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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도망간 경찰과 죽는 순간까지 책임 다한 교환원…우범곤 '총기 난사사건'의 전말

[스브스夜] '꼬꼬무' 도망간 경찰과 죽는 순간까지 책임 다한 교환원…우범곤 '총기 난사사건'의 전말
1982년 4월의 그날엔 무슨 일이 있었나?

25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대한민국 악인열전 - 우범곤 총기 난사사건'편이 전파를 탔다.

1982년 4월 26일 밤, 경남 의령군 궁류면. 6·25 전쟁 당시 인민군도 못 찾았다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에 의문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날 마을 사람들은 반상회를 위해 한 곳에 모여있던 이들은 일순 공포에 떨었고, 그때 누군가가 주민 전원배 씨를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전해진 믿지 못할 소식. 우체국에서 교환원으로 일하던 그의 막내 여동생이 죽었다는 것. 이에 전 씨는 밖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찾아 우체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그에게는 끔찍한 현장이 펼쳐졌다.

그의 막내 동생 전은숙 씨가 일하던 우체국에는 그를 비롯한 전 직원이 모두 사망했던 것. 이는 범인이 통신 수단을 차단해 마을을 고립시키기 위해 우체국을 노렸고, 이에 우체국 직원들이 모두 참변을 당했던 것이었다.

우체국뿐만이 아니었다. 우체국 바로 앞에 있는 궁류지서, 오늘날로 치면 지구대에도 멀쩡하지 못했다. 유리창은 다 깨지고 근무하던 경찰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또다시 우체국에서 600미터 정도 떨어진 압곡리에서 총성이 시작됐다.

이날 마을을 아비규환으로 만든 범인은 단 한 명. 그는 소총 2자루를 어깨에 메고 수류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노렸다. 불이 켜진 집을 찾아 집집마다 다니며 총을 쏴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 것.

불을 켠 집과 달리 불은 끈 집들은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목숨을 구한 집들이 있었다. 당시 이 마을의 택시 운전사 전 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위험하니 불을 끄라고 알려줬던 것. 그리고 그는 골목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총성이 시작된 지 1시간도 채 안 되어 19명이 살상됐다. 그리고 범인은 곧 운계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운계리의 한 슈퍼를 찾은 범인은 문을 두드리며 슈퍼 안주인에게 사이다를 하나 달라고 했다. 그리고 슈퍼 안주인은 어떤 경계심도 없이 문을 열고 그에게 사이다를 건넸다.

그 이유는 바로 늦은 밤 슈퍼를 방문한 것이 경찰 제복 차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 경찰이었던 것. 이에 주민들은 그가 범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슈퍼 안 주인이 반갑게 맞은 이는 바로 궁류지서의 27세 우범곤 순경.

그는 무슨 일이냐 묻는 주민에게 태연하게 "공비가 나타나서 비상이 걸렸다"라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청한 음료수를 모두 마신 후 총을 장전해 바로 발사해 살해했다.

태권도 3단, 합기도 3단, 특히 사격이 뛰어났던 우 순경은 4개월 전 이 마을에 나타났다. 서울시경에서 근무하다가 사고를 쳐서 이곳으로 좌천됐던 것. 그리고 그는 이 마을의 한 여인 전 씨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전 씨 집에서는 이들의 관계를 결사반대했다. 이유는 바로 술만 마셨다 하면 개가 되는 우 순경의 주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꺾기 어려웠다. 결국 이들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거를 시작했고, 2개월이 흘러 문제의 날인 1982년 4월 26일이 됐다.

이날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우 순경의 가슴에 파리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이를 본 전 싸는 그의 가슴에 앉은 파리를 죽이기 위해 우 순경의 가슴을 쳤다. 그러자 우 순경은 불같이 화를 냈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었다.

이후 지서에 출근한 우 순경은 분이 풀리지 않아 소주 2병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 동거녀 전 씨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말리는 주민들에게도 욕설과 폭행을 했다. 그의 행패를 두고 볼 수 없던 주민들은 이에 거세게 반응했고, 우 순경은 "다 나를 무시해? 오늘 끝을 보고 말 테다"라며 이성을 잃고 지서의 무기고로 향했다.

지서의 무기고에서 소충 2자루, 총탄, 수류탄을 잡히는 대로 챙긴 우 순경은 9시 40분 우체국의 직원들을 사살하고 통신망을 차단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광란의 살인극이 시작됐다.

