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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방위력 개선비, 사상 최대 삭감…참사인데 담담한 그들은 누구인가?

정부과천청사 방위사업청 (사진=방위사업청 제공, 연합뉴스)

지난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년 국방 예산 중 방사청이 담당하는 방위력 개선비 6천122억 원이 삭감됐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방위력 개선비 17조 3천365억 원에서 연구개발 관련 예산 407억 원이 증액된 데 반해 각종 무기의 도입 및 성능 개량 관련 예산 6천529억 원은 삭감돼 전체적으로 6천122억 원 감액된 것입니다.
 
2006년 1월 방사청이 개청한 이래 최대 규모의 삭감입니다. 방사청은 정부로부터 돈 타서 무기 획득하는 기관인데 본연의 업무 추진을 위한 내년 예산 농사에 실패했으니 참사라고 부릅니다. 첫 내부 승진으로 강은호 청장이 방사청 1인자에 오른 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왜 삭감됐는지 내역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방사청의 무능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감액해 마땅한 사안이 수두룩한 가운데 긴요한 무기 개발 및 도입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소요를 제기한 군은 부글부글 끓고 있고, “국방은 진보”를 추구하던 청와대도 다소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정작 방사청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별 동요가 없습니다.
 
불요불급한 곳에 혈세를 쏟아부어선 안 된다는 전제 하에 국회가 매의 눈으로 과잉 예산을 찾아내는 절차를 거친 합당한 결과이지만, 그에 앞서 방사청은 도대체 어떻게 예산을 편성했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묻고 싶습니다. 방사청은 “개청 15년 만에 가장 엉터리로 예산을 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청장, 차장, 본부장 등 고위급 공무원들은 지금 아무 책임도 못 느끼는 것 같은데, 사실 그들의 책임 참으로 큽니다.
 

어떤 예산 어떻게 삭감됐나

해군 제작 '한국형 항모' CG 영상 중 함재기의 항모 이륙 장면

수직이착륙형 무인정찰기 사업은 31억 3천500만 원 전액 삭감입니다. 사업타당성조사가 나오기도 전에 예산을 올렸는데 사업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전술 정보통신체계 성능 개량은 사업 분석에서 연구개발 방식보다 기술변경 방식으로 하면 기간은 16개월, 예산은 32억 원 줄어든다고 나왔지만 방사청은 비경제적인 연구개발로 밀어붙였습니다. 47억 8천400만 원 전액 삭감입니다.
 
이동형 장거리 레이더는 전력화 시기가 2026년인데 벌써 주장비 사겠다고 청구서를 들이밀었습니다. 관련 부지 매입도 안 했으면서 공사 착수금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180억 원 감액됐습니다. 지상 전술 C4I, 소화기 음향탐지기도 각각 내년 전력화, 계약 체결이 어렵지만 예산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K1E1전차 성능 개량은 민관 공동투자 연구개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부의 사업비 분담 비율은 75%입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분담 비율 100%에 해당하는 예산을 달라고 했다가 8억 8천만 원 깎였습니다. 신속획득사업 예산은 494억 5천900만 원 요청했는데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무엇을 살지 소요도 확정 않고 돈부터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특수작전용 기관단총은 개발업체 대표 및 임원들의 기밀 유출 혐의 기소로 올해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올해 예산은 내년으로 전액 이월됩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이월액 11억 6천800만 원을 감안하지 않고 예산을 신청했다가 고스란히 깎였습니다. GPS화물낙하산, KUH-1비행훈련 시뮬레이터 예산도 같은 이유로 감액됐습니다.
 
하나같이 대놓고 말하기 창피한 삭감 사례들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한참 더 있습니다. 방사청은 할 말 없습니다. 방사청의 민낯입니다. 황당한 예산안으로 국회에 밉보였는지 각 군의 핵심 장비 증강 사업도 국회 국방위에서 줄줄이 제동이 걸렸습니다. 패트리엇 팩3 도입, F-35A 성능 개량, 대형 공격헬기 2차, 대형 수송기 2차, 경항모, 조기경보기 2차 등의 사업 예산이 상당액 깎인 것입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방사청이 일차원적인 가감승제 계산에서부터 고차원적인 국방 전략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번 삭감을 참사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그럼에도 태평성대 방사청

작년 12월부터 방사청을 이끌고 있는 강은호 청장 (사진=국방 TV 캡쳐)

개청 15년 만의 최대 삭감, 그것도 남 부끄러운 삭감이라는 대형 사고가 벌어졌으면 방사청은 백번 근신해야 합니다. 국회와 합참, 각 군에 사죄의 뜻을 전하는 것이 도리 같습니다. 강은호 청장은 직원들에게 “나부터 반성한다”, “다 같이 심기일전하자”,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참회와 호소의 이메일이라도 보냄직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난 주말 방사청 직원들에게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한 통씩 전달됐습니다. 방사청과 모 경제 전문 케이블 채널이 함께 제작한 항공기술 관련 프로그램의 시청을 방사청 직원들에게 독려한 문자메시지입니다.
 
군의 한 소식통은 “방위력 개선비 최대 삭감이라는 참사로 기운 빠지는데 방사청이 휴일에 회사 홍보나 다름없는 프로그램을 보라는 한가한 문자를 보냈다니 말문이 막힌다”, “누가 이런 지시를 했는지 참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모 방산업체의 고위급은 “방사청이 혈세로 외주 제작한 방사청 홍보성 프로그램일 텐데 지금 분위기에서 다 함께 보자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다 방사청 문 닫을라

방사청은 존재 이유와도 같은 방위력 개선비 확보 임무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군의 전략과 전술, 무기 소요에 대한 전문성, 국가 안보에 대한 사명감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민화한다며 군인들 몰아내고 공무원들 위주로, 공무원들 중심으로 방사청 조직을 꾸렸더니 무기 획득 과정에서 안보적, 전략적, 전술적 판단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1천600명 직원 중 400명으로 쪼그라든 군인들은 목소리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비대해진 문민은 관성에 빠지고, 초라해진 군인은 의지를 상실하는 '방사청 문민화의 함정'입니다.
 
반면, 절차와 규제 늘려 권한 확대하는 공무원 특유의 생존 방식은 기가 막히게 공고화됐다는 웅성거림이 여기저기에서 들립니다. 도입이든 개발이든 사업의 기간과 장애물은 점점 늘어나고 효율성은 추락하는데, 공무원들의 방사청 근무 선호도는 치솟는 역설적 상황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좋은 무기 획득하는 국가 안보의 디딤돌이 아니라, 강남 생활권을 향유할 수 있는 경기도 과천의 쾌적하고 매력적인 직장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방사청은 노무현 정부에서 ‘소명(召命)을 각인한 공직자의 치열한 일터’로 탄생했습니다. 15년 만에 ‘복지부동 공무원의 안락한 일자리’로 퇴락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2006년 1월 출범할 때 내걸었던 비전과 목표를 다시 꺼내 정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성 못 하면 방사청 개청 20년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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