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전력증강 계획 차질' 앞에 선 군과 방사청…무엇이 문제인가

[취재파일] '전력증강 계획 차질' 앞에 선 군과 방사청…무엇이 문제인가
군 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존 F. 케네디 미국 35대 대통령은 포드 자동차의 독불장군 사장 출신의 로버트 S. 맥나마라를 국방장관에 기용했습니다. 맥나마라 장관은 이른바 시스템 분석을 군에 도입해 무기 획득 방식에 일대 변혁을 시도했습니다. 이전에는 각 군이 제 몫의 예산을 어떻게 쓸지 결정했는데 맥나마라는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경쟁 사업들의 상대적 가치를 비교해 각 군에 예산을 배분했습니다. 맥나마라의 개혁은 군의 반발을 민군 간 역동적 상호작용으로 승화시키며 미군의 전투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국회 국방위에서 강은호 방사청장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맥나마라의 시스템 분석 개혁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차관보실이 맡았습니다. 맥나마라의 차관보실은 우리로 치면 방사청입니다. 그렇다면 무기 획득 전문기관인 방사청은 군과 긴밀히 호흡하며 맥나마라의 차관보실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맥나마라 방식을 한국적으로 변용하면 각 군의 소요 제기에 방사청은 유사 임무의 사업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뺄 것과 살릴 것을 가리기 위해 토론해야 합니다. 방사청의 공무원들과 방사청 소속 군인들이 치고받은 끝에 예산안을 도출하고, 국회는 매의 눈으로 심의를 합니다.

당연하고 합리적인 절차입니다. 하지만 2022년 방위력 개선비 예산 편성 및 심의 과정을 통해 드러난 상황을 살펴보면 방사청은 그렇게 안했습니다. 예산 편성의 기본도 못 지킨 항목이 많아 국회 국방위에서 사상 최대 예산 삭감의 치욕을 당했습니다.

방사청이 2006년 개청 이래 문민화에는 성공했지만 군의 소요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군은 전력 증강의 차질을 초래한 방사청에 무겁게 문제제기해야 하지만 남의 일 보듯 하는 현실도 예사롭게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군과 방사청 간, 그리고 방사청 내부에서 민군 간의 대화, 소통, 상호작용이 많이 모자랍니다.
   

공무원 75 대 군인 25의 방사청, 민군 간 소통은?

방사청 직원은 총 1천 6백여 명입니다. 2006년 개청 이래 10년이 지나도록 공무원과 군인의 비율은 50 대 50이었습니다. 문민화 요구에 점차 공무원 편입 속도가 빨라져 현재는 공무원 1천 2백 명 대 군인 4백 명 선입니다. 문민화의 기준으로 내세웠던 70 대 30을 초과한 75대 25 비율입니다.
 
정부 과천청사 3동에 자리잡은 방위사업청
 
75 대 25의 구조를 토대로 방사청에는 견고한 신분제가 형성됐습니다. 다수의 공무원이 소수의 군인을 지배하는 구조입니다. 최근 들어 청장, 차장, 각 본부장 등 고위직에 군인의 자리는 없다시피 하고, 이에 따라 진급과 보직 배정도 공무원 우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사청의 한 영관급 장교는 "군 소요의 긴급성을 방사청에 인식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다른 영관급 장교는 "군의 논리와 기준, 문민의 논리와 기준이 충돌하면 문민 우위의 틀 안에서 토의하고 결론을 도출하면 좋으련만 방사청에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사청의 군인들은 곁방살이 신세로 전락해 방사청 내 민군 대화는 가동되기 어려운 실정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무기 싸게 들이려고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원 감사 피하면서 권한을 유지 또는 확대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 75대 25 방사청의 현주소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인도네시아의 KF-21 개발 분담금 중 30%를 현물로 받는 유례없이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고도 "120% 만족한다"는 자화자찬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던 방사청장의 행동도 이와 관련된 하나의 사례입니다.
  

공군·육군, 전력화 차질에도 무덤덤…해군만 제 목소리

방사청이 예산 작업 제대로 못해서 어그러진 무기 개발 및 도입, 개량 사업은 패트리엇 팩3, F-35A, 대형 공격헬기, 대형 수송기, 경항모, 조기경보기, 이동형 장거리 레이더, K1E1 전차 등 다양합니다. 소해헬기와 상륙공격헬기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내년은 이 지경이지만 후년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각 군 지휘부가 움직일 때입니다. 방사청에 나가 있는 군인들을 소환해서 자초지종을 듣고 원인과 대책을 찾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각 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의 한 참모는 방사청 근무 군인들을 불러 진상을 파악하고 군의 뜻을 방사청에 전달하자고 제안했지만 해당 군 참모총장이 거절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참모총장의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한국형 항모가 항진하는 상상도
   
윗선 눈치 감수하고 참모총장이 직접 방사청에 쓴소리할 수도 있습니다.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만이 지난 25일 해군 페이스북에 경항모 예산 삭감에 대한 유감과 경항모 추진의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부석종 총장은 예산 삭감된 항모에 대해 "국제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이익을 지켜낼 핵심적 합동전력"이라며 경항모 반대론을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군은 결정된 정책에 절대 복종해야 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의견을 내놓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산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군의 활발한 의견 개진은 군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이것은 반발이 아니라 문민통제의 조언 기능입니다. 민군 간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한 의사결정은 문민통제의 꽃입니다. 군의 무조건적 복종은 오히려 군의 전문성을 고사시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입 꾹 다문 군의 모습에 익숙해져서 부석종 총장의 당연한 제 목소리 내기가 낯설어 보일 지경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