우 순경은 불 켜진 집마다 총을 난사하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수류탄을 던지는 등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사살했다. 그리고 이동 중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곧바로 조준사격을 해 살해했다.

밤 12시 그는 평촌리의 왁자지껄한 한 집을 찾았다. 이곳은 바로 이종백 씨의 이모부 장례식. 그는 부의금까지 내며 조문을 했고,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소리를 지르며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고 곧 총을 난사해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 특히 그는 울음을 터뜨린 아기를 발견하고 "아직 안 죽은 게 있어?"라며 아기까지 쏴 죽였다.

한밤중의 총소리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22살 방위병 서정주 이병도 있었다. 그는 신고를 위해 집을 나섰고 지서로 향하는 길 우 순경을 마주쳤다. 그의 등장에 안도한 서 이병은 그가 범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 순경은 앞서 그랬던 것처럼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또한 비상 상황이니까 마을 사람들 한 집에 다 모이도록 했다.

이에 서 이병은 자신의 큰 아버지 집에 모두 모여있다며 우 순경을 그곳으로 데려갔다. 우 순경은 "위험하니까 모두 방에 들어가세요"라며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도 못 돌아가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인질 아닌 인질이 된 것.

그런데 궁류지서의 경찰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지서 중 하나인 궁류지서의 직원은 단 4명. 이날 그중 지서장과 차석은 마을 유지들의 접대를 받으러 온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이들은 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우 순경의 범행 사실을 안 이들은 자신들이 살았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다. 그리고 소총에 실탄을 장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들이 향한 곳은 우 순경이 있는 곳이 아닌 그가 이동한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서 은신했다. 범인 수색, 주민 대피, 경보 및 사태 진압 등 응분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만 신경 썼던 것. 특히 지서 바로 앞에는 마을 전체에 안내 방송이 가능한 시스템이 있음에도 그 조차도 하지 않아 충격을 안겼다.

사실 궁류면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의령 경찰서에 첫 번째 신고가 들어간 것은 10시 30분쯤. 한 주민이 총성을 듣고 이장의 집으로 가서 신고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우체국 교환원 전원배 씨의 막내 여동생 전은숙 씨가 숨지기 직전 이장집의 행정전화와 의령우체국 간의 코드 연결을 했고 이에 신고가 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뒤늦게 교환원이 사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신고자 이 씨 이들이 숨기지 직전까지 마지막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에 신고가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라며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임무에 충실했던 23살의 교환원 전은숙 씨의 행동은 자신의 목숨 부지만 신경 쓴 경찰들과 대비되는 부분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경찰은 10시 30분 즈음 신고를 받았음에도 곧바로 마을로 향하지 않았다. 무기고 열쇠를 갖고 있는 직원이 술을 마시러 가서 출동할 수 없었다는 황당한 상황이 드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적어도 상갓집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놓쳤고, 마을에 도착해서도 곧바로 수색에 돌입하지 않고 현장에서 떨어진 다리에서 매복하며 가만히 대기만 해 또 다른 기회를 놓쳤다.

사실 당시 현장에는 현장 책임자도 자리에 없었다. 현장 책임자인 의령경찰서장은 그날 부산에 있다가 뒤늦게 보고를 받고 복귀해 지서에 틀어박혀 아무 조치 없이 상부 보고만 하고 있었던 것.

이에 신고를 위해 의령경찰서를 찾은 주민들은 분노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고 있다며 빨리 마을로 가자는 주민에 경찰서장은 "밤인데 어디를 가냐"라고 했다. 이에 주민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전부 죽어가고 있는데 서장님은 앉아 있을 거냐"라고 따졌고, 그러자 경찰들은 서장에게 반기를 든다며 주민들을 내쫓았다.

새벽 3시 30분, 2시간 넘게 총소리가 멈추자 그제야 경찰들은 마을에 진입했다. 그리고 우 순경은 멀리서 다가오는 불빛을 발견했다. 이를 본 주민들은 "우 순경 지원병력이 왔나 봐. 이제 우리 살았어"라고 기뻐했다. 그런데 이때 우 순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방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망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혼자 가지 않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 그렇게 우 순경의 6시간에 걸친 살육은 끝이 났다.

