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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메르켈 이전과 이후의 독일은 어떻게 바뀌었나?

[마부작침] 메르켈 이전과 이후의 독일은 어떻게 바뀌었나?
12월 2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퇴임식이 있었어요. 그리고 어제, 12월 8일 차기 총리인 올라프 숄츠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메르켈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죠. 2005년 11월 22일부터 2021년 12월 7일까지 장장 16년 동안 독일을 이끌어온 앙겔라 메르켈. 2010년을 제외하고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4년 동안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메르켈이 오늘 레터의 주인공입니다.

메르켈 총리의 수식어에는 최초, 최초, 최초라는 단어가 연이어 나와요. 독일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이자, 최초의 과학자 출신이기도 하고, 최초의 여성 총리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역대 최연소로 총리에 자리에 오르고 16년이라는 장기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그리고 독일 최초로 자발적으로 퇴임한 총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마부뉴스가 준비한 레터는 연말을 맞이한 <올해의 인물> 특집입니다. 16년 동안 앙겔라 메르켈의 독일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메르켈 이전의 독일과 현재의 독일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럼 출발해 볼까요?
 

1. 메르켈 이전 독일은 유럽의 병자였다


지금의 독일은 명실상부한 유럽의 강대국이자 EU의 리더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메르켈 이전의 독일의 이미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16년 전 만 해도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을 정도였거든요.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하며 내려올 생각이 없고, 고용률은 올라가지 않고, 기업은 성장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 환자였죠.

얼마나 심각했는지 데이터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를 찾아서 분석해봤습니다. 2000년대 초반을 살펴보면, 2000년부터 메르켈 임기가 시작된 2005년까지 독일의 고용 인구는 3,600만 명 정도 수준이었어요. 실업자 인구는 300만 명, 400만 명을 넘어 500만 명을 향해 다다르고 있었죠. 2004년의 실업률 12.3%는 2차 세계대전 이래 최고 수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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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한 수치를 떠안고 시작한 메르켈 정부는 2019년까지 독일의 고용 인구를 500만 명 가까이 증가시킵니다. 2005년의 독일의 고용 인구는 3,605만 명이었는데, 2019년엔 4,104만 명까지 끌어올렸죠. 그 사이 실업자 인구는 458만 명에서 136만 명으로 340만 명 감소했어요. 고용률은 2005년 65.4%였던 수치가 2019년엔 76.7%까지 올라갔죠. 위의 그래프를 보면 매년 상승하는 고용률의 수치를 볼 수 있습니다. 실업률은 11.3%에서 3.2%로 뚝 떨어졌죠.

메르켈은 이전 정부인 슈뢰더 내각에서 만들었던 하르츠 법안을 이어받아 개혁 정책을 꾸준히 이어나갔습니다. 하르츠 법안은 실업급여 같은 복지혜택을 조금 줄이고 대신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슈뢰더 내각은 진보 정당이 집권한 정부였고, 메르켈 내각은 보수 정당이 집권한 정부였거든요.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책을 낼 법도 한데, 메르켈은 정책에 진보, 보수를 구분 짓지 않았습니다. 정당 성향에 국한되지 않고 정책을 선택했고, 결국엔 노동 개혁을 이뤄낸 겁니다.
 

2. 난민에게 문을 닫지 않았던 메르켈


난민의 엄마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메르켈과 난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입니다. 2015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서유럽으로 유입된 난민은 유럽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메르켈의 독일은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피하기 위해 독일로 들어오는 난민들에게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외국인 인구가 크게 늘어났죠.

아래의 그래프는 2005년과 2020년의 독일인과 외국인의 인구를 비교한 자료입니다. 역시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입니다. 검정선 막대가 2005년입니다. 2005년엔 독일 인구 8,244만 명 중에 외국인은 729만 명으로 8.8%였지만 2020년엔 외국인이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12.7%로 뛰어오르죠. 연령대로 보면, 외국인은 15세 이상 20세 미만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인구수가 늘어났어요. 반면 독일 국적의 인구는 50세 미만은 확 줄어들었습니다. 0~5세 그리고 30~35세를 제외하고는 모든 연령대에서 인구가 감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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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령 사회였습니다. 출산율을 늘지 않고, 고령의 인구는 늘어나면서 독일 경제의 활력이 줄어든 상황이었죠. 하지만 이민자와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경제활동 인구가 증가했고, 활발한 경제 활동이 생겨나자 독일 경제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국민 통합에서는 어려움을 겪었어요. 난민 유입이 급증했던 2015년과 2016년에 난민의 범죄로 사회가 혼란스러웠거든요. 난민 유입이 지속된 만큼 범죄건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진 않았지만 타지인에 대한 경계와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반대하는 국민 여론도 늘어났고 그 틈을 극우 정당이 파고들면서 메르켈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지게 됐죠.
 

3.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독일이 통일된 지 벌써 31년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의 격차는 큰 상황입니다. 통일이 된 후부터 많이 줄여왔지만 격차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메르켈도 통일 31주년 연설에서 독일 통일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고 언급할 정도니까요. 2019년 기준으로 1인당 GDP를 보더라도 동독은 3만 27유로이지만 서독은 4만 3,449유로입니다. 실업률 역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지만 동독이 더 높은 상황입니다. 동독의 실업률은 7.1%고 서독은 5.1% 정도거든요. 아래 그래프는 2020년의 주민 1인당 가처분 소득을 나타낸 지도인데, 동독과 서독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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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동독 최초의 총리이지만 동독을 챙기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동독 지역 사람들은 2등 국민이라는 불만이 있거든요. <독일 통일 이후 현황에 관한 2021년 연례보고서>를 보면 동독 사람들의 33%가 자신들이 2등 국민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반면 서독 지역 사람들은 25% 정도죠. 거기에 난민까지 유입되면서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생각이 들고, 보수 정부가 집권했는데도 계속해서 진보적인 정책을 선보이니 불만을 느꼈던 겁니다.

