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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머스크 재산 2%면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마부작침] 머스크 재산 2%면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일론 머스크의 60억 달러면 4,2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테슬라의 CEO 머스크가 전 세계 1위 부자로 등극했다는 글을 본 UN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이 지난달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어요. 이 트윗이 이슈가 되자 CNN은 바로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죠. 그리곤 "머스크 재산 2%면 전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머스크가 이걸 놓칠 리 없겠죠? 바로 트윗을 날립니다. "정확한 근거를 대면 기부하겠다. 그리고 회계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라"라고요.

정말일까요? 60억 달러면 전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 세계 굶주림은 얼마나 심각할까?


사실 "머스크 재산 2%면 전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표현은 CNN이 잘못된 제목을 달았던 거라고 해요. CNN은 기사 제목으로 "2% of Elon Musk's wealth could solve world hunger..."라고 표현했는데, 실제 인터뷰에서 사무총장은 당장 위급한 4,200만 명을 위해서 6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했을 뿐이거든요. 사무총장도 CNN의 헤드라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고, CNN은 뒤늦게 해결할 수 있다(could solve)에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could help solve)는 표현으로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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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전 세계 기아 상황이 어떤 지부터 짚어볼게요. UN 식량농업기구에서 지표를 하나 개발했습니다. IPC라는 녀석인데, 각 국가별로 영양 상태가 어떤지 등급을 나누기 위해 사용하는 지표죠. IPC 분류는 기아상황을 총 5단계로 나눠서 관리하는데 3단계부터는 정말로 심각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2020년, 전 세계에서 3단계 이상의 기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모두 1억 5,530만 명. 2020년 일본의 인구가 1억 2,600만 명 정도인데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아 위기 상태에 처해있는 겁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오죠? 게다가 가장 심각한 5단계에 노출된 사람들도 13만 명이 넘었어요.

CNN에서 UN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이 이야기한 4,300만 명 수치의 근거가 바로 IPC 분류입니다. 2021년 현재 기준으로 응급상황에 처해있는, 즉 4단계 이상의 상황에 노출된 4,300만 명에게 긴급 자금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기사에서는 올해 나온 보고서의 통계를 바탕으로 작성했기 때문에 시차가 존재해요. 이 점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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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에 처한 사람들은 훨씬 많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7억 6,800만 명의 사람들이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 처해있죠. 2008년 이후 12년 연속으로 6억 명 대로 수치를 감소시켜왔는데 작년 코로나19의 여파로 그 수치가 다시 7억 명 이상으로 훌쩍 늘어났거든요. 작년과 비교하면 무려 1억 1,770만 명이 증가한 건데 2000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였어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1분에 7명꼴이라면, 기아와 영양실조로는 1분에 11명이 사망하고 있을 정도죠.

식량 과잉 시대에도 기아는 없어지지 않는다


과거와 비교해서 식량 생산은 늘었을 텐데, 왜 기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걸까요? 아래 그래프는 1960년대부터 2019년까지 전 세계 식량 생산량과 영양실조 인구를 함께 나타낸 자료입니다. 영양실조 데이터는 가장 오래된 게 1969년과 71년 사이에 조사된 자료인데, 당시 8억 5,000만 명 이상으로 기록되어 있더라고요. 1995년과 1997년 사이의 조사에서 처음으로 8억 명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프에선 식량생산과 비교하기 위해 2019년까지만 그렸지만, 2020년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7억 6,800만 명으로 훌쩍 늘어났죠.

영양실조 인구와 다르게 식량은 계속해서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196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3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죠. 식량 생산은 1960년대 후반 10억 t을 돌파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상승했습니다. 90년대 후반엔 20억 t을 넘겼고, 2019년에만 전 세계에서 총 29억 7,900t의 곡물을 생산했어요. 이제 곧 30억 t을 넘길 기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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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억 7,900t이 얼마나 큰 양인지 실감이 안 날 수 있습니다. 한 번 수치를 비교하기 위해 생산된 곡물이 모두 쌀이라고 가정해 볼게요. 2019년의 전 세계 사람들의 총인구가 77억 1,500만 명이니... 한 사람당으로 계산하면 1인 386㎏의 쌀이 분배될 수 있는 양입니다. 즉석밥 하나가 보통 210g이니까 한 사람당 1,838개 이상의 즉석밥을 먹을 수 있는 생산량인 거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식량용 곡물 말고도 생산되는 곡물들이 꽤 있거든요. 이런 곡물들은 보통 사료용으로 쓰이거나 술을 만드는데 이용하거나, 혹은 에너지 생산용으로 사용됩니다. 미국 농무부에서는 매년 전 세계의 사료용 곡물을 조사하는데, 2021년 기준으로 총공급량이 16억 t을 훌쩍 넘고 있어요. 식량과 사료용을 다 합치면 45억 t을 넘기는 어마어마한 곡물이 생산되는 시대에 참으로 이상한 일이죠. 여전히 7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니까요.

굶주림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


특히 아프리카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보다 농작지 비율도 높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높습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린다는 게요.

문제는 조금 복잡합니다. 아프리카에선 많은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데, 소작농이 많습니다. 이들은 생산성이 높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국민 1인당 곡물 생산량은 연간 147㎏으로 전 세계 평균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낮습니다) 게다가 품질도 높지 않습니다. 낮은 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낮은 생산성에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 농작물은 낮은 소득으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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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의 식량가격지수는 1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1년 전보다 39.7%가 올랐어요. 식량 가격이 올라서 웃음을 짓는 건 곡물 메이저라고 불리는 주요 대기업들입니다. 미국의 카길(Cargill)이 대표적인데, 미국 비상장 기업 중에 기업 규모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 거대한 기업이거든요. 아프리카에선 수출을 하더라도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기 위해 부당하게 낮은 수매 가격을 결정하는 탓에 농민들에게 이득이 돌아가질 않아요. 곡물 가격이 오르면 곡물을 제 값에 수출할 수 있는 선진국 농민들, 그리고 곡물 메이저 기업들만 이익을 봅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수의 기업들이 가격에 영향을 주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굶주림에 노출된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가게 되는 거죠.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996년 로마에서 식량정상회의가 처음으로 열렸어요. 그때 참여했던 전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런 결의문을 냈죠. "2015년까지 굶주리는 사람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4억 명으로 줄이자"고요. 2021년 지금, 영양실조에 처한 사람들은 7억 명이 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적지 않은 자금이 기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쓰였지만 여전히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죠.

일론 머스크의 재산 60억 달러로 지금 당장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2,650억 달러가 쓰일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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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이 모이더라도 여전히 시스템엔 변화가 없다면 진짜 해결이 아니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곡물들은 가축용으로 사용되고, 과잉 생산된 곡물들은 가격 조정을 이유로 불태워지고 있습니다. 가격 조정은 소수의 기업에 의해 좌우될 테니까요.

오늘 마부뉴스가 준비한 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글에선 데이터로 기아 문제와 식량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과연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구호기금에 기부해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드리는 방법이 최선일까요? 아니면 전반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걸까요? 기사를 읽은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래 댓글을 남겨주세요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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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김선경, 주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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