우 순경 사건의 사상자는 무려 90명. 그는 무기고에서 탈취한 144발의 탄환 중 단 9발만 남겼다. 그러는 동안 경찰은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았고, 단 한 명의 주민도 구하지 못했다.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또한 20살도 안 된 아이들이 16명, 그중 10살 이하는 6명에 생후 1개월 된 아이도 있어 분노를 자아냈다.

사망 56명, 부상 34명. 단 한 사람이 90명의 사상자를 낸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사건으로 이 사건은 부끄럽게도 단시간에 1인 범죄 최고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

사실 우 순경은 순경 된 지 4개월 만에 청와대 경비대로 발탁됐다. 그러나 8개월 만에 좌천됐다. 원인은 바로 난폭한 주사.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는 8개월 만에 청와대 경비대 근무 부적격 판정을 받고 의령군 궁류지서로 전출됐다.

이에 이야기꾼들과 이야기 친구들은 부적격 판정을 받은 후 다른 곳으로 전출을 보낼 것이 아니라 해임을 시켰더라면 이 사건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이 사건의 최초 신고는 10시 5분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첫 총성이 9시 40분경 들린 것을 생각하면 범행 직후 신고가 들어갔던 것. 또한 신고 관련 사항을 메모하는 경찰 측의 상황일지가 찢겨나간 흔적이 발견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에 경찰은 기록 잘못으로 2장을 찢어버리고 다시 쓴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으나 이 것이 최초 신고 시각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일으켰다. 그러나 최종 결론은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조사를 할수록 의혹은 커지고 비난 여론도 커진 이 사건. 하지만 후속 조치가 어느 때보다 빨랐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민심을 잡기 위해 바빴다. 그러던 중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좋아지고 있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던 것.

이에 전두환 정권은 위로금과 장례비 지급, 세금 감면, 자녀들 학비 면제, 예비군 훈련 보류, 마을 개발사업 약속 등으로 민심을 잠재웠다. 그리고 언론 탄압으로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관련 보도도 금세 사라졌다.

사건 직후 마을에는 사흘 동안 장례가 치러졌다. 상갓집에서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던 상주 문 씨는 장례를 무려 3번 치렀다. 어머니와 세 자녀, 조카들을 모두 함께 잃었던 것.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는 "언어장애가 있던 그 상주가 기억난다. 언어 표현을 못하다 보니 상여가 나갈 때 맘껏 울지도 못하고 맘 속으로 우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다. 상주가 울지 못하니 동네 사람들이 대신 다 같이 울어줬다"라고 떠올리기만 해도 안타까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이야기꾼들은 오늘의 이야기를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숫자였다고 했다. 자료마다 관계부처마다 이 사건의 사망자 숫자가 제각각이었던 것. 언론 보도에서도 처음에는 56명 사망이었던 것이 10년 전부터 62명 사망으로 바뀌었다. 보통 전문가들이 말하는 사망자 수는 62명.

이에 방송은 정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 경찰청 등 관계부처에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그리고 경찰 측은 최초 보고 자료에는 56명으로 기재되었으나 "사건 이후 부상 정도가 심하여 사망에 이른 경우 등 추가 사망자의 정보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혀 보는 이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보통 큰 피해를 남긴 사건은 백서를 남겨 국민에게 사건에 대해 알린다. 이는 정확하게 기억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악의 살인 사건 중 하나인 우 순경 사건에 대한 백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제각각의 사연을 갖고 사망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할 위령비조차 세우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내년 4월 26일이면 40주기를 맞이하는 우 순경 총기 난사 사건. 이에 희생자 가족들은 "내년에는 위령제를 꼭 위령비 앞에서 하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날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꾼과 친구들은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과 내가 몰랐다는 것에 놀랐다"라며 "그때 상황들이 조금만 바뀌었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다. 분명 기회가 있었다"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온천 다녀오신 분들이 우 순경을 찾으러만 왔어도 어땠을까"라며 "정말 보호해야 할 이들은 반대편으로 도망이나 갔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다"라고 덧붙였다.

레드벨벳 슬기는 "이 방송을 계기로 이 사건과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위령비가 꼭 세워졌으면 좋겠다"라며 두 손을 모았다. 장성규는 "유족들이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데 평생을 그 소망 하나로 지내고 있지 않냐"라며 "이 사건의 책임이 있는 국가가 해야 된다. 국가가 해야 할 마지막 의무가 아닐까"라고 지금이라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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