그 사이를 파고든 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었어요. AfD가 동독 지역에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동독인들이 난민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거였고, 아쉬움과 불만이 많았던 동독 지역은 메르켈의 기민당보다 AfD을 지지했습니다. 실제로 동독 지역에서 AfD의 지지율이 높게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도 AfD가 1위를 차지한 지역은 모두 동독지역이었으니까요.
 

4. 보수당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2017년 베를린에서 열린 여성 20 정상회의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메르켈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 이 대답에 메르켈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죠. 퇴임을 앞둔 올해 9월 8일에서야 메르켈은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습니다. "페미니즘은 본질적으로 사회 참여나 생활 전반에 있어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이지만 메르켈 정부 내내 여성의 정치 참여는 크게 늘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메르켈이 속한 정당이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보수 정당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 여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해석도 하죠. 아래 그림에 1949년 독일의 초대 연방하원부터 올해까지 연방하원 의원 성비를 그려 봤습니다. 2005년 이후 여성의 비율이 정체 중인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2005년 여성 의원의 비율은 31.8%였고, 16년이 지난 올해는 34.9%입니다. 단 3.1%p 증가. 2017년엔 여성 비율이 31.0%였는데, 이 수치는 1998년 이후 19년 만에 최저 수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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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뿐만 아니라 기업계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독일이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가장 자주 지적받는 게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거든요. 2020년 9월 기준으로 주요 국가의 30대 상장 기업 임원진 중 여성 비율을 살펴보면 미국은 28.6%, 스웨덴은 24.9%, 영국은 24.5%인데, 독일은 12.5%로 절반 수준입니다. 임원진 중에 여성이 2명 넘게 있는 회사의 비율을 보면 미국은 97%에 달하지만 독일은 13%밖에 되질 않거든요.

메르켈은 독일 기업에 여성 임원이 적은 것은 문제라며 비판을 해왔지만 법적으로 할당제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어요. 할당제 대신 자발적으로 여성 임원을 뽑으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죠. 결국 올해가 되어서야 할당제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2011년에 법안이 제출되었으니 10년 만에 합의에 이르게 된 겁니다. 참고로 메르켈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기 총리 올라프 숄츠의 내각은 독일 최초로 남녀 동수 8 대 8로 출범된다고 해요.
 

5. 환경부 장관 출신의 친환경 정책


독일 최초의 여성 환경부 장관이었던 메르켈은 여러 환경 조약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1997년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했던 교토의정서에도 메르켈의 서명이 들어가 있죠. 총리로는 G8 회의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자는 기후협약을 이끌어내는 '기후 총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외교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독일 안에서는 전력 생산에서 재생 에너지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정책을 주진했습니다.

2005년엔 석탄의 비율이 46.7%로 절반에 가까웠는데 2020년엔 그 비율을 23.7%로 감소시켰습니다. 석탄이 줄어든 빈자리는 풍력, 태양열 같은 재생에너지로 채웠죠. 2005년엔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전체 에너지 총생산량의 7.1% 밖에 되질 않았는데, 2020년엔 그 비율을 40% 이상으로 높였어요. 다만 여전히 화석연료의 비율이 43.8%로 많긴 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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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생산에서 석탄의 비율을 줄이긴 했지만 천연가스와 석유의 비율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요. 게다가 다른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2012년엔 EU에다가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제한을 강화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기도 했거든요. 독일 자동차 산업의 특수성을 봐달라는 거였죠. 메르켈의 환경 정책은 급진적으로 감축하기보다는 가능한 선에서 감축 정책을 진행해 왔다고 보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서유럽에는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대홍수가 났습니다. 독일에서만 19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집계된 재산 피해만 100억 유로 이상이었죠. 우리나라 돈으로 13.5조 규모의 엄청난 손실입니다. 결국 대홍수 기자회견에서 메르켈은 기후위기 대응에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을 인정했어요.
 
Q. 헌법재판소가 기후변화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이유는?

독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메르켈의 기후변화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탄소 배출의 감축 부담을 2030년 이후로 떠넘기는 건 젊은 세대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부담을 미래 세대에 일방적으로 넘겨버리는 것이 미래 세대의 기본권 침해라고 판단했죠. 현재 독일의 메르켈 정책으로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일침을 가한 겁니다.
 

굿바이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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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앞둔 메르켈은 통일 31년 기념 연설을 통해 경계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삶을 고백했습니다. 우월한 서독의 교양 넘치는 시선으로 동독 출신의 메르켈을 바라봤던 차별을 이야기했죠. 그들은 메르켈이 독재와 억압적 국가 체제인 동독에서 겪어온 35년간의 삶을 "필요 없는 짐"으로 규정했고, "태어나지 않고, 속성으로 학습된 독일인"이라고 평가했어요.

어찌 보면 메르켈은 동독 출신이라서, 그리고 여성이라서 받아야 했던 차별을 견디면서 묵묵히 걸어왔을지 모릅니다. 그 차별이 어느 때는 보이지 않았을 거고, 또 어느 때엔 노골적이었을 텐데도 말이죠. 동독과 서독의 구분, 여성과 남성의 구분, 원주민과 난민의 구분. 그 안에서 메르켈은 동독 출신이지만 동독만을 대표하지 않았고, 여성이지만 여성만을 대표하지 않았고, 독일인이지만 독일인만을 대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준비한 특집 마부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마부뉴스가 선택한 올해의 인물은 메르켈에 대해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올해의 인물은 누구인가요? 아래 댓글을 통해 알려주세요!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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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김선경, 주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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