놓치지 않았다. 룩업 진영의 문제 해결 방식은 놀랍게도 대형 콘서트장에 모여 TV뉴스에 출연했던 철없는 톱스타(아리아나 그란데)와 '저스트룩업'(Just Look UP)이란 노래를 함께 부르며 힐링타임을 갖는 것이다.

"하늘을 좀 올려다봐
빌어먹을 FOX 뉴스는 좀 끄고
우리 모두 곧 죽을 테니까

올려다봐 위를 봐
여기 당신의 품 안에서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


혜성 충돌, 지구 멸망이 콘서트장에 모여 인기 가수의 노래에 맞춰 야광봉 흔들어 해결할 문제인가. 진지함을 못 견뎌 하는 세태와 그럴싸한 메시지와 '세계관'으로 포장된 연예화된 세계에 감독은 비수를 던진다. 자신의 출세작인 '빅쇼트'에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부른 미국의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특유의 '낯설게 하기' 스타일로 풍자했던 아담 매케이 감독은 '돈룩업'에서는 현실 세계와 비슷한 인물들을 재조립해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폭발적으로 결합한 현대 사회의 '망조'를 우화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한 블랙코미디로 비판한다.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치부할 수도 있는 이런 우화가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팩트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병폐를 병폐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풍자영화라 해도 실존 인물에 바탕한 캐릭터를 너무 도식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살짝 아쉽지만, 혜성의 위치에서 지구라는 행성의 현대 사회를 내려다보는 관점(point of view)을 제공하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웃으면서도 웃고만 있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그러면서도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드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 진다. 인류는 감염됐다. 아이폰 출시 14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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