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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이재명 · 윤석열표 '공정성', 같은 단어 다른 의미

[깊은EYE] 이재명 · 윤석열표 '공정성', 같은 단어 다른 의미

모든 정권 공정 표방, 국민은 여전히 공정 갈망 왜?

고철종(논설위원)

작성 2021.12.09 11: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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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100일이 깨졌다. 그만큼 선거 열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기기묘묘한 인신공격과 편 가르기, 어설픈 이미지 메이킹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가장 강력하고 정당한 경쟁 수단은 공약이어야 하고, 그 공약이 핵심 지지층을 다지고 반대편을 흔들며 중도층을 끌어들이는 재료가 돼야 건강한 선거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전선에 나부끼는 공약의 깃발에 똑같은 공정의 단어가 보인다. 대선 선두 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 공정한 나라 건설을 제1의 목표로 표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달 6일에는 윤석열 후보가 선대위 출범식 연설에서 공정을 8차례나 언급하며 '윤석열표 공정'으로 나라의 기본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이재명 후보는 시대정신을 '공정성 확보'로 규정하고 '전환적 공정 성장'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들 두 후보는 또 이달 초 함께 참석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한 목소리로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주자들만 그럴까. 문재인 정부 역시 공정을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 미래 권력들이 모두 공정을 외치는 것은 국민 전체 혹은 최소한 절반은 항상 공정에 목마르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정이 항상 최상의 가치인 국가에서 공정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국민 대다수가 합의한 '공정성' 정의 없이, 각자 다른 색깔의 공정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주의 공정과 근로자의 공정이 같을까. 정규직의 공정과 비정규직의 공정, 혹은 부자의 공정과 빈자의 공정은 어떨까. 선생의 공정과 학생의 공정이 동일할까. 청년과 노년, 남성과 여성의 공정은 같을까. 이른바 진보 언론의 공정 보도와 보수 언론의 공정 보도는 왜 그렇게 다를까.

똑같은 바위산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양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늑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국가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공정의 산을 바라보며, 저게 바로 공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모두가 공정을 외치지만, 현실에서는 불공정하다는 아우성이 판친다.

공정성은 누가 어떤 이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혹은 어떤 시대적 배경과 문화 및 제도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공정성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공정성의 판단 원칙까지도 달라진다. 그러기에 바라보는 위치와 시대적 요구에 대한 보편적 공감대가 있어야 공정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우리 시대가 진정으로 바라는 공정성은 어떤 것일까.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공정성을 선택하고, 그 정의에 대해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동의해야 한다. 성향이 서로 다른 이념이나 가치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없다. 그것은 이상론일 뿐이다.

이상론에 빠지면 의도와 결과가 겉돌게 된다. 선한 의도의 정책이 악한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주려는 좋은 의도가 일자리를 감소시킨다. 일을 더해서 한 푼이라도 수당을 챙겨야 하는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단축은 소득 감소만 불러올 뿐이다. 평준화 정책에 겉으론 찬성을 표명하면서도 내 자식을 특별하게 키우려했던 시도가 청문회 때마다 어김없이 발각되는 것은 또 왜일까.

평등, 공평

이른바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평등'이 동시에 양립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성장을 중시하면 양극화가 심화되고, 복지를 중시하면 성장 동력이 약화되는 게 엄혹한 현실이다. 능력에 따른 차등을 인정하는 자유를 선택할 것인가, 결과의 평등을 중시할 것인가에 따라 공정의 관점은 달라진다.

지도자는 공정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에 따라 반대 표심이 달아나는 게 두렵다면, 보완책을 강조하되 최소한 방점에 대한 선택은 필요하다.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천명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것이 거짓이란 걸 국민은 체험으로 안다.

임금을 올려 소비를 촉진하고 그를 통해 생산을 늘려 성장을 이루겠다는 '물 좋고 정자 좋은'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는 어떠한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던 현 정부의 슬로건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떤가. 모든 걸 다 이루려고 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공정성'이란 단어가 이렇게 혼란스럽게 휘둘린 때가 있었을까.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공정을 외치는데, 정작 무엇이 공정성인지 아무도 모르거나, 최소한 그 정의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혼돈의 대한민국. 우리는 가식의 공정을 던져버리고, 시대정신이 간절히 요구하는 공정성이 무엇인지를 지금이라도 대선 후보와 국민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고철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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