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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천 '쓰레기 산' 모자…"아파도 갈 곳이 없다" 그 후

[취재파일] 인천 '쓰레기 산' 모자…"아파도 갈 곳이 없다" 그 후
사각지대(死角地帶) : 어느 위치에서 거울이 사물을 비출 수 없는 각도.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떤 단어는 너무 습관적으로, 너무 관행적으로 쓰다가 그 본래의 의미를 잊게 되기도 합니다. 그저 추임새처럼 말이죠. 언론에선 '사각지대'가 그런 추임새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의 맹점, 사회적 약자, 소외 계층, 어떤 주제의 기사를 쓰든 이 단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 대체로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된 건 얼마 전 도착한 2장의 제보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집 안 곳곳에 발 디딜 틈 없이 잔뜩 쌓인 쓰레기, 그 쓰레기들 한가운데 앉아 있는 노모와 젊은 아들. "인천 한 다세대주택 지하 셋방에 지적장애가 있는 가난한 모자가 살고 있다, 아들의 정신질환 증세가 점점 심해져 노모가 위험에 처해 있지만 모자에 대한 분리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보를 보자마자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떠올렸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민간 병원도, 대학병원도, 공공병원도 "못 받겠다"

인천 쓰레기산 (김민정 취파용)

이웃들과 동사무소 등에 따르면 모자는 기초생활수급자인 6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로, 4년 전부터 인천의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한 이웃은 "당시 모자는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었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악화한 건 올해 초, 아들이 복용하던 정신질환 약을 안 먹으면서 급격하게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고함과 욕설 등을 노모가 받아내는 걸 보다 못한 이웃이 제보를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 노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 그동안 동사무소와 보건소는 왜 손을 놓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취재해보니 알아보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들을 받아주는 병원이 단 한 곳도 없었던 겁니다.

관내 보건소는 올 초부터 아들을 입원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인천 시내 정신병원을 비롯해 인천시의료원, 대학병원, 인천이 아닌 서울과 수도권의 공공병원과 대학병원들까지 입원시킬 수 있는 병원을 수개월 수소문해왔지만 이 아들을 받아준다는 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왜였을까요.

① 우선 민간 정신병원들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폐쇄병동이 없다는 이유로, 병상이 있는 경우엔 중증 질환을 앓는 아들을 돌볼 수 있는 간병인을 데려와야 한다는 조건부 입원만 가능했습니다. 간병비는 모자에게 언감생심이었습니다.

② 대학병원들도 병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보호 1종'이라 불리는 기초생활수급환자는 현행 수가 체계상 입원시켰을 때 수익이 나지 않아 대학병원이 평소에도 받길 꺼려한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했습니다. 손은 많이 가는데 돈은 안 되니 병상이 있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③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이 엄격해지면서 긴급하게 입원해야 할 환자들까지 입원할 곳을 찾기 어려워지자 지난 3월 경기도에는 정신응급 공공병상도 생겼습니다. 경찰과 의료진 등을 통해 정신응급상황이 확인되면 24시간 상시 응급 입원시킬 수 있는 병원 3곳이 생겼지만, 이곳은 아들의 당뇨, 다리 부상 등 내외과 질환을 함께 치료할 의사가 없단 이유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④ 통상 이렇게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주던 곳이 공공병원입니다. 수익 신경 쓰지 말고 의료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보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취지로 말입니다. 그런 공공병원의 손발은 모두 코로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전국의 55곳 공공병원 가운데 52곳이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상태인데, 코로나 대응만으로도 인력과 병상이 빠듯하니 의료 취약계층에게는 내어줄 자리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건소 담당자
"현재 인천에서는 국공립병원이 인천의료원밖에는 없는데, 인천의료원이 코로나 환자들만 받다 보니까 일반 병상을 개방을 할 수가 없다는 의견을 받았어요. 보건복지부에도 문의를 했는데 다른 경기도나 서울 병원들을 알아보라고 해서 경기도, 서울 병원들도 알아봤는데 다른 곳들도 같은 이유로 담당의 (입원) 오더가 떨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하더라고요."

이 밖에도 지자체장이 중증 정신질환자를 지정된 정신병원에 의뢰해 입원시킬 수 있는 행정입원 절차 역시 해당 병원에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무용지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위한 병상은 원체 부족하고,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다 보니 아픈 아들을 받아줄 병원이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취재 도중 아들은 다행히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병원행이 가능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가 다쳐 입원한 덕분이었습니다. 아들이 보호자 없이 홀로 며칠간 방치될 처지에 놓이자 보건소에서 읍소하다시피 해 아들을 인근 요양병원에 임시로 보냈다는군요. 발생할 간병비는 동사무소에서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뿐입니다. 그 후엔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다음엔,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런 아들을 홀로 돌봐야 할 어머니는 또 어떻게 되는 걸까요?
 

"병원이 없어 누운 자리에서 죽어나가는 의료 취약계층"

지금도 보건소와 동사무소, 유관기관들이 회의를 열고 머리를 맞대 보곤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병상이 나기를, 아들을 받아주길 기다릴 수 밖에요. 답답했지만 취재하면 취재할수록 저 역시 뾰족한 수가 없더군요. 당초 순진하게 생각했던 대로 언론사가 개입해 어떤 솔루션을 찾아줄 수도 없었고, "공공병원이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묶여 의료 취약계층이 갈 곳 없어졌다"라는 간편한 결론을 내리기도 어려웠습니다. 다만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한 복지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들 말을 종합하면 "코로나로 사정이 더 딱해진 것은 맞지만, 취약계층 중증 정신질환자는 늘 민간 병원에선 받길 꺼려했고 이들을 책임질 공공병상과 인력은 언제나 늘, 많이, 부족했다. 비단 코로나 이후의 일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인천 쓰레기산 (김민정 취파용)

대안에 대한 논의는 공공병원의 수와 역할의 문제, 정신질환자 입원 요건 강화 및 탈시설화 흐름에 따른 대비의 문제, 수가 등의 의료 복지체계 등 보도에 다 담기 어려운 여러 쟁점들이 너무도 첨예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제가 나서서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듯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과 쟁점들이 복잡하게 맞물린 사안이었습니다. 취재 도중 한 의료계 종사자로부터 "'인천 모자'는 고육지책으로 입원할 요양병원이라도 있었다지만 지방의 의료 취약계층은 말 그대로 갈 병원이 없어 그 자리에서 죽어나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인천 모자' 같은 안타까운 사례는 너무도 많은데, 눈에 띄지 않으니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거죠. 습관처럼 쓰던 '사각지대'란 말의 의미를 무겁게 실감했습니다.

속 시원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못내 아쉽고 찝찝했습니다. '인천 모자' 사연은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동사무소가 보도 이튿날 자원봉사센터에 의뢰해 일단 이번 주 중 모자의 집을 청소해줄 계획이라고 밝힌 정도입니다. 다만 저는 이런 사연을 계속 '눈에 보이는 곳'으로 길어 올리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곧 아들도 돌아옵니다.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 [2021.11.3 자 8뉴스] 입원도 돌봄도 힘겹다…'쓰레기 산'에서 버티는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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