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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임박한 장성 인사…군 휘감아 도는 나쁜 정치

작년 9월 청와대에서 원인철 합참의장,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등이 대통령에게 보직 신고를 하고 있다.

군 장성 인사에는 불변의 원칙이 있습니다. 안보와 국방의 강화입니다. 장병들이 목숨 걸고 따를 수 있는 인성과 지성, 용기, 경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장군 시키고 주요 보직에 앉혀야 합니다.

이론은 그러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권 초기에는 여권이 자기네 사람을 장군으로 진급시키고 주요 보직에 앉히는 데 혈안이 됩니다. 다행히도 정치는 군 인사에서 차츰 퇴장해 정권 후반기쯤 되면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권력이 약해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내년 3월 대선을 넉 달 앞두고 이번 정부의 마지막 장성 인사가 곧 실시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상 10월에 하는데 연기된 하반기 준장 진급 및 보직 인사 뿐 아니라, 정치 중립을 위한 임기 보장의 차원에서 올 하반기에는 없는 줄 알았던 4성 장군 인사도 이번 주에 단행된다고 군 주요 당국자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당장 사나흘 안에 4성 장군 인사가 이뤄지고, 이어 이달 중에 준장 진급 및 보직 인사가 이어진다는 전망입니다.

대선 넉 달 앞둔 정권 말기에 하는 4성 장군 인사도 옳지 않지만, 이른바 유력자들이 인사 개입하려고 바삐 움직인다는 진술이 곳곳에서 나와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몇몇 유력자들은 능력도 없고 자격도 안 되면서 군의 상왕(上王)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마지막 장성 인사까지 손을 뻗쳐 자기 사람들에게 억지로 한 자리 내주려고 몰두한다는데 이는 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다음 정부의 국방 정책 수립에도 큰 부담이 됩니다. 군인들이 자리를 탐해 유력자들에게 호응한다면 그 자체가 정치 행위입니다. 불법이고 군의 악(惡)입니다.
 

인사철이면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전직 장관

우리 군 4성 장군은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육군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등입니다. 이중에 일부가 이번 주에 교체된다는 말이 국방부에 파다합니다.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이 현재 4성 중 현직 재직기간이 가장 깁니다. 근 1년 반째입니다. 내년 4월까지 임기를 채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는데 느닷없이 교체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해군 제독이 있습니다. 해당 해군 제독 이름 뒤에는 모 전직 장관과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의 여당 정치인 이름이 따라다닙니다.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모 전직 장관과 여당의 한 정치인이 이번 정부 마지막 군 인사에서 자기 사람을 해군 참모총장에 앉히려고 애쓴다는 이야기는 상식처럼 돌고 있다"며 "군과 정부에 참 골치 아픈 사람들"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전직 장관은 국방부를 떠난 지 꽤 됐습니다. 그럼에도 인사철이면 어김없이 국방부와 군 주변에 나타난다는 전언입니다. 별명이 '인사 좀비'입니다. 자격은 전직 장관이고, 능력이라고는 여당 유력 정치인과 가깝다는 것인데 인사에 개입한다면 불법적, 전근대적 전횡입니다.

전직 장관과 해당 정치인은 국방부 요직을 거친 한 육군 장군의 3성 진급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말도 여러 곳에서 들립니다. 3성 진급을 노리는 이 장군 역시 이번 정부에서 군의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면에 등장했던, 보기 드문 정치 군인으로 통합니다. 국방에 정통한 여권의 한 인사는 전직 장관과 여당 정치인, 정치 군인들을 한 데 모아 "유유상종"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한때 사라졌던 합참의장 교체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해군 참모총장도 그렇지만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자리입니다. 합참의장, 참모총장 등 군 최고위직의 임기 보장은 군의 정치 중립과 같은 말입니다. 임기 보장할 테니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나라 지키라는 뜻입니다. 4성 인사의 공은 다음 정부에 넘기는 것이 순리입니다.

서욱 국방장관과 원인철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최고 지휘부가 지난 7월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여당 의원

군 인사 개입과 관련해 빠지지 않고 입길에 오르는 인물로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여당의 한 현역 의원과 몇몇 전·현직 국회 보좌관들도 있습니다. 의원 본인은 국회 국방위에서, 보좌관들은 국방부의 장관 정책보좌관이나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대선캠프의 안보 분야 실무 책임자로 포진해 장성 인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남 특정 지역 출신의 인물들을 육해공군의 장군으로 뿌리 내리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입니다. 여당 대선캠프에 예비역 장성들을 공급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인다는데, 다음 정부의 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한 현역 장교는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스며드는 스타일"이라고 이들의 행태를 표현했습니다.

군의 정치 중립은 민주주의 문민 통제의 절대 원칙입니다. 군은 여권과 야권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야 정부에 올바른 국방 정책을 조언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북한을 비롯해 주변국과 어떤 관계를 추구하든 안보는 정치 중립을 지향하기 위한 기본 전제입니다. 물론 정부의 성향이 어떻든 일단 수립된 정책에 대해 군은 좌고우면 않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는 군에 손 대면 안 되고, 군은 정치에 눈길 돌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군이 정치에 종속되는 순간 군의 조언 기능은 오염됩니다. 국방 정책은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안보 역시 정치 편향적으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자격도 능력도 안 되는 이들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군인들은 이에 호응하는 군의 정치 종속 작태는 이제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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